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행복한 가시밭길을 날다, <플라이 대디>의 이준기
2006-07-2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美男 이준기의 탄생설화에 대해 우린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준기는 별안간에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도상이 됐다. 처음에는 각종 매체가 멋도 모르고 ‘봉길이’ 혹은 ‘공갈이’로 불렀다. 공길과 그 역을 맡은 이준기에 대해 사람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를 상상하는 것이 도리어 어렵다. 지금 이준기에게 놓인 건 행복한 고민의 가시밭길이다. 가시밭길이라고?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 그건 이준기가 더 잘 알고 있다.

“바꿔가고 있어요. 하지만 무리하게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무리하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을 테고, 그렇게 연기하면 어색할 테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이준기 안에 있는 모습들을 꺼내자, 그러면 폭이 커질 거다, 욕심이 나는 작업은 언젠가는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이준기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역할들에 치중하자(라고 생각해요).”

인터넷과 야오이 문화와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팬픽의 세계가 겹겹이 둘러싸며 이준기를 스타덤의 자리로 뽑아올렸다. 이준기는 사랑하고 싶은 남자로 떠올랐다. 그의 남성미는 동성의 애정이라는 면모 위에서 시작됐지만, 그를 사랑하는 소녀들은 미남과 미남 사이의 그 불편한 ‘애정 관계’를 홀연히 떼어버리고, 나의 남자 이준기만을 그 자리에서 본다. 동성애 관계의 코드는 지워지거나 무시되거나 흡수되었고, 대신 멋진 나만의 미남 한명이 남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준기의 남성미란 전통적인 남자됨의 일관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의 균형 혹은 불일치에 빚지고 있다. 이건 그의 얼굴과 목소리의 묘한 어긋남 또는 결합을 상기하기만 해도 되는 일이다. 이준기는 그 장점에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해나가고 싶어한다.

“사실 제 외모로 너무 강한 마초 역할을 하면 제가 관객이라도 부담을 느낄 것 같아요. 관객을 불편하게 하면서 영화를 즐겁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또 남자답다고 해서 굳이 마초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남성상이 있는 것 같아요. <플라이 대디>에서 승석은 여린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고, 자기만의 세계를 지니고 사는 친구예요. 가필(이문식)을 만나면서 어린 시절 가족의 결핍을 극복하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그런 친구, 하지만 남자다운 과묵함을 갖춘 멋진 녀석이에요. 묘한 느낌을 주는…. 하여간 미스터리한 놈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플라이 대디>는 나이 들고 유약한 가장 가필이 딸에 대한 복수를 위해 고등학생인 승석에게 싸움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문식의 영화에 가깝다. <왕의 남자> 이후 7개월간 갑자기 벌어진 일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어쩌면 이준기가 스타감독의 손길을, 다른 젊은 스타 친구들과의 짝패를, 혹은 그만의 독주를 바란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왕의 남자> 이후 이준기는 아직까지 중심에 들어서지 않는다. 물론 여러 정황이 있겠지만, 이준기는 지금을 단련의 시기라고 자부한다. 분명한 확신이 없으면 힘든 행보다.

“욕심은 사실 있죠. 하지만 제가 아직 많은 역량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환경이 좋다고 덤벼드는 건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한테 오히려 배신감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부딪히면서 제 걸 다듬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조금만 늦게 가자. 아직은 더 배울 게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자신은 있어요. 자신감 없어지면 이준기는 20대에 죽은 거나 같아요.”

천성적으로 진짜 배우의 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유리관 궁전의 귀족으로 남는 자신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슬슬 딴청을 피운다. 당장에 어려워도 이준기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것이다. 그는 때때로 팬덤의 애타는 애원을 거스르면서까지 자기 확신에 모든 걸 걸어야 할 것이다. 혹은 언젠가는 그가 존경한다고 말한 장동건이 몸값을 낮추고 김기덕과 일한 것의 사례를 신중하게 자기 식대로 생각해야 할 때도 올 것이다. 그건 말처럼 쉬운 선택이 아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미루면 그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이준기가 보고 싶다. 그게 (이준기 자신이 의미한 것처럼) 인기인이라는 도상의 자리를 건너 진짜 배우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준기는 그럴 만한 결단력이 있어 보인다.

“시대의 도상이 되어버리면 벽이 생기는데, 그런 걸 깨고 배우로서 인정받는 건 쉽지 않잖아요. (한국영화 배우 중 누구의 계보 다음에 놓이고 싶냐고 물었는데)… 놓인다면 장동건 선배 아래 놓이고 싶어요. 그분도 시대의 도상이었지만, 지금은 진정한 배우의 위치에 있잖아요. 그런 걸 따라가고 싶다는 거죠.”

美男의 말 말 말

“제가 준비해간 질문은 거의 잘렸어요.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래서 그런 거예요. 대통령께서는 배우하면 어떤 역할 하고 싶으세요? 이런 질문이나 하라고 주고. 아니 그게 뭐예요. 제가 바보 같잖아요. 나중에는 화가 나서 마이크를 내려놨는데 그게 화면에 잘 안 잡혔더라고요.”(노무현 대통령과 했던 스크린쿼터 좌담 때 너무 약했던 것 아니냐고 했더니 발끈하면서)

“겁없고 당당한 많은 것에 도전할 줄 아는 친구였다, 그렇게 적히고 싶어요.”(2000년대 대중문화사전이 있고, 그 안에 이준기란이 있다면)

“진짜 인간 냄새나는 영화요. 외향적인 건 상대적인 거잖아요.”(30대에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며)

의상협찬 엠포리오 아르마니, 소다, 에버라스트, 푸마, SSAM, 헤어 이가자 헤어비스 남순, 메이크업 이가자 헤어비스 신성은 스타일리스트 이상희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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