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다세포소녀> 촬영현장을 가다 [2]
2006-08-08
글 : 이다혜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이재용 감독 인터뷰

“의식을 전환하면 쾌감이 생긴다”

-현장에서 콘티를 그려가면서 작업하더라. 대사도 그때그때 바꾸는 경우를 봤고.
=즉흥적인 요소가 많았다. 미리 준비한 콘티는 거의 없었고.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적용하니 안 맞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 만화적 상상력으로는 가능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면 안 맞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꾸는 일도 생긴 셈이고. 그런 결정은 직감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다보니 불안한 점이 많았다.

-뮤지컬은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번 곱씹어본 이야기보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넣게 되었는데, ‘이런 장면에서 노래가 나오면 재밌지 않겠냐’는 생각이 떠올랐다. 뮤지컬을 하자고 마음먹고 <다세포소녀>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뜬금없이 카메라를 보고 얘기하면 어떨까’, ‘춤과 노래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결정했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 해보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영화이다 보니 ‘이런 건 노래로 표현하면 재미있지 않겠어’ 하는 대목들이 보이더라. 원래 한두곡 정도 더 있었는데 개봉판에서는 빠질 듯하다.

-신인배우들이 많아서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신인이라서 좋은 점은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웃음) 안 좋은 점은 길들여진 악기들이 아니니까 모든 걸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 자신의 한계를 깨지 못한 배우들이니까. 열심히 한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았다. 의욕적이었던 건 물론이고, 또래 배우들끼리 깔깔거리고 좋아하면서 열심히 따라와주었다. 진짜 힘들었던 건 캐릭터가 많아서였다.

-후반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CG 분량이 처음의 생각보다 많아진 건가.
=결국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건데 예측을 못했던 것 같다. 몇몇 주요 CG 대목들을 조악하게 갈지 정교하게 갈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였는데, 정확히 얼마만큼의 기간이 소요될지는 잘 몰랐다.

-실제 영화는 B급 느낌이 강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것 같다. 후반에 꼼꼼하게 손을 봐서 정교해지기도 했다. 한번쯤은 거칠고 센 영화가 나오는 걸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세포소녀>도 내 영화인데 내 색깔이 없을 순 없다. 내 유전자가 들어가니 내 식의 영화가 나오고. 관객이 보기에도 너무 극단적인 건 불편하지 않겠나. 정교함이건 내용이건 내가 허용할 수 있고 내가 재밌어하는 정도로 수위를 맞추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아기자기하면서 귀여운 느낌이 되었다.
=영화를 보러 올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올지, 뭘 기대할지를 모르니까 반응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다세포소녀>에는 재미있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성적으로 문란한 학교라는 건 하나의 전제일 뿐이다. 다른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은 영화다.

-만화에서 에피소드 몇개를 가져왔지만 전체 줄거리는 새로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어떤 인물이 순식간에 스타가 되는 대목은 인터넷이 스타를 낳는 요즘 대중문화의 흐름을 연상시키더라.
=원래 매스미디어나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 <다세포소녀> 시나리오를 쓸 때, 재밌는 캐릭터에 에피소드 위주로 이야기를 만들면서 직관적으로 썼다고 하지만 살아오면서 느낀 점들을 풀어낸 과정이기도 하니까 풍자와 상징이 들어가게 되었다. 대단한 욕심을 가진 풍자와 상징이 아니라 사소하게 톡톡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영화가 다중적, 다층적이길 바라는 것 같다. 한번 본 사람, 몇번 본 사람이 다 다르게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나한테 자극을 주는 건, 역발상이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도, 조선시대 사람들의 욕망도 다르지 않다는 데서 시작한 이야기다. ‘얼마나 정숙한 사회라 열녀문을 세웠을까’에서 ‘얼마나 문란하기에 열녀문을 세워가면서까지 장려했을까’로 의식을 전환하면 쾌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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