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주목할 만한 영화 속 뮤지컬 명장면 [1]
2006-11-02
글 : 신민경 (자유기고가)

충무로에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낯설어서 위험하고, 비용과 노력도 만만치 않아 선뜻 시도되지 못했던 뮤지컬영화. 그 위험 장르를 ‘감히’ 표방하고 나선 영화들이 한국 영화계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명맥이 끊겼던 뮤지컬은 최근 <다세포 소녀>로 살짝 워밍업을 하더니, <구미호 가족>과 <삼거리극장>에 이르러서는 아예 멍석을 깔았다. 일단 눈과 귀가 즐겁다. 하지만 뮤지컬의 묘미는 단순히 춤과 노래에만 있는 게 아니다.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전환해주는 치유의 판타지,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데서 얻는 쾌감이야말로 뮤지컬의 정수가 아닐까. 그래서 모아봤다. 영화 속에 삽입된 황당하고 짜릿하며 대담하기 그지없는 뮤지컬 명장면들! 인생이 미치도록 지루한 사람들은 블랙홀에 빠져들 각오, 단단히 하시라.

<삼거리극장> - 따분한 영혼들이여, 깨어나라

감독 | 전계수 출연 | 김꽃비, 박준면, 조희봉, 박영수, 한애리
배경 | 폐관되기 직전의 삼거리극장

♬ 외롭고 힘들 땐 두눈을 꼭 감아. 두눈을 감으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지. 두려워하지 마, 슬퍼하지도 마. 거기서 네 모습을 발견해. ♬

소단은 사라진 할머니를 찾아 삼거리극장에 왔다가 얼떨결에 매표소 직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늦은 밤, 난데없이 극장 직원들이 혼령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 이들은 ‘파렴치한 현대인’이란 이유로 소단을 몰아붙이며, 한바탕 기괴한 향연을 벌인다. 그러나 소단은 이들이 무섭지 않다. 외로움에 떠느니 차라리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는 개소리, 똥 싸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춤이나 출 시간이다. 동이 트면 다시 잿빛 현실로 돌아갈 테지만, 당장은 이 밤의 유랑극단이 즐겁기만 하다. 피의 밤, 죽어도 죽지 않는 자들의 요란한 파티! <삼거리극장>은 이렇게 한바탕 춤으로 기괴한 상상의 포문을 연다.

<구미호 가족> - 간을 주세요, 싱싱한 간을

감독 | 이형곤 출연 | 주현, 박준규, 하정우, 박시연, 고주연
배경 | 노숙자들이 살고 있는 굴다리 아래

♬ 외모, 집안, 학벌, 나이 상관없~어요. 정말로 상관없어! 서커스를 못해도 상관없어요, 정말로 상관없어! 따뜻한 세끼 밥에 편안한 잠자리로! 가족같이 지낼 서커스 단원을 모집합니다! ♬

인간이 되고 싶은 구미호 일가족, 꿈을 이루기 위해 천년이나 기다렸다. 이제 펄떡펄떡 숨쉬는 인간의 간만 있으면 되는데, 인간을 홀리는 일도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전략이 있어야 하나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요상한 재주를 적극 활용해 서커스장을 개업한 구미호들. 사기꾼 기동과 함께 서커스단원, 아니 간을 상납할 인간을 찾아 나선다. 밝혀도 너무 밝히는 첫째 구미호와 단순무식 아들 구미호, 겉 다르고 속 다른 막내 구미호, 나이 지긋한 아버지 구미호까지 다들 열심히 흔들어댄다. 그러나 피로가 축적된 노숙자들의 혈색을 보라. 잘못 골라도 너무 잘못 고른 듯싶다. 간을 향한 구미호들의 깊은 사랑이 리드미컬하게 표현된 뮤지컬 시퀀스.

<8명의 여인들> -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감독 | 프랑수아 오종 출연 | 비르지니 르도엔, 뤼디빈 사니에르
배경 | 폭설로 고립된 시골 저택

