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해변의 여인> 촬영현장 [1]
2006-08-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홍상수의 신작 <해변의 여인>이 8월31일 개봉한다. 홍상수의 7번째 영화다. <씨네21>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 이어 그의 영화현장 취재기를 세 번째 허락받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길목마다 놓인 꽤나 흥미로운 장면을 보는 행운도 얻었다. 서해안 신두리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1남 2녀의 사랑, 아니 그렇게 말하고 나면 항상 부족한 홍상수식 영화 모험을 곁에서 보고 담아왔다. 홍상수의 현장은 조용하지만, 역동적이다. 독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하고 싶다. 보충하여, <해변의 여인>에 관한 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동해가 아니고 서해구나, 편견이 있었구나. <해변의 여인>의 현장을 찾아가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 남자(들)의 여행은 여자의 장소로 찾아가는 행위이거나, 그 장소에 가면 여자를 만나는 신기한 사건이거나, 그녀(들)의 흔적을 뒤따르게 되는 은연중의 탐문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관계에 대한 결말이 희박하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면, 남자는 그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가지 못할(않을) 것이고, 더불어 그 여자에게서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거나 등 떠밀려 떨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그런데도 그 공허한 여행담이 늘 역동적인 영화적 모험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번에 남자는 특이하게 여자 A와 출발부터 함께한다. 그러고서 같이 돌아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틀 뒤 남자는 같은 장소로 다시 가 여자 A-1을 만난다. 남자는 새로 만난 그 여자에게서 A의 모습을 본 것이다. 두 번째 만난 그 여자는 정말 A-1일 수도 있고, B인데 남자만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C일 수도 있다. 여하간 이 남자는 A를 통해서만 A-1이거나 B이거나 C인 그녀를 본다. 그리고 마침내 A가 이곳으로 찾아오고 A와 A-1이 서로 만난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영화감독 중래(김승우)는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 미술감독 창욱(김태우)을 억지로 데리고 서해 신두리해수욕장에 간다. 유부남 창욱의 애인인 음악가 문숙(고현정)이 우연히 동행한다. 중래와 문숙은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끌린다. 중래와 문숙은 창욱을 따돌리고 하룻밤을 지낸다. 서울로 돌아온 뒤, 이틀이 지나 중래는 다시 신두리로 간다. 이번에는 기필코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그러다 우연히 선희(송선미)와 친구 유경(최반야) 일행을 보고 선희에게 끌린다. 중래는 선희가 문숙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끌린다. 구상 중인 인물이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고, 우연찮게 중래와 선희는 같이 하룻밤을 보낸다. 이때쯤, 문숙도 신두리에 다시 나타나 중래와 선희를 본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나서 선희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간 이틀 뒤, 선희는 중래의 방에 지갑을 놓고 나온 것 같다며 중래의 펜션 앞을 찾아오고, 중래와 같이 있던 문숙을 불러내 바닷가 횟집으로 가서 대화를 청한다.

우리는 이중에서도 ‘중래-문숙, 중래-선희, 문숙-선희’의 구도가 확연히 그려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인물들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반복과 차이로서의 영화 속 방점인 이 장면들을 보게 된 건 의도이기도 하고 행운이기도 하다. 날수로 따지면 대략 6일, 한번 갈 때마다 하룻밤을 묵으며 이틀씩 3회를 방문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동해보다 서해가 훨씬 좋아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서 그런가?” 육지에 등을 보이고 앉아 바다쪽을 보며 홍상수 감독이 문득 말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갯벌이 펼쳐진 바다를 한 번 바라보았다. 이해가 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런 기분이 좋다. 그의 현장을 둘러보기에 그런 덜 준비된 상태보다 더 적절한 흥분은 없다.

