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남자, 부드럽게 도발하다,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김주혁
2006-10-27
사진 : 이혜정
글 : 장미

김주혁이 입을 열었다. 저음의 목소리에서 단단하게 여며진 상처가 느껴졌다. 만인의 연인이자 지독한 속물인 줄리앙. 김주혁이 풀어낼 다음 사연은 “사랑따윈 필요없다”는 그의 것이다. “기존에 하던 역할이 아니었고 조금 섹시한 면도 있고 해서 탐이 났지요. (웃음)” <YMCA 야구단>의 오대현, <싱글즈>의 수헌, <프라하의 연인>의 최상현, <광식이 동생 광태>의 유광식, <청연>의 한지혁, ‘넘버 원 호스트’ 줄리앙은 곧고 번듯했던 이들과 다른 서슬 퍼런 남자다. “과거의 아픔이 있는 놈이에요. 표현은 냉소적이지만 사랑을 간절히 원해요. 사랑을 못 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그 앞에 그 사람의 아픔을 꿰뚫는 여자가 나타난 거죠.”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에, 잘나가던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라니 모험이 아닐 리 없었다.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원작이에요. 원작과 달라야 해 부담스러웠는데 이건 정말 한심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뭘 다르게 하려고 해. 내가 하면 어차피 다른데. 그러잖아요.” 도전에 응하기 앞서 단단하게 벼려둔 목표 역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렇게 행동한다 규정짓진 않았어요. 그건 외양적인 부분이고 한 가지 목표만 갖고 그걸 향해 달려가는 거죠. 나는 이 여자의 돈을 원해. 사랑을 원해. 거기에 부수적으로 장치, 치장 이런 게 들어가요. 목표가 흐린데 연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툭툭 내던지는 말투에 스민 솔직함. 진심 어린 말이 아니면 낯간지러울 김주혁에게 연기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내 안에서 하는 거니까, 그렇게 거부감 느끼진 않을 거예요. 저는 연기할 때 그렇게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점점 하다보면 그 영역이 넓어지겠죠. 그릇이 조그만데 큰 그릇을 하겠다고, 모양이 완전히 다른 그릇을 하겠다고 하는 건 미련한 짓 같아요.”

단호한 연기 철학 때문일까. <싱글즈>의 호평에 이어 <광식이 동생 광태>의 성공, <프라하의 연인>이 유지한 30% 후반대의 시청률까지 흥행의 행운이 뒤따랐다. 김주혁이 자신을 행운아라고 소개하는 것은, 그러나 다른 이유 때문이다. “배우는 엄청 많을걸요. 그중에 우리가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아는 배우가 몇명이나 될 것 같아요? 거기 속해 있다는 사실로도 행운아지.” 고착된 이미지를 장점이라 여기고 “유들유들하게 천천히” 캐릭터를 깨나가리란 말은 영락없는 낙천주의자의 것이지만 그는 실상 소심한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오케이 사인 받고도 맞는 거야? 맞는 거야? 만날 이래요. 상처를 받아도 잘 삭이는 편이지만 혼자 걱정은 태산이지. (웃음)” 까닭없이 달콤한 백일몽이 아니라 오롯이 맞닥뜨린 현실을 불러내기에 김주혁의 매력은 유효하다.

김주혁에게 문근영은

“어린 친군데 배려심이 굉장히 강해요. 연기를 같이 하는 법을 아는 거죠. 자기 것만 챙기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많이 주는 친구죠. 나 찍을 때도 열심히 도와주고. 기본이 돼 있죠. 가정교육을 참 잘 받았어요. 이렇게 예쁜 여동생 두면 완전히 공주로 크는 거죠. 여자친구로서 근영이요? 훌륭하죠. 근데 근영이는 결혼할 여자인 것 같아. 쟤는 그런 이미지가 싫겠지. 조금 이탈하고 싶기도 하고. 너무 국민여동생, 국민여동생 그러면 안 좋아. 사람들이 다 촉각을 곤두세운 채 보고 있고.”

의상협찬 C·N·C(커스텀내셔널), 프라다, HR, 쏘피 by 데이비스·스타일리스트 남주희, 최진아·헤어 메이크업 알트&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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