♬ 당신은 내 사랑, 내 친구. 내 꿈은 온통 당신뿐. 난 오직 당신만을 노래해. 당신 없인 살 수 없어. …난 당신을 떠났어. 비록 원한 건 아니지만. 이따금 당신을 노래할게. 하지만 사랑은 희미해지겠지. ♬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집안의 유일한 남자이자 가장인 아버지가 살해됐다. 용의자는 저택에 모인 8명의 여인들. 슬퍼하는 것도 잠시, 천연덕스럽게 노래 한자락씩 뽑아내며 변명과 신세 한탄하느라 정신없다. 가슴 절절한 샹송에서 발랄한 동요풍 노래까지, <8명의 여인들>에는 온갖 장르의 음악들이 총출동한다. 그중 이 장면은 충격적인 임신 소식을 밝힌 큰딸과 작은딸이 아이 아버지에 대해 나누는 대화. 감미로운 선율까지는 좋았는데, 두손을 맞잡고 하는 단순한 ‘쎄쎄쎄’ 율동은 왠지 비웃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근데 아버지가 죽은 마당에 웬 사랑 타령? ‘아빠 힘내세요’ 분위기라도 연출해야 하는 거 아냐?

<찰리와 초콜릿 공장> - 움파룸파는 만능 엔터테이너

감독 | 팀 버튼 출연 | 조니 뎁, 딥 로이
배경 |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

♬ 아우구스투스 글룹, 엄청나게 뚱뚱한 욕심쟁이 멍청이. 정말 뚱뚱하고 혐오스럽지. 정말 욕심 많고 지저분하고 유아적이지. 자 어서! 그를 파이프 위로 쏘아올릴 시간이 됐어. ♬

단정한 여고생 단발머리의 조니 뎁도 사랑스럽지만, 움파룸파의 저 충격적인 카리스마에 당해내진 못한다. 움파룸파가 누구냐 하면, 윌리 웡카가 먼 나라에서 카카오 콩으로 꼬여 데리고 온 일꾼이다. 초콜릿 제조에 비서 역할은 기본이고, 오락반장 노릇까지도 톡톡히 하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쏘냐. 움파룸파의 쇼는 공장을 방문한 아이들이 하나씩 탈락할 때마다 볼 수 있다. 첫 탈락자는 식탐 앞에서 무너진 독일 소년 아우구스투스. 탈락과 동시에 스미스 요원 수준으로 복제된 움파룸파들이 나와 유쾌한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춤이라기보다는 뻣뻣한 국민체조에 가깝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갈수록 점점 노련해져서 나중에는 전설적인 그룹 퀸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다세포 소녀> - 섹시하게 교가를 불러보아요

감독 | 이재용 출연 | 김옥빈, 박진우, 이켠
배경 | 쾌락의 명문 무쓸모고등학교

♬ 샘솟는 젊은 기상 하이바이, 넘치는 헛된 욕망 바이바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진정 우주의 섭리를 이해한 고등학교, 무쓸모. 빛나는 지혜를 슬기롭게 갈고닦고 기름칠해 겨레의 꽃동산 그 언덕에 단비되어라. ♬

한국 고등학교의 교실이 저렇게 컬러풀했던 적이 있었나. 방종과 문란함이 하늘을 찌르는 쾌락의 명문, 무쓸모고등학교는 오리엔테이션부터 엽기 찬란하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저 언니들, 미치도록 발랄한 핑크색 복장을 하고 학교 안내를 시작한다. 어리둥절해하는 외눈박이 주변에서 시작해 기독교반, 불교반, 하레크리슈나교반 등을 거친 뒤 교문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오리엔테이션은 끝이 난다. 그러나 언니들이 부르는 교가는 여러 번 들어도 이해 불가이고, 교실 풍경도 낯설기만 하다. 이런 뮤지컬 신들은 영화 곳곳에 삽입돼, 무쓸모고교의 부적절한 교풍을 강조한다. 그래도 발랄한 건 사실이니, 청춘은 청춘이로구나!

컬트 뮤지컬의 대표선수 <록키 호러 픽쳐 쇼>

한국에서 혼령들과 구미호의 춤판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 1975년 미국의 한 심야극장에서는 외계인들의 산만하고 어지러운 향연이 시작됐다. 컬트 뮤지컬의 대선배 격인 <록키 호러 픽쳐 쇼>. 영화광들의 통과의례 같은 이 영화는, 낯선 성을 방문한 두 남녀의 기이한 체험을 그리고 있다. 트랜섹슈얼 행성 출신인 양성의 과학자 프랭크 박사(프랑켄슈타인을 패러디한 듯한!)와 그의 창조물인 록키, 하인들, 정체불명의 손님들이 모여 선정적인 파티를 열고, 두 남녀는 속옷 차림으로 파티의 참관인이 된다. 지극히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도 섹슈얼한 긴장감이 흘러넘치는데, 특히 프랭크 박사의 그물 스타킹과 가터, 하이힐 차림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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