첫번째 현장- 중래와 문숙, 함께하다

비포장길이 끝나는 그곳에 신두리해수욕장이 있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펜션과 횟집은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세트장”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농담 그대로다. 촬영은 거의 그 근방 몇 백미터 반경에 있는 펜션, 횟집, 해안가를 들락거리며 진행된다. 인물들이 그중 작은 횟집으로 들어가 퍼질러앉아 대사를 시작하니, 무엇보다 두 주인공 중래와 문숙 캐릭터의 윤곽이 드러난다. 때로는 까랑까랑하고, 때로는 고고하고, 때로는 나른한 청승을 떨기도 하는 문숙. 한편, “하여간 썩 괜찮은 놈은 아닌 것 같은,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약간 흐리멍텅한 면도 있고, 중요한 건 여자들이 잘 꼬이고, 서툴러 보이지만 제법 능수능란한”(김승우), 중래. 그 중래가 시종일관 문숙만 쳐다보고 말한다. 그들의 캐릭터를 기묘한 대화의 연속이 실어나른다. “문숙씬 뭐가 제일 슬퍼요?” 그러자 문숙은 아버지라고 답하며 “산낙지 같아요. 날 뒤에서 온몸을 꽉 잡고, 쥐어짜고 놔주질 않으니깐…. 나보다 내 문젤 더 걱정하는 사람이거든요, 그게 말이 돼요? 징그러워”라고 말한다. 문숙이 눈물을 흘리니 창욱이 닦아주려 하지만, 그때 문숙의 대사가 장관이다. 고현정이 처연하게 내뱉는 목소리로, “놔둬, 내 눈물 깨끗해…”. 대사가 입에 쉽게 붙냐고 묻자, 고현정은 “오히려 감독님 대사가 진짜 우리가 쓰는 말인 것 같다”며 기꺼이 즐거워하고, 김승우는 “어제는 A4지 한장을 독백했다. 처음에는 대본 받고 무슨 성경책 외우냐고 했다. 그래도, 성공하고 나니 정말 성취감이 있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배우들은 현장에서 즉석 제공되는 그 미묘한 언어가 자기 몸과 입에 입혀지는 경험에 흥이 나 있다.

대낮에 시작한 이 장면은 밤으로 이어지고, 4분이 넘는 컷은 수시로 필름이 모두 돌아가 롤아웃되고, 감독은 거기에 맞춰 시간을 줄여나간다. 총 12테이크 중 6번째 테이크부터는 밤 설정. 무엇보다 <극장전>에서 등장했던 줌인아웃의 사용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여기서 줌은 ‘옵티컬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전> 때는 홍 감독이 더 빨리, 더 빨리 그랬는데, 이번에는 줌의 속도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가능한 한 분위기에 맞춰서 간다”고 김형구 촬영감독은 설명한다. 여기에 그동안 나온 몇몇 믿을 만한 평자들의 평까지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이 줌인아웃의 정체는 확실히 어떤 안정성이나 고정성에 대한 저항감에서 비롯된 새로운 감각의 요구라고 봐야 맞을 것 같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제 앵글은 고정된 기하학적 틀이 아니라 깨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무형의 반복으로서만 최소한의 의미가 있게 됐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비주얼의 기본 질서가 된 셈이고, ‘움직이는 프레임’ 자체가 영화적 기본이 된 셈이다. 홍 감독은 스스로 유추하길 “사진과 회화의 전통을 통해 바로 환기되지 않는 ‘중립적인 표면’(neutral surface)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이 줌은 자꾸 보면 볼수록 멈춤과 멈춤 그 사이의 움직임이 훨씬 아름답다. 그 느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할 때에도 인물들의 대화는 여지없이 이어진다.

“질문있는데요, 외로우세요?” 중래가 말한다.
“네.” 문숙이 말한다.

문숙의 마음이 중래에게 기울었다.

두번째 현장-중래, 문숙을 닮은 선희와 함께하다

서울에 돌아갔던 중래는 이틀 뒤 다시 이곳 신두리에 와 있다. 이번에는 정말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연히 선희를 만나 오늘은 인터뷰를 신청하고 성공한다. 중래는 그녀가 문숙과 닮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호감을 갖는다. “문숙과 선희가 정말 닮아서라기보다는 중래만의 착각인 것 같아요. 사람이 정말 그런 착각을 하고 살거든요. 자기 스스로 주입을 시키고, 최면을 걸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송선미) 선희 역의 송선미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러나 중래는 이미 마음이 꽂힌 뒤다. 수줍지만 대담해 보이기도 하고, 경계하는 것 같지만 기대는 면이 있는 것도 같은 선희 역시 중래가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전에 잡지에 난 인터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인지, 낯선 사람 앞에서 쉽게 하기 힘든 말도 술술 풀어놓는다. 그렇다면, 오늘의 만남은 뭘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말하자면 오늘은 중래-문숙의 만남에 대한 중래-선희의 ‘대구날’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음, 뭐가 제일 힘드세요?” 중래가 물으면, “음, 어머니요, 엄마가 제일 힘들어요. 아무리 해도 끝이 없어요. 제 모든 걸 다 망쳐놨어요”라고 선희가 말한다. 문숙에게 아버지가 힘들다면, 선희에게는 어머니가 힘들다.

