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A to Z [1]
2006-11-01
글 : 김도훈

코코 샤넬이 말하길 “패션은 하늘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인간의 관념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사다”. 그러나 동대문에서 건진 철 지난 추리닝을 입고 영화관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패션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반년마다 한번씩 바꾸어야만 하는 추악함의 한 형태”라던 오스카 와일드의 독설을 더욱 신뢰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 당신을 위해 ‘A부터 Z까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관람하기 위한 지식검색’을 준비했다. 이 정도면 샤넬과 프라다와 존 갈리아노를 걸친 악마들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는 충분하다.

Anna Wintour: 안나 윈투어

“미란다를 연기하기 위해 안나 윈투어에 대해 조사한 적은 없다”는 메릴 스트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가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윈투어는 1970년 영국의 <하퍼스 & 퀸>에서 기자로 일하며 패션업계에 뛰어든 인물. <하퍼스 바자> 등의 패션잡지를 거치며 경력을 쌓은 그는 1986년에 영국판 <보그>의 판매부수를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부터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 자리를 꿰차게 된다.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핵겨울’(Nuclear Winter)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가 패션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게 된 것은 새로운 트렌드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독자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 덕분이다. 그렇게 윈투어가 과거 20여년간 획득한 권위는 놀라울 정도. 윈투어가 도착하지 않으면 패션쇼는 시작되지 않으며, 그가 패션쇼에 참여한 디자이너는 곧바로 유명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른다. 문화적 아이콘의 지위에 오른 윈투어가 할리우드에 영감을 준 것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처음이 아니다. 픽사의 <인크레더블>에 등장한 디자이너 에드나 앤 모드의 모델이 안나 윈투어라는 것은, 트레이드 마크인 뱅 스타일의 머리만 보더라도 짐작이 가능하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참여하는 <보그> 기자는 가차없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의 시사회에는 멋진 프라다를 입고 참석했다.

Boxoffice: 박스오피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북미에서 1억2450만달러, 해외에서 5천만달러가량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블록버스터급 스타의 개런티에도 미치지 못하는 3500만달러 예산의 여성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성적이며, 박스오피스를 집계하는 <박스오피스 모조>의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에 이어 기대 이상의 여름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3위와 5위는 <리틀 미스 선샤인>과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기록했다.

Chick-Lit: 칙릿

칙릿은 20~30대 여성 독자를 타깃으로 해 쓰여진 장르 소설을 의미하는 단어다.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준말인 릿(lit)을 합친 말로, 칙북(chick book)으로도 불린다. 문학 전문가들은 칙릿이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TV드라마 <섹스 & 시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구어체 표현으로 굳어졌다고 유추한다. 사실 칙릿이라는 단어에는 조금 경멸적인 의미가 있다. <뉴욕타임스>의 커티스 시텐펠트 같은 문학비평가는 “여자들이 읽는 소설을 칙릿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을 창녀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칙릿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우리 모두를 조금 격하시키는 것은 아닐까?”라며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남자들의 칙릿은 라드릿(Lad-Lit)이나 딕릿(Dick-Lit)이라고 부르는데, 전문직 여성이 주인공인 칙릿과는 달리 세상일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멍청이 같은 남정네들의 신세한탄을 주로 담고 있다.

David Frankel: 데이비드 프랭클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은 1986년에 시트콤 <엘렌 버스틴 쇼>의 작가로 경력을 시작한 방송계 출신의 인재다. 그가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공전의 히트 드라마 <섹스 & 시티>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요 에피소드들과 <HBO> 시리즈 <안투라지>(Entourage)를 연출하면서부터. 특히 가상의 할리우드 스타 빈센트 체이스의 일상을 다루는 <안투라지>는 남성판 <섹스 & 시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HBO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됐다. 빈센트 역을 맡은 에이드리언 그레니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드리아의 남자친구 네이트를 연기한다.

Emily Blunt: 에밀리 블런트

앤드리아의 직속상사 에밀리 역을 맡은 에밀리 블런트는 메릴 스트립이 나오지 않는 장면마다 앤 해서웨이의 몫을 가로채며 화면을 장악한다. 영국 배우 에밀리 블런트는 2004년작인 파웰 파우리코스키 감독의 <사랑이 찾아온 여름>(My Summer of Love)에서 중산층 소녀 탐신을 연기해 국제적인 호평을 받기 시작한 신인배우. 엘렌 버스틴과 함께 출연하는 <제인 오스틴 북클럽>에도 곧 출연할 예정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영국 출신의 재원.

Fashion Journalism: 패션 저널리즘

이선재·고영림의 <패션사진, 문화와 욕망을 읽는다> 중에서 발췌. “패션(유행)이란 전염성있는 사회적 동조 현상이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패션은 산업혁명 뒤 잡지의 대중화와 함께 출발한 것이다.”

