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행을 떠난다. 길에 새겨진 연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는 10년간 닫아두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봄날은 간다> 이후 5년 만에 ‘멜로’로 돌아온 유지태는 다시 한번 부재의 아픔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허물어질듯 위태로워보였던 소년은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남자가 됐다. “실화를 소재로 했고,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특별한 멜로영화라는 점에 끌렸다. <가을로>는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긴 작품이다.”
목포, 경주, 태백 등으로 이어지는 <가을로>의 여행길은 무려 60곳이 넘는 로케이션을 통해 완성됐다. 촬영 당시 연극 <육분의 륙>을 병행하던 유지태는 몇달간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연습하며 전국 각지를 밟는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메니에르병이라고 중심 감각을 잃는 병도 얻었다.” 고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을 향한 신뢰였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김대승 감독님은 화면 구석에 있는 사람 한명까지 꼼꼼히 챙기는 분이고, 명작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러한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허진호, 박찬욱, 홍상수 등 유지태의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있는 굵직한 이름들은 배우로서 그가 밟아온 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다. “스타성 위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내게 영화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도전해왔다. 인기는 없어졌지만(웃음), 나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자전거 소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등 꾸준히 단편영화를 연출해온 유지태는 이동 중에, 목욕할 때, 잠자기 전에, 각각 봐야 할 영화와 책을 준비해놓을 만큼 성실한 영화학도다. “그냥 이러고 살다가 죽으련다”며 털털하게 내뱉는 그가 현재 꿈꾸는 것은 다름 아닌 ‘따뜻함’. “그동안 ‘쎈’ 영화들을 주로 해왔다. 슬퍼하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이제는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을 따뜻함을 찾아,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시키고 싶다.” 유지태는 깊어가고 있다. 소리없이 찾아온 가을이 어느새 따뜻한 빛으로 여물어가듯이.
유지태가 말하는 김지수
“지수 누나는 한눈에도 정말 인형처럼 생겼다. 연약해 보이기도 하고. 직접 만나기 전에 <여자, 정혜>를 보면서 역시 김지수씨는 그런 이미지구나, 연기도 좀 소시민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혼자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웬걸, 직접 만나보니 완전히 여장부다. 그래서 바로 누나라고 불렀다. (웃음) 지수 누나는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고,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마냥 편하게 대하다가도 비판할 점이 생기면 굉장히 뚜렷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가을로>를 함께하면서도 내가 조금만 잘못했다 싶으면 바로 ‘지태야, 너 이런 거 좀 해야 하지 않니?’라며 바로 대놓고 이야기하더라. 그런 당당함과 솔직함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나중에 내가 어떤 작품을 하게 되건 지수 누나를 VIP 시사회에 꼭 초청하고 싶다. 블로그에도 들어가봤는데 글도 예쁘게 잘 쓰더라. 여러모로 재주가 많은 사람 같다. 참, 술도 정말 잘 마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