우리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를 만드는 다양한 기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반복되는 그 이야기들은 네 인물의 조각에서 조합으로 묶이는 며칠간의 시간일 수도 있고(<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장소에 공존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건너온 어긋난 필연일 수도 있고(<강원도의 힘>), 원형을 알 수 없는 기억이거나(<오! 수정>), 춘천 또는 경주이거나(<생활의 발견>), 영화 또는 현실(<극장전>)일 수도 있다. <해변의 여인>에서 그 반복과 차이의 경험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모티브가 있다면 그건 ‘같은 장소를 두번 찾아간다’는 행위가 될 것 같다. <강원도의 힘>의 지숙은 한 번 갔던 장소인 강원도에 두 번째 발을 들여놓았었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오는 길에 남은 건 오열이었다. 그렇다면 좀더 본격적으로 응용된 <해변의 여인>에서의 ‘같은 장소로의 두 번째 방문’은 무엇을 몰고 오게 될까. 시간의 자력이 아니라 공간의 지력에 의해, 더 정확하게는 변함없는 장소가 두 번 찾는 인물의 방문에 의해 전혀 다른 인식 경험의 장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물들의 관계도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중래를 쫓아 문숙까지 이곳을 두 번째 찾게 되기 때문이다. 중래와 문숙과 선희는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세 번째 현장을 찾았을 때 그 일부가 벌어진다. 그런데, 중래와 선희는 지금 그걸 모르고, 즐겁게 인터뷰 중이다.

“전 감독님 잘 모르지만 너무 고마워요. 잘될 거예요. 뭐든지. 이제 힘낼 거예요.” 선희가 말한다.
“네. 꼭 그렇게 하세요.” 중래가 말한다.
“네. 힘낼게요.” 다시 선희가 말한다.

선희의 마음도 중래에게 기울었다.

세번째 현장-문숙과 선희, 중래 없이 둘이 함께하다.

홍 감독은 횟집 방 한구석에 들어가 두 시간째 나오질 않고 있다. 오늘은 뭔가 잘 안 풀리는 날이거나, 중요한 대목이리라. <해변의 여인>에서 홍 감독은 그전보다 현장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하루에 찍을 신의 당일 대본을 오전에 써내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이 장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눠서 그 신이 펼쳐질 장소에 와서 눌러앉아 대본을 쓰기 일쑤다.

주요 촬영지인 펜션과 횟집 골목에서 다소 떨어진 포구. 그저께 지갑을 놓고 왔다는 핑계로 중래의 숙소를 찾아온 선희가 문숙에게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둘은 차를 타고 여기로 왔다. 중래는 그전 신에서 문숙과 놀다가 다리 근육을 다쳤고, 멀리 못 갈 형편이다. 이 두 여자의 동행은 복잡한 심경으로 얼룩져 있다. 선희가 문숙에게 “언니라고 부르겠다”고는 하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현장에서 말수는 적지만 시원한 성격의 고현정이 간만에 농담 한마디를 한다. “언니라고 하면서 슬슬 돋우네.”

홍 감독이 방에서 나온 건 늦은 저녁, 하지만 이게 시작이 아니다. 다시 배우들만을 데리고 대본을 썼던 방 안으로 들어간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슬그머니 베개를 들고 옆방으로 들어간다. 오래 걸릴 상황이란 걸 누구보다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겐 항상 이 방이 궁금하다. <극장전> 때도 홍 감독과 김상경은 갈빗집 한쪽 방에 들어가 한참을 있다 나왔다. 그럴 때마다 그 방을 나서는 배우들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홍상수의 연출력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배우들과의 긴밀한 대화가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밤 11시5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한다. “자기는 술이 많이 취했는데 좀 경계하는 거고”(고현정에게), “자기는 술이 조금 취한 거고 약간 소프트하게”(송선미)가 시작된다. 그러면 어김없이 또 한명의 감독도 연출을 한다. 옆에 있는 김승우가 “자, 자기는 술 좀 먹고. 자, 둘이 너무 귀여워요. 느낌을 받고 주세요. 서로 믿고 하세요. 갈까요?”라고 홍 감독 흉내를 낸다. 좌중은 폭소하고, 듣고 있던 홍 감독은 씩 웃으며 “고맙다, 대신 해줘서”라고 화답한다.

때때로 음악보다 더 정교한 홍상수식 연출법은 없다. 음악감독 정용진 작곡, 감독 홍상수 작사. 배우 고현정이 노래한 영화 속 문숙의 음악 <바람이 불면>을 홍 감독이 현장에서 크게 틀어놓는다. 그는 종종 이런 식으로 배우들에게 생각하고 느끼며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말로 연기를 조율하는 대신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의 효과. 그 현장의 숙연함. 그리고 다시 배우들이 거기서 얻는 힘, 그건 쉽게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서늘하면서도 간결한 미를 갖춘 음율이 고현정의 음색을 타고 울린다. 비밀의 방과 소통되는 음악. 홍상수는 감출 걸 닫고, 소통할 걸 열 줄 안다.

