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배창호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 <길> [2]
2006-11-22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고래사냥>의 아버지 버전

이 이상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이것이 배창호의 영화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은 이 영화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여기서 배창호가 다루는 남성들이 한국영화 안에서 이상할 정도로 유약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는 한국영화가 1970년대에 호스티스 에로물과 하이틴 로맨스로 거의 쑥밭이 된 다음에 데뷔한 1980년대의 첫 번째 감독이다. 그때 그는 남성성의 정체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등장한 뒤 거의 보잘것없는 남자주인공들을 내세워서 그 안에서 남성성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세 번째 영화 <적도의 꽃> 이후 배창호의 남자들은 우유부단하거나, 수줍거나, 용기가 없거나, 정신지체이거나, 가난하다. 배창호에게 여자는 숭배받아야 할 성모마리아거나, 아니면 버림받아야 할 창녀거나 둘 다이다. 그가 <황진이>를 찍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다음 그는 1990년대에도 계속 영화를 만들었지만 만족스럽게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이것을 단지 그가 대중적인 흥행에서 실패했다는 말을 반복하기 위해서 꺼낸 말이 아니다. 배창호는 계속 영화를 만들었지만 역사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21세기 들어 처음 만든 영화가 <길>이다. 그는 1990년대를 건너뛰었는가?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신기하게 여긴 것은 사실상 (내 생각에) <길>이 배창호의 <고래사냥>의 ‘아버지’ 버전이기 때문이다.

병태는 우연히 만난 벙어리 창녀 춘자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런데 사실 춘자는 병태와 아무 상관이 없는 여자이다(<고래사냥>). 태석은 우연히 만난 신영을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한겨울 눈 내린 산을 넘는다. 그런데 사실 신영은 (친구의 딸이라는 점을 빼면) 태석과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태석은 신영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그렇지 않다면 태석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왜 한마디도 질문하지 않을까?). 나는 처음에는 신영이 그 ‘사건’(이라고 알고 있었던 오해) 이후에 득수와 함께 살게 된 태석의 아내가 낳은 딸이며, 그러므로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의 딸이기 때문에 한때 친구였지만 원수가 된 득수의 장례식에 데려다주는 줄 알았다. 그런 오해를 한 까닭은 ‘두 번째 하필이면’ 태석이 있는 옆방에서 간질을 일으킨 다음 그가 그녀의 방에 오자 (두 번째 하필이면 안의 어떻게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하필이면) 보란 듯이 분갑을 꺼내서 분칠하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그녀의 가방에서 태석이 몰래 꺼내보는 분갑은 득수가 태석의 아내에게 20년 전에 사다준 것과 똑같은 분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갑도 유행을 타고 변한다고 생각한다. 득수가 태석의 아내에게 분갑을 선물한 것은 1956년이었다(그 분갑을 건네줄 때 라디오 방송으로 연도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태석이 신영을 만난 것은 1970년대 중반 어느 겨울이다. 두개의 분갑은 비슷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20년을 건너뛰어 아내가 보낸 편지처럼, 그러나 사실은 원수(같은 친구 득수)가 보낸 유서처럼, 태석 앞에 도착한 분갑. 여기서 신영이 분갑을 꺼내들 때, 그래서 20년 전의 태석의 아내가 갖고 있던 것과 동일한 분갑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무늬, 그 색깔, 그 디자인, 아니, 차라리 그냥 현장 표현을 빌리면 저기서 쓴 소도구를 들고서 여기로 가져온 듯한 동일한 분갑) 그 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득수는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는 항상 동일한 분갑을 선물하고, 그래서 태석의 아내에게 준 것과 같은 분갑을 신영의 어머니에게도 선물한 것일까? 그래서 그 분갑을 신영에게 물려준 것일까? 그런데 언제? 그녀는 그렇게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내내 청계천 시다를 거친 다음 구로공단에서 일을 하고 최근에는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로 일했었다는데? 나는 <길>을 보면서 설정이 그러니까 그렇다고 치고 진행한다고 양보하더라도 미스터리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산수를 잘 못한다. 혹은 <길>은 종종 모호한 셈을 한다. 여기서 꼼꼼한 셈은 내 질문을 벗어나는 것이다.

