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성이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삼거리극장>은 뮤지컬영화라고 소개되는 작품인데, 영화를 보면 뮤지컬을 하려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가능한 방식이 뮤지컬과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록키 호러 픽쳐 쇼> <헤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좋아하는데, 공통점이라면 장르 파괴적인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컬로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를 좋아한다. 너무 비슷해질까봐 그 영향권 밖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30년 전 뮤지컬을 재연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뿜어내는 활기나 관능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삼거리극장> 만들고 나니까 순수하게 뮤지컬 형식에 매료된 장르적 특성을 즐기는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괴한 활기를 즐기기 위한 형식적인 접근이었고.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음악영화고.
-음악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열등감을 느낀다. 본질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본질에 가장 가까운 예술형태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음악성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음악을 많이 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는 시간예술이니까 음악성을 탈 수밖에 없는데 음악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창동 감독님 영화를 좋아한다. 음악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닌데 음악성이 느껴진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무척 좋아한다.
-<삼거리극장>은 <엘리펀트>와 반대다. <엘리펀트>가 감독이 지닌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리듬감에 의지해 흘러가는 영화라면 <삼거리극장>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장치들로 리듬감이 만들어진다.
=<삼거리극장>은 <엘리펀트>보다 이성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메멘토>처럼 치밀하거나 이야기의 정합성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여러 텍스트가 쌓여가는 것을 머리로 봐야 재미있는 영화라서. <엘리펀트>는 훨씬 본질적이다. 아이들의 심정을 그리는 데 있어 그런 형식 이외에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철학사에서도 이성이 감성을 이긴 적이 없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생 열등감을 느낄 것 같다.
-미노타우루스의 이야기를 영화 속 영화로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속 영화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에서는 신화 속 원래 이야기를 식민지 한국의 상황으로 바꾸면서 결말 부분도 완전히 달라졌다.
=미노수 이야기는 소단의 이야기와 거시적인 틀에서 같이 간다. 60년 전 우기남 감독이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를 만들었던 때는, 암흑기 조선이었고, 그 당시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이 시대를 은유하는 것 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미노수는 우기남 감독 자신일 수도 있는데, 괴물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게 조선 최초의 괴수영화가 된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 등에서 키치적인 느낌이 강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좀더 공격적으로 유머를 살렸다면 그런 느낌이 좀더 잘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처음 의도와 현실적인 요구가 중간에 어정쩡하게 타협을 본 것 같다. 처음엔 사악한 분위기가 넘실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시나리오 고치면서 많이 덜어냈다. 극장 외관 느낌처럼 고딕적으로 양식화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같은 느낌으로 인물들을 그리려고 했다.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 갇힌 희극적 인물들이라는 느낌.
-시나리오 초안과는 어떤 면에서 달라졌나.
=많이 귀여워졌다. 원래는 더 음침했고 공격적인 유머도 많았다. 그래서 부천영화제 제한구역에서나 상영될 법한 장면들도 많았고. 거기서 많이 벗어난 게 달라진 점이다. 결과적으로 어둡지만 팬시한 느낌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캐릭터들을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여주인공 소단 역에 단역 출연 경험밖에 없는 김꽃비를 캐스팅했다. 알려진 여배우를 쓰면 상업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되었을 것 같은데, 특히 뮤지컬이라는 게 쉽지도 않고.
=유명 여배우를 주연으로 영화를 찍자고 제안받은 적도 있었다. 예산을 50억 정도로 해서 크게 만들자고. 하지만 뮤지컬은 처음 시도되는 장르고 검증된 시장지표가 없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큰 돈을 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려면 각색도 많이 해야 했고. 그랬다면 2006년 여름에 못 만들어졌을 것이다. 2008년쯤 만들어지거나 그냥 엎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큰 규모로 <삼거리극장>을 만드는 건 무엇보다 이 시나리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천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천영화제를 좋아해왔다면 최근의 파행에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특히 개막작으로 선정된 상황이라.
=부천영화제를 굉장히 좋아했다. 영화적 상상력의 90%를 채워준 곳이기도 했고. 영화인회의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조건으로 <삼거리극장>을 부천영화제에 냈다.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랐는데 결국은 떨떠름하게 된 것 같다. 영화제의 파행으로 피해를 보는 것이 관객이라, 오랫동안 부천영화제 관객이었던 입장에서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