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맑은 남자다.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수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윤수 역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있다 보니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욕심도 사라지고 어느 정도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남자다. 윤수라는 남자를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는 순간 비로소 윤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다가 사형집행을 선고받는 장면을 찍을 때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윤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 역시 그랬다. 섬뜩했다.
송해성 감독과 항상 윤수에 대한 생각이 같았던 것은 아니다. 유정에게 “나 좀 그냥 죽게 놔두란 말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나는 윤수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독님은 좀더 자제하라고 했다. 물론 감독님의 버전이 쓰였다. (웃음) 윤수를 경상도 남자로 설정한 것도 송해성 감독님이다. 나는 안 하겠다고 했다. 나를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라면 싫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경상도 사투리가 캐릭터에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고, 일주일 정도 준비해서 리딩을 했더니 캐릭터가 살아나는 것 같다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근데 경상도 분들은 잘 아실 테지만, 서울 사람들은 이상한 사투리에 익숙해져서 나처럼 진짜 사투리를 하면 더 어색하게 받아들인다.
나라는 배우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역시 현장에 있을 때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 불안하다. 하지만 현장에 있으면 정말로 마음이 편하다. 나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현장에서 제대로 ‘노는’ 법을 안다. <형사 Duelist>를 찍으면서 현장에서 제대로 노는 법을 배웠고, 이번 작품은 현장에서 제대로 노는 것을 실천한 단계였다고 해야 할까. 관객이 꼭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봐줘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 하나를 잘 끝낸 것 자체가 성공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고집도 있다. 작품이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같은 감독님과 다시 작업해서 우리가 옳았다는 걸 보여주자. 그런 심정. 확실한 경상도 사나이? 내가 원래 그런 오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