원래의 질문은 태석이 신영과 사실상 아무 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는 친화성과 병태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춘자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돌아갈 때의 친화성, 둘 사이의 친화성의 대차대조표다. 여기에는 이상하게도 두 남자가 집에 데려다주는 두 여자의 공통점이 타락한 육체라는 데 있다. 사창가에 팔려간 춘자. 구로동 공장에서 일하다가 십장의 친절함에 그만 임신을 한 다음 중절한 신영.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 여자. 그녀들은 순결을 잃은 다음 고향에 돌아간다. 그때 그녀들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다. 병태와 태석. 말하자면 <길>은 <고래사냥>을 동어반복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게 아버지의 버전이 되었다고 해서 성숙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소년으로부터 아버지에로 자리를 옮겨간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배창호는 1990년대를 건너뛰는 대신 갑자기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우리 시대를 견뎌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때 병태가 태석이 된 것은 단지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다. 병태는 춘자를 데리고 ‘고래를 잡으러 동해로 간다’(이 외설스러운 말장난. 한국사회에서 ‘고래 잡는다’는 말이 지칭하는 그 행위의 내용). 그는 소년에서 남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때 벙어리였던 춘자가 마지막 순간 말을 되찾는 것은 도식적인 상징적 분리의 성공에 대한 노골적인 암시이다. 그런데 말을 되찾은 춘자의 소외로부터 분리에로의 성공이 정말 병태에게로 전이될 수 있을까? 이건 알 수 없다(거기에 대한 대답은 <고래사냥2>에도 없다). 배창호는 정확히 거기서 멈춘다. 혹은 머뭇거린다. 그런 다음 남편 되기의 두려움에 대해 <기쁜 우리 젊은날>에서 여전히 머뭇거린다. 이게 얼마나 두려웠는지 이 영화를 만든 다음 그는 <고래사냥>보다 더 뒤로 퇴행해서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만든다. 그에게 성장은 두렵거나 아니면 일종의 더렵혀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고래사냥>에서 병태의 보호자였던 안성기마저 여기서는 보호를 받아야 할 ‘또 다른’ 병태로 물러난다. 그러므로 배창호에게 올바른 질문은 무엇에 겁을 먹었는가, 에 있다. 이 질문이 홍상수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차라리 1990년대 세대의 질문은 무엇이 역겨운가, 에 있다. 나는 배창호가 하고 있는 이 질문이 1980년대의 모든 감독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명세도, 장선우도, 박광수도 같은 질문을 견뎌야 한다(좀 이상하지만 나는 여기에 이창동을 포함시키고 싶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서 상상적으로는 욕구불만 상태에 놓여 있고, 상징적으로는 거세에 시달린다. 왜 그렇게 이명세는 첫사랑의 순간에 매달리는가? 왜 그렇게 장선우는 소년 소녀에게서 구원을 얻고자 매달리는가? 왜 그렇게 박광수는 청년에게서 이상을 보고자 매달리는가? 말 그대로 매달림.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어떤 과도적 상태의 시간을 빌려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들은 더러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만큼 취약해진다는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를 다룰 때 배창호에게 그것은 일종의 수난극에 가까워진다. 배창호가 그려낸 결혼생활은 완전히 실패하거나 혹은 고작 꿈에 불과하다(<꿈>). 그런데 <길>은 마치 <꿈> 다음에 찍은 것 같은 영화다(그런 다음 괄호를 치면 배창호의 1990년대를 괄호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때 <길>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는 무언가를 겁주기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혹은 태석은 무서운 아버지의 귀환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영에게 득수는 더이상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다. 득수는 이제 매장해야 할 (실제로나 상징적으로나 둘 다) ‘죽은’ 아버지이며, 태석의 귀환을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아들 영식이 아니라 아버지인 자기 자신이다. 그때 우리는 태석이 아내의 남편으로 머물러 있기 위해서 아직도 아버지가 될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말의 반복. 그러므로 그는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길>과 <서편제>, 배창호와 임권택

