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박에서 도벽까지, 마음에 병이 있는 캐릭터들 [2]
2006-12-06
글 : 김나형

누구냐, 너. 밤마다 나를 부르는 토끼 머리, 이놈!

<도니 다코> 도니 다코

<도니 다코>

인적 사항: 도니 다코. 남성. 19살. 까칠하지만 매력적인 성격. 영민하고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심성이 곧다. 교양있지만 쿨한 집안에서 부모, 누나, 여동생과 산다.

증상: 몽유병. 밤마다 환청을 들으며 거리를 쏘다닌다. 어느 날 밤,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비행기 엔진이 그의 방에 떨어졌지만 몽유병 덕에 목숨을 건진다(당시 골프장에서 침흘리며 자고 있었던 도니). 그러나 그날부터 그의 상태는 점점 심해져, 대낮에도 백일몽 속의 목소리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의 꿈속에선 토끼 가면을 쓴 자가 나타나 세상의 종말과 시간여행에 대해 말하고, 도니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학교를 파괴하고 위선자의 집을 불태운다.

발병 원인: 알 수 없다. 그의 증상은 현대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과학 영역 혹은 초자연 현상에 가깝다. 몽마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미리 따라가보게 된 것.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라는 할머니의 말이 그의 미래를 암시한다. 도니는 <시월애>의 것과 비슷한 비틀린 시간의 고리 속에 들어가 있다.

극복: 자신의 방에 비행기 엔진이 떨어졌지만 몽유병 때문에 목숨을 건졌던 그날 밤으로 되돌아가, 도니는 죽음을 택한다. 세상의 종말(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또 다른 세상의 종말(자신의 죽음)과 맞바꾸면서 그의 몽유병도 끝난다.

유사 사례: 이중인격과 몽유병이 뒤섞여 밤낮 다른 생활을 하는 여교수 로렌(<린다 해밀턴의 이중생활>).

미안해요. 훔쳤어요

<란도리> 미즈에

<란도리>

인적 사항: 미즈에. 여성. 20대 중·후반. 아리땁고 청순하지만 부서질 듯 마음이 약하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다 실연의 아픔을 겪은 뒤, 테루라는 독특한 남자를 만난다.

증상: 도벽과 우울증. 그녀의 말마따나 ‘뭐에 홀린 듯’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친다. 립스틱, 책 같은 자잘한 물건을 훔치기 시작해 나중엔 가게에 있는 물건을 가방에 쓸어담다시피 서리한다. 급기야 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TV를 들고 나오다 적발되기도(당연한 거 아냐! -_-!). 그녀의 도벽은 시도 때도 없으나 쓰려고 훔치는 건 아니다. 훔친 물건을 특정 우체통에 집어넣는 게 버릇(TV는 어떻게 넣으려고 했던 거냐! -_-!!). 우울증 때문에 자살 시도도 한번 했다.

발병 원인: 꽃집에서 일할 때 한 남자의 구애를 받고 사랑하게 됐다.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만나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그것만으로도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가는’ 확실히 아름다운 연애를 한 모양. 그 상대에게 배신당한 뒤 도둑질하는 버릇이 생겼다. 자신의 삶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충동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불안하고 우울해질 때면 증상이 재발한다.

극복: 맨홀에 빠져 머리에 상처가 있는(그래서 뇌에도 상처가 있는) 스무살 초순수 청년 테루를 만나 치료된다.

유사 사례: 회사 돈을 훔쳐 달아난 뒤 다른 회사로 옮기는 여자 마니(<마니>).

냅둬, 이렇게 살다 죽게

<굿 윌 헌팅> 윌 헌팅

<굿 윌 헌팅>

인적 사항: 윌 헌팅. 남성. 20대 후반. 직업은 MIT 청소부. 한마디로 천재. 안 읽은 책이 없고 한번 들은 것은 대체로 다 외우며, 내로라하는 수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수학이론을 몇분 만에 증명해낸다. 그러나 그 성격의 까칠함은 사포를 방불케 한다.

