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수술실의 문이 열린다. OCN과 시오필름이 공동으로 제작한 5부작 공포시리즈 <코마>가 오는 7월21일부터 OCN에서 방영을 시작한다. <코마>의 무대는 10년 전 사라진 소녀의 원혼이 구천을 떠도는 폐업 직전의 종합병원. <알포인트>의 공수창 감독과 세명의 신인감독들은 시청자를 위해 어긋한 태피스트리 같은 공포의 퍼즐을 준비해놓았다. 소녀의 원혼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소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5개의 작품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코마>는 극장용 공포영화의 관습을 TV에 접붙이려는 대담한 시도이며, 케이블 채널의 기획력과 충무로 인력의 만남이 보여주는 어떤 미래상이다. 케이블TV용 5부작 공포시리즈 <코마>의 전모를 살펴보자.
폐쇄된 지하 수술실의 문이 열리면 오래된 공포가 찾아온다. OCN과 시오필름이 공동으로 제작한 5부작 TV시리즈 <코마>는 폐업직전의 종합병원을 무대로 한 다섯개의 퍼즐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죽어나가고 살아나가는 종합병원. 마취제 내음 가득한 그곳에 입원 중이던 소녀 혜영이 갑자기 사라진다. 목격자도 단서도 없이 마치 병원 벽의 어떤 틈 속으로 흡수된 듯 소녀는 사라졌다. 그로부터 10년 뒤 어느 날 밤. 끊임없는 의료사고로 인해 병원은 폐업을 앞두고 있다. 남아 있는 환자는 코마 상태로 누워 있는 한명의 여자뿐이다. 병원장과 의사 장서원, 간호사 강수진은 코마 환자인 소희를 이송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으로 여전히 대립 중이다. 그리고 실종된 소녀의 언니인 보험회사 직원 윤영과 코마 환자인 소희의 영적인 부름을 들은 홍아, 소녀의 실종 사건을 조사했던 최 형사가 폐업 직전의 병원을 방문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녀의 실종 사건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날,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 때문에 폐쇄되었던 지하의 수술실 문이 열린다.
다섯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코마>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복수와 기억의 장례식을 다섯 인물의 시점으로 펼쳐 보인다. <코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혜영의 실종에 대한 원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코마>는 폐업 직전의 병원을 무대로 죄악을 간직한 인간들로 하여금 진짜 관등성명을 소리쳐 외치게 만드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는 공수창 감독의 전작인 <알포인트>와도 맞물리는 데가 있다. 공수창 감독의 시나리오는 한국 자본주의 현대사에서 비일비재하게 저질러지고 묻혔던 의료사고와 의학의 광증을 익숙한 원혼의 이야기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다. 현실과 장르의 접붙이기인 셈이다. 각 에피소드의 연출을 맡은 감독들은 전체적인 조합을 짜맞춰야 한다는 개념에 구속되지 않은 채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공수창 감독의 1, 5편이 이야기를 열고 닫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2편은 본격적인 공포영화들의 관습을 진득하게 밀고나가고, 3편은 형사를 주요 인물로 일종의 심리적인 추리극을 표방하고 있으며, 4편은 (실은 극과 그리 상관없어 보이는) 영매적 인물을 등장시켜 몽환적인 스릴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연출자의 자유를 통해 만들어진 형식상의 몇몇 서커스들은 꽤나 흥미롭다. 예를 들어 <코마>의 각 에피소드들은 동일한 시간에 벌어진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선행 에피소드에 등장한 사실이 완전히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완벽하게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장면에서의 주인공의 행동이나 의상, 혹은 대사가 달라지는 식이다. 이는 각 에피소드를 끌고나가는 주인공의 시각을 따른다는 점은 일종의 <라쇼몽>식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진실의 눈으로 사건을 본다’는 <라쇼몽>의 방식과도 조금 다르다. 오히려 이같은 형식적 변칙은 폐쇄된 공간 속을 미로처럼 헤매며 원혼과 살인의 내음을 견뎌내야 하는 시청자에게 모호한 극적 양념 정도로 기능한다. 공수창 감독에 따르면 시나리오에도 없었던 이같은 효과는 HD케이블영화라는 생경한 분야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특징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 만든 미국의 <HBO>가 OCN의 표본
<코마>는 단순히 외부 제작된 영화를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의 한계를 벗어던지기 위한 OCN의 야심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OCN이 표본으로 삼았던 것은 구스 반 산트의 최근작들(<라스트 데이즈>와 <엘리펀트>)이나, 메이저 영화사와 손잡고 만든 양질의 시리즈들(<밴드 오브 브라더스>)을 제작하며 진지한 영화 감식가들과 시청자의 찬탄을 동시에 받고있는 미국의 <HBO>(Home Box Office)다. OCN은 훌륭한 전례를 지닌 <HBO>를 표본 삼아 영화적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케이블 시장의 특징에 적절하게 취합될 수 있는 시리즈의 제작을 기획했지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코마>에 참여한 OCN 프로덕션슈퍼바이저 박호식 PD는 “케이블 채널 역시 오리지널 콘텐츠가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작의 방향성을 어떤 식으로 잡아야 할지 난감했다”고 말한다. 고민 끝에 OCN이 뛰어든 첫 번째 시도는 에로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하던 봉만대 감독을 끌어들인 <동상이몽>이었다. 첫 시도는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고, 이는 한국 케이블 시장이 과감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충분히 껴안을 수 있다는 일종의 신호탄처럼 보였다.