그 다음에 떠오른 영화. 임권택의 <서편제>는 <길>과 마찬가지로 남도 땅을 떠도는 이야기다. 서편제는 남도의 소리이며, 그 소리를 따라 떠돈다. 대장장이 태석은 벌교 근처에서 맴돌고 있으며, <길>은 신장리 마을에 가는(것이 플래시백을 제외한) 이야기(의 거의 전부)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두 사내가 모두 사연을 갖고 누군가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둘 다 이 사연은 찾으러 가는 과정 사이에 플래시백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둘 다 호남 땅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공통점은 거기까지다. 그런 다음 여기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서편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의 선을 따라간다. 이 영화는 떠돌이 소리꾼이 되기를 거절하고 떠난 뒤 돌아와 누이 송화를 찾아다니는 남동생 동호의 이야기다. <길>은 처음에는 다른 목표를 찾아간다. 그런 다음 비로소 원래의 목표를 찾아간다. 이 영화는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집 주변을 서성대다가 비로소 그걸 풀고 멀찌감치 서 아내와 아들 영석을 본 다음 발길을 되돌리는 아버지 태석의 이야기다(<길>). 여기서 방점은 ‘집 주변’을 서성거린다는 데 있다. 내가 <길>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지정학적으로 태석이 어딘가 멀리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주변을 서성거리는 이야기라는 데 있다. <길>은 두개의 시간 계열이 번갈아 진행된다. 하나는 1956년에 시작한다. 대장장이 태석은 득수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득수가 그걸 놀음으로 날리자 찾으러 갔다가 그만 폭력을 행사하고 감옥에 간다. 그리고 4년 뒤에 출감한다. (그러니까 1960년) 그 사이에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다음 1970년 겨울 어느 날 벌교 근처의 시골 장터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바로 그 1970년 겨울 어느 날 오후에 시작해서 신장리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득수의 시신이 있는 집에서 하루를 자고, 그리고 신영을 떠나보낸 다음 그날 오후 아내(와 아들 영식과 며느리)가 있는 집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는 이틀 동안의 이야기다. 태석은 아내의 곁에서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그냥 집 주변을 뱅뱅 돌고 있는 중이다. 다만 집에 가지 않을 뿐이다. 이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가 1960년에 집에서 멀리 떠난 다음 거의 십수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면 (영화 도입부의) 벌교 장터에서 단골로 들른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 단골이 있을 수 있을까?) 시장 식당에서 그의 아내가 집에 한번 들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그런데 이 주인은 태석뿐만 아니라 득수도 알고 있다. 그 주인이 어떻게 사연을 모두 알 수 있을까? 주인은 푸념하듯이 말한다. “한때는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한때는 몇달 전이 아니라 20년 전의 일이다). 게다가 그는 가는 곳마다 아는 사람을 만난다. 태석이 버스 정류장 여관에 들렀을 때 옆방의 신영이 간질로 기절하자 그는 여관 주인에게 내가 잘 아는 여자라고 안심시킨다. 다른 방에 머물던 남자가 나타나서 그 여자를 잘 안다고 할 때 여관 주인이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을 믿는 것이다. 그때 여관 주인이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지금 여자는 발작을 일으켜 기절한 상태인데. 그것도 한밤중에. 그러니까 여기서 태석과 득수 사이의 사연을 모르는 사람은 서울 가서 살다가 장례 치르러 잠깐 내려온 득수의 딸 신영뿐이다(신영은 물어본다. “우리 아버지가 아저씨한테 나쁜 일 했지요, 그렇죠?”). 태석은 아내가 기다리는 집 주변을 원을 그리면서 우회하고 또 우회한다. 그에게는 갈 곳이 분명하다. 다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집까지 직선을 긋지 않고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나 <서편제>에서 동호가 찾는 송화는 계속해서 이동 중이다. (<길>에서) 태석은 돌아갈 집이 있지만, 그래서 그 집 근처에서 뱅뱅 돌지만, (<서편제>)에서 송화에게는 머물 집이 없고, 동호에게는 찾아갈 집이 없다. 두개의 선의 차이. 원을 그리는 선과 자꾸만 방향을 전환하면서 그려지는 선. 송화가 한곳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호의 여행은 계속해서 이리저리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송화는 동호를 만난 다음 거기서 다음에 또 자기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는커녕 자기가 몸을 의탁했던 염전 주막 천가에게 말한다. “제 팔자를 생각해보면 당치도 않게 편한 세월이 너무 길었나 봐요. 이제 그만 몸을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이때 동호와 송화를 잇는 선은 한쪽이 감는 동안 다른 쪽이 계속 풀고 있는 운동 중인 두 벡터 사이의 직선이다. 곡선과 직선. <길>과 <서편제>. 배창호와 임권택.

