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1]
2006-08-07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미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의 205회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올미다>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짜인 일상성과 현재성이었다. 음모와 혈연과 선녀들이 연방 ‘하늘이시여!’를 외쳐대는 브라운관의 세계에서 <올미다>의 일상성은 참 귀중한 것이었다. 미자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오뚝이 같은 30대의 여성성과 세명의 할머니가 보여주는 ‘늙은 여성’으로서 여성성. 보통의 드라마들이 끝끝내 외면하고 가는 현실적인 여성들의 삶과 고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준 <올미다>는 KBS 사장의 재치있는 말처럼 ‘오랫동안(Old) 기억될(Miss) 일기(Diary)’였다. 지지부진하던 시청률은 15%까지 치솟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열혈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종방한 <올미다>는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에 새롭게 이식되고 있는 중이다. 올겨울 개봉을 목표로 바쁘게 움직이는 <올미다>의 현장을 찾았다.

올드미스들의 한 맺힌 절규가 주점 밖으로 들려온다. “오오~~ 비키니 라인! 좋아~!” 7월12일 청담동의 가라오케 주점 ‘한’(恨). 예지원, 김지영, 오윤아, <올미다>의 주인공인 세명의 여배우가 소방차의 노래에 맞춰 온몸을 갈지자로 내흔들고 있다. 김석윤 감독은 좁은 가라오케 룸과 모니터가 설치된 룸을 무서운 속도로 오가며 연방 고함을 지르더니 금세 오케이를 외친다. 드라마의 속도로 진행되는 <올미다>의 촬영현장은 그야말로 속전속결. 촬영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달아 NG를 외치는 까탈스런 감독은 여기에 없다. 김석윤 감독은 “4번 이상 찍는다고 해서 4컷 중에 뭐가 좋은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감독 있으면 데려오라”는 농담을 던진다. “물론 감독으로서 운신의 폭은 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해온 일이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함께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좋아서 특별히 연기 지도에 관련된 말이 오고 갈 필요가 없다.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러제친 예지원은 “가끔은 컷을 더 가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하지만 1년 호흡이 있으니까 금방 컷이 나온다”며 자못 아쉽다는 표정이다.

영화는 시트콤의 기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

<올미다>의 영화화 기획은 종영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신기하게도 영화화를 선두지휘한 것은 김석윤 감독이나 KBS 제작팀이 아니라 도통 시트콤 따위는 챙겨볼 것 같지도 않은 충무로의 제작사들이다. TV 콘텐츠의 영화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영화사 싸이더스FHN이 청년필름에 <올미다>의 영화화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232회를 거치며 서서히 만들어진 <올미다>의 세계를 2시간 내외의 장편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는 던졌을 법도 하다. 반신반의하던 청년필름의 기획팀은 DVD를 통해 <올미다>의 지난 에피소드들을 챙겨보기 시작했고, 곧 사랑에 빠졌다. “사실 기획한 우리도 <올미다>를 자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지난 방영분들을 뒤늦게 챙겨보았다. 보자마자 모두가 열혈팬이 되어버렸다”는 이선미 PD의 말처럼, 세상의 인간들은 모두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올미다>를 보지 않은 사람과 <올미다>의 열혈팬. 관심없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청년필름은 시트콤의 인력들을 그대로 영화로 끌어들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김석윤 감독과 4명의 작가(박해영, 김지선, 이용근, 김수진)는 손사래를 쳤다. 1년간 모든 아이디어와 열정을 마지막 치약을 짜듯이 훑어내 232회를 완료한 직후였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경험도 일천한 터였다. 청년필름으로부터 시나리오 작업 제의를 받은 박해영 작가는 “대체 방송으로 다 풀어냈는데 영화로 또 만들어야 하냐”는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감독과 작가들은 시트콤과 같은 버전이 아니라 소동극 형식을 차용한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로 풀어보자는 청년필름의 설득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캐릭터들의 핵만 가져가서 풀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작가들과 감독이 가지고 있었던 덕이다.

