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익스프레스 Kabul Express
카비르 칸/인도/2006/106분/아시아 영화의 창
미국이 오사마 빈라덴의 은거지로 아프가니스탄을 지목하자 파키스탄은 그동안 지원해온 탈레반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카불 익스프레스>는 파키스탄 군의 철수가 거의 끝나가던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다섯 명이 지프 ‘카불 익스프레스’를 타고 국경으로 향하는 로드무비다. 인도 저널리스트 슈엘과 카메라맨 제이는 가이드겸 운전사로 고용한 카비르의 안내로 탈레반을 인터뷰하려고 하지만 성과를 얻지 못한다. 카불을 배회하던 그들은 낙오된 파키스탄인 탈레반 임란에게 납치되어 파키스탄 국경으로 향하게 된다. 험한 길을 가던 도중에 세 사람은 임란을 제압할 뻔도 하지만 카불에서 만나 뒤를 따라온 미국인 저널리스트 제시카까지 덩달아 포로가 되고 만다.
낙오된 파키스탄 군인들의 이야기를 포함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감독 카비르 칸은 극영화로는 데뷔작인 <카불 익스프레스>를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웃음과 흥과 눈물이 한데 섞인 영화로 완성했다. 몇번의 플래시백을 제외하면 매우 단순한 이 영화는 공들여 지어낸 드라마라기보다 절묘하게 촬영하고 편집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그때문에 오히려 극적이다. 슈엘을 향해 웃고 있던 소년이 한쪽 다리가 허벅지만 남은 모습으로 일어서는 장면은 감상적으로 머물지 않고 순식간에 스쳐지나가지만, 그 잠깐의 충격은 두고두고 마음에 머문다. 캐릭터도 비슷하다. 기자 정신은 어디에 갔는지 “엄마 아빠가 엔지니어나 의사가 되라고 할 때 말들을 걸 그랬지”라며 한탄하는 제이, 정작 위험한 순간이 되면 자기는 뒤로 물러난채 빨리 카메라를 들라고 제이만 재촉하는 슈엘, 탈레반에 반대하지만 군대의 명에 따라 싸울 수밖에 없었던 임란. 종군기자와 탈레반의 신화를 벗어던진 이들은 선의와 악의가 교차하는 가운데 그저 불완전하고 가엾은 인간일 뿐인 서로를 발견해간다.
그러므로 제이와 슈엘이 탈레반을 때려죽이고 있는 군중에게 임란을 넘기지 않는 건 억지로 조성된 우정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이 목격한 야만에 치를 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여 무력한 개인을 내던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탈레반의 폭정을 체험했던 아프가니스탄인 카비르는 이런 물음에 있어 단호하며 끝내 임란을 용서하지 못한다. <카불 익스프레스>는 이처럼 어느 하나의 입장을 강요하기 보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동행인들의 마음을 그저 보여준다. 굴곡많은 여행이 끝나고 임란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카불로 돌아오며 제이는 독백한다. “그는 정말 적이었을까. 우리는 모두 노래를 좋아했고, 최소한 거의 모두는, 크리켓을 좋아했다” 진정 위대한 크리켓 선수가 누구인가를 두고 다투고, 함께 노래도 부르던 다섯 명은, 저마다의 비극을 간직한채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혹은 영원히 버려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