그 둘은 함께 지금 여기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같은 세대에 속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나이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갖고 같은 이야기 안에서 다른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을 따라 그 둘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계열 안에 사랑, 질투, 믿음, 감각, 능력, 정서, 활동, 결정의 도구들을 놓고 그 안에서 다르게 운동하고 있다. 그때 임권택은 그 운동의 사용을 묻는다. 배창호는 그 도구들의 의미를 묻는다. 나는 이 차이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때 이 차이 속에서 활동하는 기억 기계는 플래시백이다. <길>에서는 그 도구들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로지 태석의 기억 안에서만 재현된다. <서편제>는 운동의 사용을 물어보기 때문에 복수의 다발 안에서 구성된다. 그래서 종종 이쪽으로 들어간 기억이 저쪽으로 나온다. 나는 이 선택에서 집에 대한 두개의 태도를 본다. 임권택에게 집이란 기억 그 자체다. 그에게 집은 일종의 ‘시간-기호’이다. 그러므로 <서편제>의 플래시백 기계는 크리스털을 통과하는 것처럼 난반사한다. 여기서 방점은 통과이다. 배창호에게 집이란 그를 불러들이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상황이다. 그에게 집이란 일종의 ‘행위-이미지’다. 그러므로 <길>의 플래시백 기계는 이미 주어진 상황 안으로 수렴된다. 여기서 방점은 수렴이다. 멈추지 않고 그저 통과해버리는 잠재적인 집과 아무리 멀리 떠나도 그 안으로 수렴되는 거기 있는 집. 통과와 수렴. 나는 이때 이상하게도 두 영화에 세워진 각자의 집이 1950년 6월 6·25전쟁을 통과한 세대와 1980년 5월 광주를 (임권택이 6·25전쟁을 경험한 것과 거의 같은 나이에) 멀리서 구경한 세대 사이의 각자의 알레고리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둘 중 누가 더 나은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당신이 더 공감하고 있는지를 물어볼 수는 있다.

근대와의 불화 vs 근대와의 공존

두 번째 차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둘 다 호남 땅을 떠돈다. 서편제 소리를 가다듬으려는 송화가 호남 땅을 떠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서편제’는 ‘西便制’이다). 그런데 <길>에는 호남 땅을 떠돌아야 할 이유가 특별하게 있는 게 아니다. 대장장이들이 호남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호남의 사연이 실리지도 않는다. 벌교가 무대인 이 이야기는 6·25전쟁 휴전 직후의 이야기인데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나 혹은 이 고장의 좌우대립에 대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배창호는 대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호남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호남 사투리를 섞어서 하는 대사로 인해 표준어밖에 모르는 나는 상당 부분을 자막에 의존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을까? <길>에는 자연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그리움이 담겨 있다. 1956년에 시작해서 1970년 겨울에 끝나는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풍경에서 세월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고정된 풍경. 다만 계절의 변화만이 느껴질 뿐이다. 시대는 고정되어 있고, 계절만 변하는 느낌을 줄 때 우리는 이것이 사계절의 변화 안에서 살아가는 농부의 삶의 리듬 감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 여기에는 외부 변화로부터 맹렬하게 견디려는 어떤 저항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21세기에 ‘찍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 담긴 풍경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과장 없이) ‘정말 굉장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창호는 그걸 여기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1970년대 도시 근대화 개발 반대편에 있었던 ‘전원(田園)주의’라고 부를 만한 그 어떤 회귀를.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은 1970년 4월22일 남한 전 국토를 대상으로 근대화의 이름으로 개발을 시작한 새마을운동이다. 태석은 마치 새마을 운동을 피해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분단 직후의 풍경도 없고, 마찬가지로 새마을운동도 없다. ‘그냥’ 시골이 있다. 그때 호남은 ‘그냥’ 시골이라는 무대가 된다. 그는 ‘그냥’ 시골의 아우라를 자아내기 위해 호남을 들이댄 다음(사투리 대사들) 그걸 위해 힘겹게 헌팅을 한다(실제로는 호남뿐만 아니라 강원도와 충청도에서도 찍었다).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한 이 비‘자연스러운’ 노력이라는 아이러니. <서편제>는 ‘서편제’를 다루는 순간 호남으로 가야 한다. 그것은 이야기가 요구하는 내적인 필연성이다. <길>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을 그렇게 함으로써 ‘그 무언가’를 얻으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 무언가? 