Gisele Bundchen: 지젤 번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의 동료 세레나 역으로 잠시 등장하는 지젤 번천은 세계 최고의 모델이다. 수익으로 따지자면 이 브라질 출신의 여신을 따라갈 모델이 없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지젤 번천이 올린 수익은 1520만달러(약 150억원)이며, 이는 2위를 기록한 <프로젝트 런웨이>의 하이디 클룸이 벌어들인 750만달러의 2배에 가깝다. 독일계와 브라질계 피가 섞인 지젤 번천은 14살에 맥도널드에서 빅맥을 먹다가 모델 에이전트에게 스카우트되어 모델 생활을 시작했고, 1996년 뉴욕으로 진출하자마자 수많은 톱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으며 슈퍼모델의 자리에 올랐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전 애인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올해 패션쇼 무대 은퇴를 선언했는데 “스타일리스트에게 뛰어갔다가 또다시 뛰어오고, 휴대폰은 만날 울리고, 누군가가 시종일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매만지고, 이런 일은 이제 피곤하다”는 게 이유였으나, 진짜 이유는 평생 놀고먹을 돈을 충분히 벌었기 때문일 것이다.

Heute-Couture: 오트쿠튀르

프랑스어로 직역하자면 ‘고급 재봉술’을 의미하는 오트쿠튀르는, 맞춤 제작되는 디자이너 의상을 지칭하는 단어다. 오트쿠튀르 의상은 구매자의 주문에 따라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며, 기성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과 완벽한 수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오트쿠튀르라는 단어 자체는 법적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으며, 프랑스 산업청에서 열리는 위원회가 인정을 해야만 특정 디자이너가 오트쿠튀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다. 2차대전 이후 오트쿠튀르 의상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워지자 탄생한 것이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로 익숙한 ‘프레타포르테’(고급기성복)다. 오트쿠튀르의 고고함은 여전히 패션계에 남아 있지만, 현대 패션의 경향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대량생산이 가능한 프레타포르테라고 할 수 있다.

Industry: 산업

오트쿠튀르나 프레타포르테의 의상과 보세창고에서 건진 일상복 사이에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라고 불평한다면 미란다 프리슬리에게 한마디 들을지어다. 극중에서 앤드리아가 똑같은 파란색 벨트를 두고 고민하는 기자들을 향해 조소를 보내자, 프리슬리는 똑 부러지게 앤드리아의 교만을 일축한다. “넌 그냥 네 옷장으로 가서 그 미련스러운 파란색 스웨터를 골라들었겠지. 옷 따위에 신경쓸 틈 없는 진지한 인간이라는 걸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네가 모르는 사실은, 그 파란색이 그냥 파란색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파란색 중에서도 터쿼즈(Turquoise)색이 아니라 정확히는 세룰리언(Cerulean)색이지. 2002년에 오스카 데 라 렌타가 세룰리언색 이브닝 가운을 발표했고, 다음에는 입생로랑이 세룰리언색 군용 재킷을 선보였지. 그러자 세룰리언색은 급속하게 퍼져나가 8명의 다른 컬렉션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백화점을 거쳐서 네가 옷을 사는 그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가게 된 거지. 네가 입고 있는 그 파란색은 셀 수 없이 많은 일자리와 수백만달러의 재화를 창출했어.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너는 여기 패션계의 사람들이 골라준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는 거야.”

Jargon: 은어

패션계에서 ‘에지하다’(날카롭고 개성있다), ‘힙하다’(세련되고 현대적이다)라는 단어를 모르면 “시크하지 않은 사람”(세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핍박을 들을 터다. 패션지에서 찾은 첫 번째 사례. 마린룩을 완성시키는 루스한 화이트 재킷은 이번 서머 시즌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여름 휴가 옷차림을 완성시키는 헐렁한 흰색 재킷은 올 여름에 꼭 구입해야 할 아이템). 두 번째 사례. 걸리시한 아이템과 매니시한 아이템이 서로 믹스매치되어 절충주의적인 힙한 스타일링이 완성된다(여성스러운 아이템과 중성적인 아이템이 혼합되어 절충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 완성된다).

keek: 의복업계의 스파이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영화들은 많지만 패션계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로버트 알트먼의 95년작 <패션쇼>(Pret-a-Porter)와 96년작인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의 <언지프>(Unzipped)다. <패션쇼>는 파리의 프레타포르테에 참석한 패션 전문방송 리포터와 디자이너, 모델, 패션 담당기자, 패션 디자이너의 미망인 등 수많은 인물 군상을 통해 패션계라는 이상한 나라를 탐색하는 전형적인 알트먼식 영화. <언지프>는 패션 디자이너 아이작 마즈라히가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르는 정신없는 다큐멘터리의 일종이다. 실제 패션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언지프>가 좀더 쓸 만하다.

Lauren Weisberger: 로렌 와이스버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원작자. 코넬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원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하는 그냥 평상적인 방법으로” <보그>에 들어가 1999년부터 1년간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2003년에 첫 번째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발표했고, 평생 프라다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을 벌었고, 2005년에 두 번째 소설 <Everybody Worth Knowing>(누구나 알 만한 가치가 있다)를 발표했으나 신통찮았다. “나는 그다지 패션에 밝지 못해서 디자이너 의상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가게에 진열된 마크 제이콥스의 제품들은 모조리 사랑한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