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는 필름의 대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새 매체
<코마>의 제작진이 찾아낸 것은 한정된 시간과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뽑아내기 위한 제작 방식이다. <코마>의 이야기는 폐쇄된 병원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진행된다. 적절한 로케이션만 구해진다면 비용과 시간의 절감은 저절로 따라올 수 있는 제작친화적인 이야기라는 의미다. 시오필름은 전국을 수소문한 결과 리모델링 직전의 병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전남 남원의 호성병원은 11층의 거대한 덩어리였고, 마치 <코마>를 위해서인 양 모든 것이 음산하게 비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제작진은 2005년 6월부터 5개월 동안 촬영에 돌입했다. 제작진은 120여명의 스탭진을 40명씩 세개의 팀으로 분리해서 운용하는 방식을 택했고, 각 팀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감독의 지휘하에 따로 촬영을 마쳤다. 그에 더해 <코마>가 예산을 절약하면서도 케이블 시리즈에 맞는 적절한 미학적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HD카메라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름 낭비에 대한 걱정없이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HD카메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에피소드를 완성해야 하는 신인감독들에게 넉넉한 자유를 안겨주는 도구다. 공수창 감독 역시 “테이크를 마음껏 갈 수 있다는 점”을 HD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알포인트>를 찍을 때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충분히 리허설을 하더라도 생각했던 장면을 못 따는 경우가 많았다. HD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기민하다.” 물론 콘트라스트가 강한 이미지를 요구하는 호러영화에서 HD의 깊이가 부족한 색감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코마>처럼 TV 방영을 목표로 하는 작품일 때, 기동성과 비용의 절감을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 HD는 최적의 도구로서 충분히 활용 가능성이 있다. 또한 후반작업이 용이하기 때문에 신인감독들로 하여금 능숙한 미장센의 연출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다. 스스로를 스토리텔러라고 지칭하는 공수창 감독 역시 HD의 장점이 TV영화에 매우 적절한 매체라고 말한다. “필름으로 할 수 있는 영화가 있는 반면 스토리텔링이 위주가 되는 영화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HD로 가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남권우 PD는 HD를 필름의 대안이 아니라 필름과는 완전히 다른 매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HD가 용이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 식의 사고는 버려야 한다. 오히려 필름으로 하지 못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도구로 접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케이블TV는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소비 시장
모든 비용 절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OCN과 시오필름은 <코마>가 현재적인 수익 모델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TV 방영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어렵다. OCN은 전세계 판권을 브에나비스타에 파는 등 해외시장 선판매로 일정한 수익을 거두긴 했지만, 25억원이라는 제작비를 모조리 거둬들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OCN이 원하는 것은 현재적인 수익이 아니라 향후 한국 케이블TV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자체적인 콘텐츠 전쟁에서 포석을 쌓는 일이다. 자체적인 제작물을 서서히 늘려나간다면 언젠가는 제작비를 충분히 메울 만한 수익 모델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견이다. 남권우 PD의 말처럼 “시청자의 평가가 좋으면 향후 또 다른 기획의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코마>의 수익 모델”인 셈이다. 물론 <코마>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시리즈다. 제작상의 독창적인 모델을 창출했고, 케이블TV에 걸맞은 형식적 즐거움을 안겨줄지언정, <코마>는 한국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들을 모조리 차용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관절을 꺾으며 다가오는 원혼과 병원을 돌아다니는 어린아이의 원혼은 공포영화 팬들이라면 손쉽게 기원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세련된 조각들로 맞추어져 있는 <코마>는 종종 일반적인 극장용 한국 공포영화를 넘어서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게다가 TV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고어장면과 시청자를 옥죄는 분위기는 극장용에 버금가는 수위다. 소녀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와 떨어지는 엘리베이터에 의해 날아가는 목, 피 묻은 메스와 겸자가 오고가는 수술장면들은 방송위원회의 사후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CN은 감독들에게 최대한의 창조적 자유를 부여하고 나서 함께 소위를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테면 <코마>는 “제작진을 케이블TV라는 매체의 한계로 제한하지 않았던” OCN의 원칙과, “극영화를 만드는 것과 동일한 공을 들여 촬영을 마친” 제작진의 고집이 시너지를 불러일으킨 결과다.
사실 적절한 수익 모델만 창출된다면 한국 공포영화가 주목해야 할 시장은 오히려 케이블TV일 수도 있다. 저예산 B급 공포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케이블TV와 DVD시장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미국식 시장은 그리 불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코마>가 한국 공포영화의 관습을 케이블TV라는 새로운 대중매체에 이식해낸 성공적인 결과물로 시청자에게 평가받는다면, 케이블TV와 충무로 인력의 시너지 효과는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TV는 점점 장르영화의 가능성이 되어가고 있으며, <코마>는 그 첫발자국을 떼는 입구이다.
*<코마>는 OCN에서 7월21일(금) 1편 <생일선물> 상영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에 한편씩 방영될 예정이다.
HD로 타진한 저예산 공포영화의 가능성
4부작 시리즈 <어느날 갑자기>
<어느날 갑자기>는 CJ엔터테인먼트와 SBS, 안병기 감독의 토일렛픽쳐스가 함께 제작한 4부작 공포영화 시리즈다. PC통신에서 인기를 얻어 6권의 책으로 발간된 유일한 원작의 <어느날 갑자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CJ엔터테인먼트가 기획과 투자, 스탭 구성과 캐스팅 및 배급을 담당하고, 본격적인 제작에 관련된 실무들은 토일렛픽쳐스가 맡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CJ엔터테인먼트는 기본적으로 80회차 촬영이 소요되는 한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개념으로 제작에 접근했고, 연출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만을 교체해가며 같은 스탭들로 각기 다른 내용을 담은 4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2월29일>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4년 만에 벌어지는 살인을 다룬 도시 괴담이며, <네번째 층>은 오피스텔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심리스릴러, <D-day>는 학원공포물, <죽음의 숲>은 흔치 않은 좀비슬래셔영화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의 원작자이기도 한 CJ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제작팀장이 말하는 기획의도는 크게 세 가지다. “신인감독의 등용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양질의 장르영화로 해외 수출의 길을 열고 싶었다. 또한 HD영화 제작을 실험해본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구조로 영화를 만들어도 제작비를 충분히 건질 수 있는 모델을 창출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사실 <어느날 갑자기>는 <코마>와는 다른 목표를 지향하는 모델이다. 공중파인 SBS가 프로젝트에 참가하긴 했지만 TV 방영을 목표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판매와 국내 극장개봉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어느날 갑자기>는 HD라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저예산 공포영화를 제작하려는 대기업 스튜디오의 실험에 가까워 보인다. <어느날 갑자기>는 오는 7월20일부터 순차적으로 CGV를 통해 개봉하며, 올 여름이 가기 전에 SBS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