그때 이미 거기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현실을 억압함으로써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주의 깊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 두개의 지나가버린 과거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경험한 실재의 과거이다. 다른 하나는 그 과거가 통과하지 않았다면 진행됐을 잠재적 과거이다. 신영은 자신이 서울에서 겪은 일을 태석에게 이야기한다. 그때 그 대사는 (마치 팸플릿처럼 낭독되어서 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청계천의 재봉 시다, 구로동 공단, 그리고 백화점으로 이어지는 도시 근대화 과정 안에 흡수된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하여튼) 1970년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태석에게 신영의 이 기나긴 독백은 어떤 경험도 공유되지 않는다. 그녀는 서울에서 벌교로 장소를 이동한 것인데 마치 시대를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그때 신영은 어떤 의미에서 실재의 과거로부터 잠재적 과거에로 수평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같은 말의 다른 표현. 서울이 실재의 과거라는 무대라면 벌교는 잠재적 과거의 무대로 이동한다. 그렇게 될 때 이 전원주의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의 판본이 된다. 말하자면 배창호에게는 근대화에 대해서 ‘그 무언가’를 보호하려고 한다.

<길>의 첫 장면. 장터에서 칼을 갈고 있는 태석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칼 한 자루를 내밀고 이것 좀 갈아달라고 한다. 이때 태석은 그건 스테인리스라서 갈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칼이 미제라고, 못내 아쉽다는 듯이 덧붙인다. 그러자 태석은 푸석한 바지를 턱턱 털면서 이 바지도 미제라고 그깐 미제가 무어 그리 대단하냐는 말투로 대답한다. 그런 다음 태석은 장터에서 자신이 담금질을 한 칼을 꺼내면서 공장에서 하루면 만드는 칼과 자기가 이렇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드는 칼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좋겠냐고 물어본다. 여기에는 대장장이로서의 그의 자부심뿐만 아니라 옛것, 전통적인 방법, 우리 것에 대한 방어가 있다. 그런데 먼 길을 돌아 아내에게 돌아갈 때 태석은 잘 아는 이발소에 들러서 “로버트 테일러 헤어스타일로 깎아달라”고 주문한다. 왜 태석은 신성일 헤어스타일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왜 한국영화 스타보다 할리우드 스타가 더 멋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신성일의 유명한 ‘스포츠가리’는 태석에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1970년대 중반에 로버트 테일러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은 어떤 울림을 갖는가?(알랭 들롱도 아니고, 찰스 브론슨도 아니고, 이소룡도 아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지적할 수 있다. 먼저 칼과 헤어스타일로 드러나는 도상에 대해서. 배창호에게 근대는 외국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두개의 근대가 있다. 하나는 우리 것보다 편하긴 하지만 열등한 근대이다. 다른 하나는 멋있는 외국의 근대이다. 그때 이 이분법이 ‘좋은’ 근대와 ‘나쁜’ 근대로 대비되거나 맞서는 것이 아니라 ‘멋있는’ 근대와 ‘열등한’ 근대라는 비대칭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서편제>와 <길>은 결정적으로 갈라선다. <서편제>에는 근대와의 불화라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길>은 근대와의 공존이라는 문제를 애매하게 질문한다. 단지 판소리와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근대와의 충돌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만이 아니다(물론 두편 모두 그것을 겉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사와 장면이 있다). 두편 모두 마지막에 그들이 염원하는 사람 앞에 선다. 그런 다음 둘 다 그들이 염원하던 그 사람 앞에서 돌아선다. 이때 둘 사이의 차이는 중요하다. <서편제>에서 동호와 송화는 만난다. 그러나 서로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 헤어진다. <길>에서 태석은 집 앞까지 온다. 그런 다음 그냥 여보, 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하지 않고 돌아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왔다 갔다는 메시지를 남겨놓고 떠난다(분갑과 참깨 엿을 담은 누런 봉투). <서편제>에서 동호는 판소리 고수가 되는 게 싫어서 (유사)가족에게서 도망쳤다. 그는 “왜놈 노래 양놈 노래가 우리 판소리를 당하기냐 하냐, 판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오고야 말 테니까”라는 아버지의 다짐을 믿지 않고 멀리 떠난 다음 한참 뒤에 (미처 알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돌아와 송화를 찾아 떠돈다. 동호는 근대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시간을 거슬러서 멈추어선 시간 안에 머물면서 판소리를 가다듬고 있는 송화를 만난다. 