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노이 알비노이>를 봤다. 시사회날은 갑자기 일이 생겨 극장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2주 전에는 15분 늦었다는 이유로 매표소에서 거부당했다가- 12분 늦게 갔는데 매표소는 비어 있었고 3분 뒤에 나타난 한 남자가 영화 시작 15분 뒤 입장불가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감독이 좋아한다는 <심슨가족>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결국 지난주에 해내고야 말았다. 므흣.
게으른 내가 ‘삼고초려’로 노이군을 모시게 된 건 아이슬란드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시규어 로스,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등등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느낌, 살얼음이 깔린 듯 냉담하면서도 잔뜩 움츠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생기(그 정도의 생기는 적도 근처 사람들에게는 결코 감지될 수 없는 것이다) 같은게 좋았고 그래서 북유럽의 집결판 아이슬란드는 근래 들어 나에게 가장 큰 로망이 됐다.
사실 <노이 알비노이>가 대단히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이 답안지에 몇점을 줄 거라고 생각하나?”(교사), “음, 빵점?”(노이), “이름은 썼으니 0.5점은 줘야겠지”(교사), “(책방 주인이 키에르케고르 책을 몇줄 읽다가 쓰레기통에 버리자) 버리느니 저를 주세요”(노이), “너를 주느니 버리겠다”(주인) 등 북유럽식(=썰렁한) 유머가 관객을 즐겁게 하지만 그렇다고 뒤집어질 정도는 아니다. 또 노이처럼 현실감각 제로에 막연한 도피를 꿈꾸는 청춘 캐릭터들도 한두명이 아니지 않나.
<노이 알비노이>는 캐릭터나 스토리의 영화가 아니라 무드의 영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피요로드, 끝없이 눈으로 뒤덮인 마을, 그 마을만큼이나 창백한 알비노증의 노이, 창백한 얼굴처럼 싱겁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는 노이의 가늘고 긴 팔다리, 그 팔다리를 감싼 촌스럽고 얇은 점퍼, 백년 동안 거기에 서 있던 것처럼 낡고 촌스러움을 현재성으로 지닌 집과 가구와 커튼, 술병을 든 채 앞으로 백년 동안 낡은 소파에 앉아 있을 것처럼 보이는 노이의 아빠. 그리고 쓸쓸하고 약간은 감상적인 음악들. <노이 알비노이>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진행된다.
은행을 털려다 직원에게 개무시당하는 노이의 한심함, 예금을 찾아 양복을 사입고 자동차를 훔쳐 여자친구에게 함께 떠나자고 외치는 노이의 절박함, 그런 자신을 보고 뜨악해하는 여자친구를 보는 노이의 당혹스러움, 훔친 차를 추격하는 경찰을 뒤로하고 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도망가는 노이의 두려움이 하나의 감정, 어떤 막막함으로 뭉쳐져 마음속 한구석에 내려앉는다. 여기에 감독이 직접 참여하는 밴드라는 슬로블로(slowblow)의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엔딩 타이틀곡이 지그시 마음속 그 부분을 한번 더 눌러주신다.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그 느낌은 생각할수록 또렷해진다.
언젠가 꼭 아이슬란드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