제10회 부천국제영화제가 오는 7월13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올해 부천영화제는 35개국 251편의 상영작을 마련한다. 영화제 기간 중 가장 인기를 누리지 않을까 싶은 부분은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 상영. 최근 <씨네21>에서 자세히 소개(제552호 참조)한 바 있는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는 다리오 아르젠토, 존 카펜터, 미이케 다카시, 토브 후퍼 등 전세계 호러 거장 13명의 최신작을 한데 모은 프로젝트다. 이를 제외하고 올해 부천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 7편과 함께 이탈리아 호러의 거장 마리오 바바와 그의 아들 람베르토 바바의 특별전, 일본의 컬트영화 감독 이시이 데루오의 특별전 등을 여기 소개한다. 영화제 상영 및 예매에 관한 좀더 자세한 사항은 영화제 홈페이지(www.pifan.com)를 참조하거나 홍보팀으로 문의(032-345-6313∼4)하면 된다.
햄스터 케이지 The Hamaster Cage
래리 켄트/ 캐나다/ 2005년/ 92분
남매인 루시와 폴은 아버지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기념으로 오랜만에 한적한 고향집을 찾는다. 노부부와 자녀 둘, 네 식구는 모처럼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 아버지의 형 스탠리 삼촌과 그의 젊은 애인 캔디가 초청받아 온다. 그러나 스탠리를 환영하는 이는 엄마인 필뿐, 루시와 루시의 아버지 젠은 얼굴을 굳힌다. <햄스터 케이지>는 한가로운 오후 평범한 가족에게서 벌어진 황당한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다. 여기 등장하는 여섯명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롤리타 콤플렉스 등 각종 콤플렉스에 억눌린 욕구들이 철저히 외연화된 인물들이다. 따라서 조금만 지켜보면 인물간에 맺어진 관계의 규칙이 보이고 스토리도 그에 따라 차근차근 흘러감을 알게 될 것이다. 뒤틀린 관계와 억눌린 욕망간의 충돌을 다룬다는 점에서 새로운 건 없지만 <햄스터 케이지>는 자신의 주제를 유별난 것인 양 과장하지 않고 적절히 통제된 코미디의 화법으로 포장한다는 게 큰 매력이다. 일정한 공간과 한정된 인물들, 우스갯소리와 폭소를 자아내는 상황들이 어우러져 한 시간 반의 러닝타임은 알차게 흘러간다. 참고로 햄스터는 새끼를 낳으면 한동안 극도로 예민해져서 그 시기에 자극을 받을 경우 제 새끼를 물어죽이는 습성을 지녔다 한다.
블랙 키스 Black Kiss
데즈카 마코토/ 일본/ 2005년/ 118분
시체를 토막낸 다음 장식을 곁들이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살인. 도쿄의 뒷골목에서 시작된 이 연쇄살인은 첫 사건의 목격자 아스카와 그녀의 룸메이트 카스미의 주변을 맴돈다. 수사에 나선 형사 유스케는 전직 형사 요잔으로부터 사건의 단서를 얻지만 오히려 범인의 꼬리는 도마뱀의 그것처럼 매번 잘려나갈 뿐이다. <블랙 키스>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데즈카 오사무의 아들 데즈카 마코토가 만든 스릴러다.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인들의 집단적 무의식에 감춰진 공포를 거침없이 드러내온 방식과 비슷하게, 감독은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의 진실 찾기 구도를 빌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집착과 욕망, 두려움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오는 파국을 건조하고 섬뜩하게 그려낸다. 서인도제도의 애니미즘 신앙의 일종인 부두교의 숭배 양식을 끌어들인 미술이 주제의 부각을 돕고 있다.
북의 영년 Year One in the North
유키사다 이사오/ 일본/ 2005년/ 168분
<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으로 국내에도 다수 팬을 확보한 일본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의 최신작. 메이지 정부 시대, 개혁정책 일환으로 홋카이도에 강제이주당한 기층민들의 이야기다. 원주민 아이누족이 살고 있던 미개척의 땅에 억울하게 내몰림당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북의 영년>은 시노라는 이름의 여인과 그녀의 딸 다에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때문에 한 가족의 휴머니즘드라마로도 치환되는 이 영화는 지극히 문명주의적 관점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잡아낸 홋카이도 대자연의 광활함은 그 자체로 시각적 황홀경에 이르고 있지만 거기에는 원주민 아이누족의 생의 터전과 문화가 어떻게 유린당하고 파괴되었는가에 대한 공평한 역사적 시각이 포함돼 있지 않다. <북의 영년>은 10억엔의 제작비와 1년여의 프로덕션 기간을 거친 대작. 올해로 61살인 일본의 국민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가 시노 역을 맡아 열연을 보여주었다.
부자(父子)가 선보이는 이탈리안 호러
마리오 바바와 람베르토 바바 대표작 상영하는 이탈리아 공포영화 특별전
잔혹한 범죄영화를 의미하는 이탈리아 지알로(Gialo)영화는 화려하고 대담하다. 원색으로 범벅이 된 미장센으로부터 살인의 광경을 사디스틱하게 묘사하는 광인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지알로영화는 너덜거리는 이야기의 약점마저도 독창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열정적인 팬들을 낳았다. 한데 지알로영화라는 괴이하고 아름다운 장르는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을까. 누구나 다리오 아르젠토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테지만 그 원류는 마리오 바바라는 한명의 작가로 거슬러 올라감이 옳다.
1914년생인 마리오 바바는 <사탄의 가면>(1960)으로 데뷔한 이후 1980년에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특별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블랙 사바스>(1961)는 세 가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영화. 사망한 고객의 전화를 받은 여자, 흡혈귀와 싸우는 19세기 동유럽의 가족, 시체로부터 반지를 훔친 뒤 유령에게 쫓기는 간호원 이야기로부터 후대 지알로영화의 시초가 된 특징들을 읽어낼 수 있다. 나머지 세편의 영화들은 현대 공포영화에 대한 바바의 영향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특히 형체가 없는 외계의 존재와 투쟁하는 우주선 승무원들의 모험을 다루는 <흡혈귀 행성>(1965)은 후대 <에이리언>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블러드 베이>(1971)는 <13일의 금요일> 같은 이른바 ‘캠핑슬래셔영화’의 원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바의 작품을 처음으로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후배 다리오 아르젠토식의 살육에 대한 기대는 접는 편이 좋다. 바바의 세계는 노골적인 살인행위의 쾌감이 아니라 얄팍해 보이지만 정신없이 근사한 시각적 쾌락의 우주에 속해 있다.
아버지와 다리오 아르젠토에게 사사한 뒤 이탈리아 호러 영화계에 입문한 람베르토 바바는 1980년에 그의 최고 걸작으로 거론되는 <마카브로>로 데뷔했다. 람베르토 바바의 이름이 이탈리아 밖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폐쇄된 극장과 아파트를 일종의 좀비슬래셔영화의 배경으로 멋지게 활용한 <데몬스> 시리즈 덕분. 80년대에는 아버지의 명성을 잇는 새로운 재능으로 주목받았으나 최근에는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기울어진 가세를 말해주듯 TV계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데뷔작인 <마카브로>와 <데몬스> 외에도 최근작인 <고스트 선>과 <고문자>가 상영되며, 람베르토 바바는 장편 심사위원으로 직접 부천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