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2]
2006-08-07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시트콤과 영화 연출 맡은 김석윤 감독

“여성을 잘 모르지만 마음을 열어두고 연출한다”

김석윤 감독은 1992년에 공채 19기로 KBS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초기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연출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본격적으로 ‘극’에 맛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 유재석, 이휘재, 남희석이 출연한 시트콤 <멋진 친구들>을 연출하면서부터다. 일종의 시트콤 연출 실험이었다고 할 만한 그 작품 이후 김석윤 감독은 <달려라 울엄마>와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거치며 한국의 대표적인 시트콤 연출자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게 좋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확실히, 여러모로, 버라이어티한 사람이다.

-직접 감독을 맡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부분에서 지원은 하겠노라고 했지만 감독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1년이나 시트콤 연출을 해서 타성에 젖은 상태여서 영화계 시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라고 했다. 영화는 나와 별로 상관없는 매체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청년필름쪽의 지속적인 권유를 받으면서는 내 손을 통해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과 영화는 상당히 다른 매체다. 직접 현장에서 느끼는 차이점은 뭔가.
=조명이나 촬영 등 기술적인 부분들은 물어보고 배워가며 한다. 그러나 동시녹음 같은 부분은 큰 화면에서 어떻게 들릴지 감이 없기 때문에 영화쪽 스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방송이든 영화든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은 같은 편이다. 제작 과정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겠고 오히려 시나리오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스크린에 걸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니까.

-영화 현장이 방송보다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현장에서의 동선이 매우 큰 편이더라.
=방송쪽 스탭은 PD와 눈빛만 스쳐도 알아서 일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만 영화 스탭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서 감독이 피사체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야 가장 신속하게 현장이 돌아가는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성격이 좀 급해서 기다리지를 못한다. 처음엔 방송과 비교해서 느릿느릿한 영화 현장 때문에 부글부글 속이 끓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점차적으로 적응이 됐다. 하지만 나는 테이크를 여러 번 가지 않는다. 연기자들도 나와의 작업에 익숙하기 대문에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크에서 가장 좋은 연기가 나온다. 가끔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번에 할당된 테이크는 딱 두번입니다. 상영관에서 땅을 치면서 보지 않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웃음)

-TV에서 주로 활동한 배우들이다. 연기 지도를 하는 데 곤란한 부분은 없나.
=보통 TV 연기자들은 바스트 연기를 한다고 한다. 나도 연기자도 그런 연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조금 거쳐야만 했다. 그래도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두세 테이크를 먼저 찍어놓고 쉬는 틈에 현장 편집기사와 붙여보며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체크한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여지를 두고서 전체 톤에 맞아떨어지는 테이크를 고르려고 한다.

-현장에서도 사석에서도 꽤나 남성적인 분인데, 그간 <달려라 울엄마>나 <올드미스…>처럼 여성의 이야기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해왔다.
=내가 여성문제에 대해 특별히 많이 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멋진 친구들>을 끝내고 나서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달려라 울엄마>를 했고, 그걸 하다보니 여자들의 이야기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드미스…>를 했다. 집안에 여자가 많아서 여성의 심리 같은 것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또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물론 연출하면서도 ‘이럴 때 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부분까지 내가 손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여자들에게서 듣는 건 매우 좋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성 캐릭터들의 리액션 자체는 작가들이 써놓은 것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저 나만의 ‘깔깔이’를 치는(재미있는 부분들을 만드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열어두고 연출한 것이 시청자에게도 어필을 많이 한 것 같다. 또 내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따분해하지 않고 흥미롭게 여겼던 것 역시 끝까지 시트콤을 연출하고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일일 시트콤에서는 인물과 상황이 진행에 따라 점점 변해간다. 하지만 영화는 압축된 하나의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 시트콤을 영화로 압축하는 경우 시트콤의 이미지나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맞추어가려고 하나.
=방송은 종점이라는 거 모르고 시작한다. <올드미스…> 역시 232회를 가면서 합리적이고 정확한 하나의 방향만을 따른 것은 아니다. 1개월을 하다 끝날지 3년을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6개월이 지나고부터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 캐릭터를 결혼시켜야 하는 시점부터는 너무 쏜살같이 달려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논리가 정확해야 하니까 <올드미스…>의 초기 기획의도를 살리는 게 가장 아귀가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패배감에 시달리는 좌절한 백수 30대 노처녀, 결혼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주눅 드는 노처녀인 시트콤 초기의 미자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 끝내지는 말자는 생각이었다.