제작진은 <올미다>의 영화화 작업에서 발생할 법한 난제들은 기획 초기에 모두 극복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232회짜리 시트콤을 어떤 식으로 영화화할 것이냐에 대한 청사진을 갖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뜻이다. <올미다>의 세계를 120분의 극장용 대본으로 축약하는 일이 쉬울 리는 없다. 난감한 프로젝트를 눈앞에 둔 작가들은 시트콤 각본을 쓰면서 지켰던 기본 원칙을 시나리오에도 그대로 적용하면서 가기로 했다. “<올미다>는 캐릭터가 아주 독특한 것도 아니며 기발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쓴 시트콤 <올미다>의 핵은 공감과 위로다. 그걸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절대로 잘 풀릴 인생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걸 바라며 살아가는 일반인의 이야기를 시트콤처럼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에 대입해 풀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올미다>의 각본은 시트콤의 기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다. 서른두살 성우 미자는 끈끈한 애환 덩어리. 사고 연발의 직장에서는 좋아하는 박 PD에게서 부담없이 가볍게 즐기자는 소리나 들으며 울분을 삼켜야 한다. 그러나 미자의 엉터리 매력에 빠진 지현우 PD와의 로맨스가 슬그머니 30대 노처녀의 생을 회복시키기 시작한다. 미자와 지 PD의 로맨스가 큰 줄기로 흐르는 이야기에 양념 노릇을 하는 것은 “색깔 들어간 빤스 하나 입어보고 죽어야겠다”는 세 할머니의 늘그막 로맨스와 미자 삼촌 우현의 허망한 은행강도 프로젝트. 작가들은 세명의 올드미스 중 가장 역할이 뚜렷했던 미자를 통해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기운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작가들은 시트콤이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샀던 기본적인 요소들을 잊지는 않았다. 세명의 할머니는 미자의 로맨스와 관계없이 상당한 비중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히려 극장용이라는 장점을 이용해 ‘노인 문제’에 대한 발언을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한다. 박해영 작가의 말처럼 “어느 것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도 더욱 진하게 만들어낸 각본”으로 읽힌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처녀의 저고리 고름처럼 처자들의 엉덩이가 살랑거린다. “빤스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왜 이렇게 들뜨냐?” 엉덩이의 주인공은 늙어죽기 전에 색깔 들어간 빤스 한번 입어보자 결심한 세 할머니다. 골목 어귀에 앉아서 세 할머니를 지켜보던 꼬부랑 할머니가 말한다. “고년들 엉덩이 참. 젊은 게 좋다.” 한성대 후문 낙산공원 근처의 낡은 골목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는 촬영현장. 높은 동네의 작은 골목이지만 지나가는 차량이 한둘이 아니다. 이를 막아세우고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제작진의 고충 또한 한둘이 아니다.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소리치며 지나간다. “야 이 새끼들아. 촬영이고 뭐고 길을 막고 지랄이야!” 하지만 누구도 오토바이 운전자의 신경질적인 비명에 마음 다치지 않는 듯하다.

급하게 진행되는 촬영의 속도와는 달리 현장은 그저 유유자적한 공기로 가득하다. 한쪽 구석에서는 마을 나온 동네 할머니들이 배우들과 뒤섞여 동네 친구들처럼 수다를 떨고 있고, 점점 구름 사이로 고개를 숙이는 태양에도 불구하고 현장 스탭들은 별 무리없이 현장을 진행 중이다. 급기야 동네 할머니들은 즉석에서 엑스트라로 동원되고야 만다. 할머니들에게 던지는 김석윤 감독의 말이 걸작이다. “아까 잡수신 거 그게 다 출연료라니까요, 출연료!”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HD 카메라의 장점도 좁은 현장과 정신없는 스케줄에서는 빛을 발한다.