OCN의 다음 계획은 충무로 제작사와 손잡고 본격적인 영화적 퀄리티를 간직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물론 OCN으로서는 제작사의 선정이 가장 까다로운 열쇠였다. 박호식 PD의 말처럼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크게 프리미엄이 없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영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작품에 선뜻 뛰어들 충무로 제작사들은 그리 흔치 않아 보였다. <주먹이 운다> <야수와 미녀> 등을 만들었던 시오필름이 겉으로는 큰 이득이 없어 보이는 케이블 시리즈 제작에 뛰어든 것은, 이같은 시도가 영화 제작사로서의 미래를 위해서도 어떤 대안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오필름과 OCN이 손을 잡는 순간부터 <코마>는 절반쯤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절반은 프로젝트를 ‘영화답게’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총감독의 선정이었다.
<알포인트>를 끝내고 차기작을 구상 중이던 공수창 감독이 시오필름의 부탁으로 프로젝트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5년 1월. 그는 단순히 호러 시리즈라는 컨셉만 세워져 있던 프로젝트에 “병원 응급실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보며 떠올린 이야기”를 제안했다. 생면부지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하나의 인과관계로 묶여 있으며, 그들이 하나의 숨겨진 기억을 들고 병원을 찾아온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공수창 감독은 머릿속에 옅게 그려진 이야기를 구체화하고 시리즈에 맞게 다듬기 위해 신준형, 오남경 등 여러 명의 작가를 끌어들였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연출하기 위한 신인감독 캐스팅에 들어갔다. 공수창 감독은 “미쟝센영화제 등에서 호러, 스릴러 장르로 주목받은 감독들을 중점적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단편 <핑거 프린트>를 연출한 조규옥 감독, 소리를 이용해 관객의 심리를 들쑤셨던 <숨은그림찾기>의 유준석 감독,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로 주목받았던 김정구 감독 등 이미 단편영화계에서 스타감독으로 이름난 신예들이 프로젝트에 모여들었다.
“감독 각각의 독특한 색채로 나와 다행이다”
<코마>의 아트디렉터 공수창 감독 인터뷰
-<코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계기가 많다. 일단은 같이 일하게 된 영화사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장산곶매라는 집단 출신이어서 그런지 집단이 풍기는 분위기가 좋으면 꼭 그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웃음) 다른 이유는 HD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나는 1만명 중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한 기계치다. 그래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대하면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오기 같은 게 생긴다. 또 다른 이유는, 이게 시리즈물이라는 거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스토리텔러라고 여긴다. 영화판에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능숙한 감독들이 많지만 나는 어차피 스토리텔러로 시작한 사람이다. 그래서 5부작 이야기를 TV 속에서 풀어나가는 시도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아트디렉터로서 신인감독 3명의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했나.
=시나리오 단계만 내가 통제했을 뿐이다. 처음부터 감독들이 가진 독특한 컬러와 톤을 살려보자는 취지였고, 그런 부분에서는 한번도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작품이 가진 색깔이 다 다른 것 같다. 처음부터 다르게 가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도 싶지만(웃음), 하면서도 긴가민가, 통제를 해야 하나, 고민했던 부분이 감독 각각의 독특한 색채로 잘 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각각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완성 뒤의 느낌은 어떤가.
=물론 내 작품은 좀더 잘 만들걸 하는 아쉬움이 있고. (웃음) 2편은 공포영화 장르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긴 했지만 가장 섬뜩한 느낌이 있고, 3편은 이런 영화를 스릴러로도 풀어가는구나 하는 놀라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4편이 가장 좋다. 언뜻 보면 퀴어영화 같은 느낌도 있고, 프롤로그와 엔딩의 느낌이 상당히 독특하다. 물론 의견들은 많이 갈리더라. 오히려 4편이 좋다는 의견이 가장 적은 것 같다.-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공포영화 공식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한 부분들이 종종 보인다.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의 공포영화 장르에서 이미 나올 만한 건 다 나와서 한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대한 고민의 농도가 깊었어야 하는데 기간이 짧아서 그냥 넘어가버린 부분들이 있다. 사실 한 꺼풀만 벗기면 영화 속 인과라는 것도 뻔한 인과고, 그걸 덮기 위해 이야기의 형식을 매만지기는 했지만, 또 이건 상업영화이고 제작상의 한계도 있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영화적인 퀄리티로 본다면 극장용으로 편집해서 개봉을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촬영한 결과 편집이 곤란해졌다. 톤이나 컬러도 다 다르게 나올 테니까. 그래서 극장용으로 편집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웃음)-결국 <코마>도 <알포인트>처럼 과거의 기억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이야기였는데,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지 궁금하다.
=그게 내 이야기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패턴들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패턴들. 나는 이야기의 형식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한다. 그래서 형식에 대한 고민들을 하다보면 비슷한 패턴들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 생각 중인 차기작도 비슷한 패턴을 지닌 이야기다. 전방 BOP에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 소재고, 장르는 비슷하지만 <알포인트>와는 다르다. 현실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은 장르영화로 풀어보려고 한다. 흥행도 잘될 거다. (웃음) 사실 현실적인 이야기와 장르의 접목이 쉽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