그래서 다시 만났을 때, 동호는 문득 송화를 근대의 시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했을 때 동호는 송화가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염전 주막 주인 천가가 물어본다. “헌디 그렇게도 기다리던 사람끼리 왜 서로 모른 척하고 헤어졌단 말인가?” 송화가 대답한다. “한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였겠지요.” 이 말의 방점. 다치고 싶지 않아서. 다쳐서 부서뜨리고 싶지 않아서. 송화는 거기 머물 때에만 판소리를 지켜낼 수 있다. 그걸 지켜내기 위해서 동호는 모르는 척 거길 떠나야 한다. 그때 동호는 다시 근대의 시간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근대는 옛 시간을 모르는 척해야만 그것이 지켜진다. 만일 근대가 그것을 감싸안으면, 그것을 아는 척하면, 그래서 거기에 근대의 시간을 부여하면, 그것은 “다칠” 것이다. <길>은 그것이 정반대로 진행된다. 이번에는 아내를 찾으러 가는 태석이 근대의 시간 바깥에 있다. 그의 곁에 신영이 다가와 근대의 시간을 알리지만, 그래서 남한의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진행과정을 고해하지만, 태석은 그 시간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에게 시간은 1960년 봄날, 그가 집으로 돌아오던 바로 그날, 득수가 아내와 화간했(다고 오해했)던 그날에 멈추어 서 있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가 득수가 죽자 비로소 그의 시신 앞에서 다시 시간이 가기 시작한다. 그에게 시간은 객관적이고 역사적이며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며 상대적이고 폐쇄적이다. 하지만 득수가 죽었다고 해서 태석의 시간이 앞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는다. 그때 그는 이발사에게 그 옛날 로버트 테일러의 헤어스타일을 주문한다. 태석은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지금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중이다. 득수가 죽자 태석은 비로소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었다. 태석 앞에 나타나 근대의 시간 안에서 몸을 망친 채 돌아온 신영은 만일 그 시간이 앞으로 더 나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예이다. 이를테면 신영과 태석 아내 사이에 벌어진 사건의 유사성과 차이를 생각해보라. 친절한 남자. 유혹. 섹스. 거절과 허락. 그때 태석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신영이 근대의 시간 안에서 얻은 것은 간질이다. 태석 아내는 아들 영식을 잘 키워서 이제 곧 장가갈 날을 기다리지만, 신영은 미처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를 위한 매장을 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로서의 신영, 이미 지나간 과거로서의 태석 아내. 집으로 돌아온 태석이 몰래 숨어서 보는 아내와 아들 영식의 동작은 태석과 그 아내의 과거의 행위의 정확한 반복이다. 이 장면은 현재를 과거와 겹쳐놓는 것이다. 그는 이때 문득 깨닫는다. 저 자리에 나아가 자기가 보고 있는 광경에 자기가 포함될 때 저 순간에서부터 이제 앞으로 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혹은 ‘앞으로 가야 할 길만’ 남는다. 그렇게 염원하는 사람을 본 다음 발길을 돌려 떠나가는 행위는 동호와 태석에게서 동일한 결심이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이다. 태석이 아내를 만나면 아내뿐만 아니라 태석도 근대의 시간 안에서 버텨야 한다. 그때 태석의 주관적 세계의 시간은 소멸할 것이며, 그가 만들어낸 유토피아의 환상은 현실 안에서 몰락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신영을 통해서 보았다. 그가 불행이라고 생각한 이 헤어짐이 사실상 근대의 시간 안에서 진행되는 자본주의의 파괴 앞에서 두 사람의 행복한 과거의 시간을 무한정 연장시켜준 선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신영이 떠날 때 그녀에게 자기의 돈을 모두 건네주면서 태석이 “너희 아버지에게 빚진 것이 있어서 갚는 것”이라는 말은 진실은 아니지만 깨달음이었을 수는 있다. 득수는 그 돈을 받고 자기 자신도 모르게 태석 부부에게 근대의 시간을 회피할 수 있는 알리바이로 갚은 셈이다. 그러므로 태석은 다시 한번 그것에 대한 빚 청산을 한다. 여기서 태석의 시간이 주관적이며 상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을 환기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태석은 이 결정적인 시간, 만남이 이루어지는 시간, 기억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정오의 시간, 그 시간의 순간을 다시 한번 반복하기 위해 그냥 물러난다. 정오가 지나고 다시 길게 기억의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아니, 차라리 태석은 근대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직 기억만으로 드리워진 시간. 저 멀리 누군가 올 것 같은 예감으로 지새워야 하는 밤. (<서편제>의) 동호는 떠나면서 송화를 잡아당기던 선을 놓아버린다. 송화의 시간은 여기에 남고 동호는 근대의 시간 안으로 돌아간다. (<길>의) 태석은 그 선을 더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그래서 아내에게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걸 놓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걸 붙들고 있을까? 그게 정말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미루어진 결정. 애매한 상태.