문숙과 선희의 대화는 친밀과 질투와 경쟁이 뒤범벅된 대화들로 오간다. “전 기분 좋던데요. 언니랑 닮았다고 하니깐”이라고 선희가 말하면, “우리가 닮았어요?”라고 문숙이 답한다. “말로 표현하긴 힘든데 좀 닮은 거 같아요. 우리 말하는 것도 그렇고.” 선희가 말한다. 여기까지가 친교의 기술이라면, 선희는 어느새 중래의 말투를 흉내내어 “언니는 살면서 제일 두려운 게 뭐예요?”라고 묻는다. 그러다가도 자기가 남편한테 배신당한 얘기를 고백하고, 문숙은 “털어버리고 살 수 있을 때 제대로 살라”고 인생 선배로서 충고도 한다. 그러다가 충고는 반격을 받는다. “언니는 감독님한테 왜 집착하는 건데요, 그러면?” 선희가 따진다. 그게, 요전날 밤 치밀어올랐던 문숙의 부아를 상기시키고, 대화는 심문으로 바뀐다. “(그날 밤) 혹시 둘이 날 넘어나온 거예요? 날 넘어나온 거예요?”

이 모든 걸 지켜보다가 지금 찍고 장면이 왜 중요한 것인지 갑자기 깨닫는다. 그렇구나. 홍상수의 영화에서 여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은, 그리고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보경과 민재가 효섭의 옥탑방에서 잠깐 스치는 것을 제외하면 홍상수의 영화 속 여자들은 서로 만나지지 않는다. 그들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의미의 안과 밖을 써내는 두명의 여자였고(<생활의 발견>의 명숙과 선영), 영화와 현실 밖에서 따로 살고 있는 여배우이거나 첫사랑이었다(<극장전>의 최영실과 영실). 그건 한명의 여자일 때도 두개의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지 못했다. 의도였는지 우연으로 만났는지 미스터리한 심중으로 남는 수정은 사실상 두명의 여자였고(<오! 수정>), 문호와 헌준에게 선화는 순결하거나 야한 두명의 여자였다(<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제 이 두 여자가 혹은 한 여자의 갈라진 두개의 이면이, 그 현실과 환영이 거울처럼 서로를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기존에 없던 모티브가 제공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홍상수 영화가 새로운 구조와 배열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더 깊이 말할 때가 아니다. 홍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밝혔고, 또 그래야 한다. 그리고 두 여자의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어떻게 나왔는지가 뭐가 중요해요. 나왔으면 됐지.”
“까칠하네 선희씨. 두 여자가 한 남자 두고 치사하게 굴지 말죠. 선택은 여자가 해야죠. 지루해요. 지옥이 지루한 거야!”
“언니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 전 다 괜찮아요. 흑흑.”
“정말 여자구나 여자.”
“언니도 여자예요. 아시면서 흑흑.”

중래는 이 여자들의 대화를 듣지 못한다.

소수의 규칙, 무한대의 경우의 수

대낮에도 서해의 신두리해수욕장에는 종종 물안개가 밀려들어왔다. 그 장관을 보다가 홍상수 감독이 엑스표를 그으며 한마디 던진다. “저건, 너무 예뻐(서 안 써). (이내 웃으며) 농담이야.” 그런데 그 농담은 사실이다. 남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걸 그는 미룬다. 자기가 느껴야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 단순한 진실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물안개는 예쁜 것이기도 하고, 안 예쁜 것이기도 하다. <해변의 여인>에서 그가 하려는 아름다움의 추구가 어디까지인지는 개봉 이후에 말해져야 할 것이다. 다만, 현장 대본과 현장을 보고나니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 여행기는 어느 ‘상’(像)에 관한 믿음의 오류를 절박한 심정으로 밀어붙이는 어떤 남자의 난처함에 관한 것이 될 것 같다. 그 난처함의 행간을 채우고야 마는 필연 내지는 우연, 또는 그 모든 사고의 오류가 발생시키는 나름대로의 절박함 내지는 허망함. 그것이 장차 완성된 이 영화를 보는 우리를 웃게 할 것이고, 그리고나서 웃은 것에 대해 우리는 또 의심하게 될 것이다.

감독이란 직업은 원래 세상만사의 상을 잡아 그걸 해석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극장전>에서 영화감독 동수가 배우 최영실에게 그렇게 끌렸던 건 그 여자 영실이 아름다워서만일까? 동수는 상을 좇은 것이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를 예상하거나 볼 때는 언제나 그것이 다면체로 된 큼직한 주사위 놀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규칙은 소수지만 잠재된 경우의 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혹은 끝이 없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연상해야 한다.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긴다. 그게 정해진 단순한 규칙이다. 하지만, 누가 뭘 낼지 우리는 알 수 없고, 경우의 수는 무한대다. 다면체의 주사위 놀이 또는 끝없는 가위바위보 놀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을 기다린다.

사진제공 영화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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