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메피스토> <사랑영화>로 본 이스트반 자보의 세계 (+영문)
2006-10-12
글 : 홍성남 (평론가)
역사에, 그리고 인간에 대답하는 영화
<메피스토>

얼마 전 헝가리 영화감독 이스트반 자보의 숨겨진 행적이 밝혀지면서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1956년의 실패한 헝가리 봉기 이후에 그가 정부 비밀경찰의 정보원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자보는 그런 다소 놀라운 사실을 시인하면서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친구들’을 구해줄 수 있었노라고 이야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나타난 것은 물론 자보 영화 속의 주인공들, 예컨대 세상이 암흑으로 덮여 가는 상황을 굳이 외면한 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고 동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메피스토>(1981)의 회프겐이나 <평결>(2001)의 푸르트 뱅글러처럼 다분히 기회주의적이거나 혹은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인물들이었을 테다.

그런데 자보의 과거에 대해 깊은 곳까지는 아직 들여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 속 그 인물들에 대해 비판의 눈길부터 들이대듯 그가 했던 것의 윤리를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러움을 유지하고서 이 뉴스를 헤아려본다면, 최소한 우리는 그로부터 어째서 자보가 그의 영화적 주제를 꺼내놓고 계속해서 고찰했는지에 대한 이해의 발판 하나를 얻을 수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통해 단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간이라면 누구든 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조건을 본 것은 아닐까?

자보는 미클로스 얀초와 함께 1960년대 헝가리 ‘뉴 웨이브’가 배출한 두 명의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화감독이다. 흔히 이야기하듯 당시의 헝가리 영화들이 집중했던 주요 주제가 개인과 역사의 관계라고 한다면 자보는 그 경향을 가장 잘 구현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초창기 영화들에서부터 이미 그 안의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환경으로서 역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자보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사랑영화>(1970)를 예로 들자면, 이것은 어렸을 적의 친구였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어떻게 사랑이 생겨나서 부서지는가를 다룬 ‘사랑 영화’이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알랭 레네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는 ‘기억에 대한 영화’이지만 2차 대전과 1956년의 상황과 엮여있는 사랑영화이고 기억의 영화인 것이다.

<레들 대령>

어느 정도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자보가 영화 속에서 주로 다루는 문제는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 인간은 과연 자신의 도덕적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보의 가장 잘 알려진 영화이며 그를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입성케 해준 영화인 <메피스토>는 그런 문제의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야심에 눈 먼 배우가 나치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야심을 성취하려다 ‘추락’하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 이 인물 회프겐에게서 보듯, 역사의 힘에 떠밀린 자보 영화 속의 인물에게 ‘타협’이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사실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자보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삶의 영위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행위인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자신의 제어력이 대폭 축소된 위기의 시기에 생명을 이어가겠다고 해서 타인에게, 혹은 시스템에게 스스로의 굴복을 얼마만큼이나 허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보는 인물들이 어떤 가능한 가상의 선을 넘어버렸을 때 그것은 단지 윤리를 배반하는 것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비천한’ 출신 성분을 감추려 하는 <레들 대령>(1985)의 동명 인물이나 스포트라이트만을 좇다가 그것에 의해 상징적으로 그 존재가 지워져 버리는 회프겐의 경우에서 보듯, 자보의 영화들은 정체성의 위기 혹은 존재의 소멸과 관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보라는 진지한 성찰자는 이런 ‘문제적 인물들’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단죄하는 엄격함을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장 르느와르에서 사트야지트 레이에 이르는 영화적 휴머니스트들의 영토 안에 포함될 이 영화감독은 인물들의 심리를 들여다볼 줄 아는 예리함을 가졌고 그에 기반해 회프겐이든 푸르트 뱅글러든 쉬이 변절자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어떤 면에서는 동정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이해할 줄도 아는 신중함을 지녔다. 특정한 시대와 사회의 이야기를 하는 그의 영화가 보편적인 흡인력을 갖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진지함, 예리함, 신중함이 자보를 만신전에 오르게 할만한 자질로 곧바로 이어졌다고 보긴 힘들다. 예컨대, 비록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형식적 활력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영화는 형식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와는 그 관계가 가깝지가 않은 편이다. 또한 그는 <엠마와 부베의 사랑>(1992)의 경우에서 보듯 당대의 현실에 시선을 가져갈 때 감동적인 수작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시간대로 가서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향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자보의 영화가 가치를 갖는 것은 역사와,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인간과, 윤리적 존재론적 문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벌였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영화가 역사에, 그리고 인간에 대답하는 방식의 소중한 실례로 남을 것이다.


The Cinematic World of Istvan Szabo

As Hungarian director Istvan Szabo became more well known, a certain aspect of his life gained attention. After the failed Hungarian uprising of 1956, Szabo worked for the Hungarian secret intelligence. He said it allowed him to save the lives of his friends. This news immediately brought to mind the protagonists of Szabo's own films. In Szabo's case, we can’t expose him to the same criticism that his characters faced. We can, however, use thisinformation to understand why Szabo chooses his cinematic topics. He seems to see in his experiences not the particular travails of an individual, but the conditions of a reality from which no one could escape.

Together with Miklos Jansco, Szabo stood atthe center of the Hungarian "New Wave" in the 1960s. In a period when the question of the individual's relation to history came to the fore, Szabo perfectly embodied this movement. From his first films, we see people confronting their history, not through abstract concepts, but through concrete circumstances. His third feature length film, <Love Film> from 1970, is a good example. The movie is both a love story and, in a way that unconsciously echoesthe work of Alain Resnais, also a "memory movie," showing how the past endlessly crashes into the present. Yet both concepts are engaged through the concrete experiences during World War 2 and the Hungarian Uprising of 1956.

To put it more simply, Szabo's movies ask how people are able to maintain their moral autonomy as they are flung through the tumult of history. <Mephisto> is prototypical of this critical perspective. An actor of blind ambition sells his soul to the devil, in the form of the Nazis, and then faces a precipitous fall. The characters of Szabo's films are continually forced to make desperate choices regarding their compromise with history as they try to survive. For Szabo, when people cross certain imaginary lines, this isn't simply a case of a moral betrayal, it is an abandonment of existence itself. That's why his movies are often concerned with identity crises or the nullification of existence, as in his 1985 work, <Colonel Redl>, where the main character struggles to conceal his humble origins.

For Szabo, possessive of a sharp eye for understanding human psychology and a deep compassion for betrayers, these "problematic personalities" can't be judged with strict condemnation. This may be why his films all seem to be possessed with a certain universal absorbing force. Yet this is not thetrait that will allow him to rise to the pantheon of film. Indeed, the form of his movies all seem to lack any deep consideration. Nevertheless, the value of Szabo's films comes in their serious dialogue that confronts ontological and ethical questions as they engage history, and the people who fall withi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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