감독 배창호의 자리

나는 이 애매함이 배창호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에 질문은 과연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기나긴 독재와 파괴적인 개발. 그런데 1980년 5월 이후 갑자기 질문이 바뀌었다. 살아남은 것들 안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아야 했다. 그것을 놓고 사회가 각자의 이해관계 안에서 맹렬하게 싸웠다. 배창호는 그 맹렬함 안에서 무능력을 고백했다. 그의 남자주인공 ‘병태들’(세 사람의 병태가 있었음을 환기할 것)의 일관된 남자 되기의 어려움에 대한 고백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장애가 사실은 바로 나라는 자백의 전도된 판본이다. 배창호의 이상할 정도로 수줍은 ‘병태들’의 자학적인 대사들. 갑자기 무서운 아버지가 죽었을 때(1979년 10월26일), 그래서 그 죽음을 아무 노력도 없이 거저 얻었을 때, ‘병태들’은 정치적 전리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다음 그 자리를 다시 훔쳐낸 ‘삼촌’ 앞에서 ‘병태들’은 미처 (정치적) 오이디푸스를 제대로 통과 못한 상태에서 햄릿이 되었다. 이때 ‘병태들’이 한 가지 놓친 것은 자신이 햄릿인 줄 알지만 사실상 햄릿은 ‘춘자들’이었으며, 자신들은 고작해야 오필리아였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1980년대라는 남한사회 자본주의의 부서진 육체의 알레고리는 ‘돈으로 팔고 팔려나가는’ 매춘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는 결국 매춘을 하는 중이다, 라는 슬로건은 1980년대의 잘 알려진 테제이다. ‘춘자들’은 노동 현장을 떠나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그녀들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대사를 행동으로 바꾼 판본이다. 왜냐하면 노동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결정은 자본주의적 자살이기 때문이다. 살면 치욕스럽지만 죽으면 누가 집에 남은 어머니를 책임질 것인가? 그때 ‘병태들’은 그 환상의 반려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배창호는 <길>에서 다시 반복한다. 이때 춘자는 물론 신영이다. 그리고 병태의 자리를 태석이 대신한다. 그렇다면 배창호는 1980년대 담론을 지금 고작해야 여기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가? 내 생각은 그 질문이 틀렸다는 것이다. 질문은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도대체 남한 자본주의에서 무엇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대중은 더이상 그들의 환상, 환상 안에서 자기의 주체를 지우는 것, 지우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 욕망을 투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는가? 이 질문에 대해 상투적으로 배창호 영화가 이제는 시대에 뒤처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대신 정반대로 세상에서 정말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사랑에 빠진 오필리아적 무아지경의 행위가 이제는 더이상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배창호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길을 떠난 태석은 결국 다시 돌아올까? 아내는 여전히 기다릴까? 신영은 서울에 간 다음 얼마나 더 부서져서 돌아올 것인가?(우리는 1970년대가 끝난 다음 시작된 1980년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투쟁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결혼한 영식은 서울에 간 다음 결국 신영과 노동현장에서 서로 맞은편에서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모든 이야기를 2007년에 계속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반복되어야 하는 것일까? 배창호는 아직도 해야 할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나는 배창호가 다음 영화를 위해서 좀더 서둘러주었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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