증상: 자폐증(혹은 아스퍼거 신드롬). 흔히 생각하는 자폐증보다 증상은 가볍다. 남과 대화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 다만 자아실현이라거나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 식의 사회성을 가지지 못했다(아니 가지려 하지 않는다). 몇 백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한 재능을 가졌고 스스로도 그를 잘 알고 있지만, 발휘하려하지 않는다. 미안함이나 고마움 같은 종류의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남이 자신을 들여다보려하면 그의 가장 아픈 곳을 들춰내 상처를 주고 떨어져나가게 만든다. 연애든 우정이든 관계가 깊어지면 상대를 찌르고 도망친다.

발병 원인: 고아로 자라 여러 차례 입양됐으나 파양을 거듭했다. 특히 두번이나 양부의 학대를 겪었다. 그런 트라우마가 그로 하여금 인간과 사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뭐든 척척인 뛰어난 머리도, 그를 오만하고 냉정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극복: 윌의 천재성을 알게 된 MIT 수학 교수가 자신의 오랜 숙적인 정신과의 숀에게 그의 치료를 부탁하면서부터. “너는 똑똑하지만 결국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 줄도 모르는”, “어린애일 뿐” 이라며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숀에게, 윌은 의지하기 시작한다. 물론 윌의 마음을 돌린 것은 숀의 공격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면서까지 상대를 다독이는 인간적인 면이었겠지만.

유사 사례: <레인맨>의 레이몬드와 <큐브>의 자폐증 환자. 둘 모두 자폐증과 천재기를 동시에 가진 경우.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함에도 마라톤에 성공하는 초원(<말아톤>).

엉엉~ 좋아한다 해놓고! 너희들, 완존 거짓말쟁이!

<메이> 메이

<메이>

인적 사항: 메이. 여성. 20대 초반. 귀여운 얼굴에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깡마른 소녀. 옷은 모두 자신이 만들어 입고, 집에는 인형 천지. 유리장 안에 들어 있는 루시라는 인형과 항상 대화한다. 동물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는데, 찢고 꺼내고 자르고 깁는, 고어적인 일에 특별한 재능과 감수성을 보인다. 왼쪽 눈이 심각하게 나빠 안경을 쓰지 않으면 심한 사팔뜨기가 된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만큼 분노도 감추지 못한다. 감정 기복이 심각하다.

증상: 극심한 비사회성과 망상, 페티시즘. 윌 헌팅이 사회와 관계를 맺지 않으려하는 케이스라면 메이는 아예 사회와 관계맺는 법을 모른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며 인형과 얘기한다. 그런 그녀가 인형이 아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상대가 예의상 한 말이나 완곡한 거절의 말 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이 하는 행동이 평범한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모른다(이를테면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녀는, 섹스를 하며 상대를 뜯어먹는 은유적 호러물을 보고 섹스란 그렇게 하는 것인 줄 안다. 당황한 상대가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할 때도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접근했던 이들이 놀라 떠나자, 외로움과 좌절감에 광적으로 돌변, 자신의 곁에 있을 친구를 만들기로 한다. 특정 부위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 그녀, 좋아했던 남자의 손과 선이 예쁜 레즈비언의 목, 그 애인의 다리 등을 뜯어와 끔찍한 인형을 만든다. 새 인형이 예쁘다고 감탄하던 메이는 곧 인형이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오열. 결국 자기 눈을 빼서 준다는.

발병 원인: 사시 때문에 어릴 때부터 왕따로 지냈다. 게다가 엄마가 이상했다. 딸의 사회성을 길러주려하지 않고 “친구가 없으면 만들라”며 인형과 친구로 지내게 한 것. 그렇게 몇 십년간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았으니 정신세계가 특이할 수밖에.

극복: 극복됐는지 어떤지는 그녀만이 알 일이다.

유사 사례: 왕따가 병이 된 <여고괴담> 시리즈의 귀신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성기를 잘라낸 사다(<감각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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