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거시기의 힘찬 도약, <플라이 대디>의 이문식
2006-07-28
글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情男은 정부란 뜻이다. 유부녀와 정을 두고 깊이 사귀는 남자. <황산벌>의 거시기와 <마파도>의 순박한 형사를 연기했던 이문식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데 정(情)보다 더 적합한 글자가 있을까. 의미의 역설. 그의 얼굴엔 사전적 정의 따윈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순진무구한 웃음이 있다. 1995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의 ‘달수 친구2’로 스크린 데뷔해, 이후 수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온 농사꾼(<황산벌>), 말만 하면 핀잔 듣는 조폭(<라이터를 켜라>) 등 어리숙한 역할들을 도맡아왔다. 양아치, 조폭 등 인물의 외양과는 달리 풍겨나는 흙냄새, 이 둘의 조합을 그는 아이러니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양아치 역할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양아치, 조폭 같은 인물들을 혐오한다. 살아오면서 피해를 본 것도 있고, 참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연기 인생이 그쪽으로 풀렸는데,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은 세상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앞에 나서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플라이 대디>에서 이문식이 맡은 역할은 장가필이다. 폭력을 당한 딸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자. ‘거시기한 인물’의 반복. 하지만 가필은 무모한 비상을 시도한다. 싸움고수 승석(이준기)을 만나고 딸을 폭행했던 가해자와의 결투를 준비하는 것. 무른 살이 단단한 근육으로 변하고, 축 늘어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가필은 세상과 마주한다. 정남(情男)의 도발. 사실 이문식은 처음 단독 주연을 맡았던 <공필두>부터 얼굴의 웃음을 조금씩 지워내기 시작했다. 마약범이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검찰과 대면하는 공필두. 그의 얼굴엔 순진함을 잠재우는 집념이 엿보였다. <구타유발자들>의 봉연은 한발 더 나아갔다. 구타의 경험과 잠재된 폭력성이 빚어내는 기이한 눈빛. 거시기의 비약적인 변신, 그리고 이문식의 재발견.

“내가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강인한 남자 역할에 대한 욕심이 있다. 실제로 내가 그렇지 않으니까 더 갈구하는 거겠지. 하지만 내 몽타주상, 신체상 그런 역할들은 잘 안 들어온다. 홍콩영화처럼 총 쏘고, 성냥 깨무는 캐릭터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평생 못하겠지만. (웃음) 하지만 그런 갈등이 나에겐 오히려 장점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났을 때, 나는 집에 돌아와서 후회하는 스타일이다. 분명히 상대방이 잘못했는데, 내가 왜 사과를 했지? 따귀라도 한대 때려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서. (웃음) 하지만 사람이 화낼 타이밍을 놓치면 화를 못 낸다. 그리곤 잊어버리고. 그게 내 실제 모습이다. 그래서 좀더 강한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다. <구타유발자들>이나 <플라이 대디> 후반부의 가필처럼.”

현재 SBS 미니시리즈 <101번째 프러포즈>에 출연하고 있는 이문식은 요즘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곧장 드라마 촬영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한다. 10여년의 조연생활 끝에 찾아온 주연. <플라이 대디> 이후에도 이미 두편의 장편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공필두>를 제안받기 전에 나를 단독 주연으로 한 시나리오가 3편 더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문을 보니 그 영화의 주연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더라. 시쳇말로 ‘까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주연배우라는 느낌은 잘 모르겠다. 아직 의구심도 있다. 어르신들이랑 공동 주연을 했던 <마파도> 때도, <공필두> 때도 의구심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주연으로 했을 때, 과연 제작사가 (상업성을) 신뢰할 수 있을지.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연기에서는 조연이나 주연이나 다른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情男의 말 말 말

“20일 동안 달리고 또 달렸다. 몸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감독님한테 이게 무슨 마라톤영화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버스를 쫓아가며 달렸으니. 그래도 감독님이 다이어트 코치론 최고였던 것 같다.”

“<플라이 대디> 촬영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술 취한 아저씨가 ‘어, 이문식이네. 나 팬이야. 근데 코미디 좀 그만하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 좀 해봐’ 그러더라.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하나? (웃음) 코미디 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흥행이나 시청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시청률 높이겠다고 발가벗고 뛸 순 없지 않은가. 배우는 배우로서의 역할을 다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른 것들을 신경쓰다 보면 연기의 질이,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의상협찬 라이앤스콧, 쿨하스, 르꼬르 스포르티브, 골드윈, 헤어·메이크업·스타일리스트 김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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