-<올드미스…>는 여성문제에 노인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 패륜 사건으로 쓸데없는 오해를 사긴 했지만, 노인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연출자는 흔치 않다.
=우리 어머니가 올해 일흔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20년 전의 어머니랑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제 몸매가 영 아니신데도 나름대로 셰이프를 만들어보려고 애쓰시고. (웃음) 그렇게 집안에서는 우리 어머니가 여전히 코믹하게도 보이지만, 일단 노인이라는 집단 개념에 묶이면 달라진다. 나 자신도 노인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서늘한 기분이 든다. 사실 노인들은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지 않나. 나도 몇 십년만 있으면 노인인데 그런 상황들이 답답하다. 노인들이 배경 화면으로 전락할 존재는 아니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여성성과 남성성은 존재한다. 그래서 뭔가 사회적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부분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실재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우리 어머니는 귀가 안 들리는 것도 아닌데, 쇼프로그램에서 “누구누구 컴백순!”이라고 나오면 “권백순이가 누구냐?”라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좌중 폭소) 내가 흥미를 많이 느끼니까 계속 해보고 싶다. 사실 소명의식, 이런 건 얕지만.

-시트콤 연출을 하기 전에는 오락 프로그램 연출을 주로 했다.
=나는 원래부터 쇼프로그램 PD가 꿈이었다. (웃음) 꿈꾸던 일을 하면서 재미나게 살던 터에 시트콤이라는 장르를 만났고, 그게 또 다른 맛이 있더라. 사실 시트콤은 드라마국이 아니라 순발력이 있는 오락국 PD들에게 더 맞다. 송창의, 김병욱 PD처럼 오락 PD들이 만든 시트콤들이 성공한 전례도 있지 않나.

-그럼 대학 때부터 오락 프로그램 PD가 되기로 결심을 한 건가.
=전혀 아니다. 나는 도시공학과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간 군대에서 MBC에서 FD를 하던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가 나더러 ‘형은 PD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PD가 뭔지도 몰랐지만 말을 들어보니 좋은 거 같았다. 일단은 제대하고 나서 모그룹 입사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도저히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PD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랬더니 먼저 시험을 봐야 한다더라. 입사도 꽤 힘들다고들 했고. 어쨌든 시험을 쳤는데 3차까지 아슬아슬하게 붙어서 한번에 합격을 하고 말았다. (웃음)

-영화 연출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할리우드 키드도 아니었던데다 영화는 잘 모른다. 방송이 아직은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제약이 많은 날 연출이 더 잘되는 편이다. 극장판 <올드미스…>를 찍으면서는 3회로 계획된 경찰서 장면 같은 경우, 낮장면을 모두 5시 안에 끝내야 했고, 10시까지는 김혜옥씨 장면을 다 끝내서 보내야 했고, 12시까지는 지현우 장면을 다 끝내서 보내야 했다. 빡빡하다. 근데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라고 하니까 오히려 촬영이 잘되더라. (웃음) 물론 전체 퀄리티는 호언장담을 할 수 없겠지만, 완성도라는 게 결국은 감독의 기준에 달린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더 찍어봐야 오버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각 신의 차이점을 확실히 구분해서 골라낼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래서 매 촬영에서 나름대로 후회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갔다. 낙천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내 성격은 예민한 편이다. 장면이 마음에 안 들면 집에 못 간다. 그런데 <올드미스…> 찍으면서는 항상 집에 가볍게 가는 편이다.

-그래도 영화가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다면 영화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 않을까.
=나는 소소한 일상의 극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는 안 되지 않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미니시리즈뿐만 아니라 일일 드라마도 매우 선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을 영화나 드라마로 하려면 100% 거절당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방송과 영화계가 ‘저게 과연 아이템이 될까?’라고 반문하는 부분에서 시청자는 울고 웃으며, 그걸 할 수 있는 매체는 시트콤이다.

-일을 굉장히 즐기면서 하는 듯하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14년쯤 됐다. 그런데 후배들 말에 따르면, 내가 직업적 만족도가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일이 많아도 일 같은 생각이 안 든다. 직업 하나는 잘 골랐다.

-워커홀릭 기질이 다분한데.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서 딸이 둘 있다. 전화해서 자고 있다 하면 더 일하다 가고, 안 자면 집에 가서 놀아주다가 다시 일하러 간다. 하지만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들으면 살짝 기분이 나쁘다. 예전에 한 후배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을 선물해주면서 “형, 하늘도 가끔 보고 살아요”라더라. 그래서 하늘을 봤더니 너무 날이 좋아서 크로마키(chroma-key·색채의 불현효과(不現效果)를 이용해 화면을 합성하는 텔레비전 트릭) 정말 제대로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하지만 그게 정말 워커홀릭인가? 일을 일처럼 생각 안 하기는 하지만 일 관계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아서 스트레스는 전혀 안 받는다. 그래서 나에게 워커홀릭이란 단어는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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