방송 인력과 충무로가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

<올미다>는 방송 인력과 충무로의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프로젝트다. 방송 PD들이 영화계 진출을 도모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궁>의 황인뢰 PD는 이미 1997년에 <꽃을 든 남자>를 감독하며 충무로 외유를 했고, <쇼! 비디오자키> 등의 쇼 프로그램과 <여고시절> 같은 시트콤으로 잘 알려진 이상훈 PD는 2005년 코미디 <돈텔파파>로 극영화 데뷔를 이뤄냈다. 하지만 방송국 직원의 신분인 PD가 파견근무의 형태로 극장용 장편의 메가폰을 쥐는 것은 <올미다>가 처음이다. 이선미 PD에 따르면 영화계 사정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KBS쪽은 “감독에게 방송국에 정상 출근을 하면서 영화를 찍으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초반 조율의 문제를 극복한 이후부터 충무로와 여의도 사이에 큰 의견 차이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이는 <달콤, 살벌한 연인>처럼 공동제작의 형태로 참가한 MBC의 사례와는 달리, KBS가 공동기획의 위치에 머무르며 청년필름과 싸이더스에 제작상의 실질적 권리를 모두 넘겨준 덕택이다.

그러나 이처럼 소극적인 합작의 형태는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예정이다. 방송사들은 자사 콘텐츠의 영화화 프로젝트에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MBC는 MBC 프로덕션을 통해 <M>과 <수사반장>의 영화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며, KBS 역시 KBS 미디어를 통해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의 영화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또 <말아톤> 같은 실화 영화 붐에 단서를 제공했던 자사 프로그램 <인간시장>의 에피소드들을 직접 영화화한다는 KBS의 기획 역시 탄력을 받은 상태다. “앞으로는 방송사들이 자사 콘텐츠의 판권만 넘겨주는 제작 방식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이선미 PD의 전언이다. 물론 3대 방송사들의 충무로 진출을 향한 야심이 <올미다>가 거둘 성과에 초조한 기대를 걸고 있음도 분명하다.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다. 이것으로 올드미스들의 세계는 마무리를 짓는 것일까. 현재 열혈팬들은 <올미다> 시트콤의 시즌2 역시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김석윤 감독은 “계획은 없다”고 단언한다. “<프렌즈>가 시즌1에서 시즌2로 넘어가면서 배우들의 출연료가 10배가 올랐다. 하지만 우리네 상황으로는 출연자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없을 것이다. 지현우 같은 배우가 또다시 일일극에 시간을 빼앗겨가며 묶여 있을 것이냐도 의문이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할 이야기는 232회를 통해 다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방송사의 편성 의지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매정한 말이지만 이것은 극장판 <올미다>로 올드미스들의 세계를 완벽하게 마무리지으려는 제작진의 의지를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8월 초에 모든 촬영을 마무리지을 <올미다>는 올겨울 개봉 예정이다.

“감독님을 믿으니까요”

<올미다>의 열혈 팬클럽 ‘올미다 사랑방’

목청 좋은 김석윤 감독의 “오케이!” 소리가 나자마자 근처에 모여 있던 군중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이처럼 호응 높고 매너 부러지는 군중이라니. 저들이 대체 누구냐고 김영옥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올미다> 팬클럽 회원들이란다. “저런 열혈팬을 20년 일하면서도 못 가져봤어. 너무 드라마를 좋아하더라고. 놀랐지 놀랐어.” <올미다>에 팬클럽은 든든한 서까래다. 시트콤이 시작된 직후에 자발적으로 결성된 ‘올미다 사랑방’(agit.miclub.com/oldmissdiary)은 일차원적인 여성주의에 호소하며 시트콤 폐지를 외쳤던 여성민우회의 비명을 막아 세우고,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그 장면이 ‘노인 문제’에 대한 사려 깊은 문제제기였음에도) 종영을 종용했던 네티즌들에 대항했던 <올미다>의 투사였다.

1년 동안 미자와 할머니들의 일상에 울고 웃었던 5700여명의 회원들은 이제 <올미다>의 극장판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회원 수만도 모두 30여명. 혹시 사랑하는 시트콤의 장점이 영화화의 과정을 거치며 희석될까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시솝 이지연씨는 망설임 없이 짧고 명쾌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감독님을 믿으니까요.” 그 대답은 예의 ‘며느리 패륜 사건’으로 인한 종방 논쟁시, 촛불시위를 나온 한 팬클럽 회원의 손에 들려 있던 피켓의 문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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