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 21:30 논현동 EON digital films 스튜디오
70~80% 정도 진행된 CG 작업을 확인하러 스탭들이 모여들었다. 정정훈 촬영감독, 정서경 시나리오작가, 강현 제작실장, 이춘영 프로듀서…. 한결같이 여유로운데다 웃음이 떠다닌다. 박찬욱 감독과 계속 호흡을 맞춰온 탄력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번 작업이 만족스럽다는 방증일까. CG는 상상력이 순간 집중되는 장면에 필요하다. 그만큼 이 날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어떤 영화인지 퍼즐 맞추듯 더듬어가는 나에게 긴요한 힌트를 주지 않을까 싶었다. 박찬욱 감독이 도착하기 전, 정정훈 촬영감독이 메이킹 카메라를 앞에 두고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전작과의 차이점은, 일단 바이퍼라는 HD카메라를 써서 매체가 달라졌다는 거죠.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는 한 인물에 중심을 맞춰 동적으로 찍었는데 이번에는 유쾌한 멜로라서 분위기도 그렇고 많이 달랐어요. 쓰지 않을 장면은 현장에서 바로 삭제하며 촬영장면을 하드디스크에 자유롭게 저장해가니까 감독과 배우 모두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리허설도 녹화하면서 해나가니까 여유가 생기는 거죠. 이 작품은 복수 시리즈 같은 거친 영화를 해온 박찬욱 감독님이 몹시 하고 싶어했던 멜로입니다. 얼마나 유쾌한 멜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원하는 바는 얻은 듯싶어요.”
박찬욱 감독이 도착하고 CG장면들이 영사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이보그 임수정의 손끝이 총구로 변해 정신병원을 무지막지하게 박살내는 순간들. 사방에서 파편이 튀고 탄피가 난무하며 피가 쏟아진다. 터지고 부서지는 특수효과를 넣어 촬영한 장면을 따라 감독의 입이 열린다.
“저 의사는 총 맞으면 총구 방향으로 상처가 나야 하는데, 그게 없네. 만들 수 있지? 수염 멋지게 난 저 간호사는 총 맞는 곳에 탄착이 없어. 이 의사도 그렇고. 두 사람 다 해줘야 할 것 같아.”
사이보그 임수정이 병원 내부를 끝장내고 바깥의 정원으로 나가면서 화면은 거대한 <스타크래프트> 게임 화면처럼 바뀐다. 정원 안에 흩어져 있던 의료진들을 좇아 마구 총이 발사되고 흰 점처럼 보이는 그들이 픽픽 쓰러진다. 높은 옥상에 카메라를 놓고 촬영한 듯싶은데 ‘기발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눈이 즐거워진다.
“(여기저기 가리키며) 흰옷이니까 피가 좀더 잘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먼 사이즈로 (카메라를) 잡았을 때는 흰옷이니까 충분히 다 보이겠구나 싶어서 그랬거든.” “그런데 총에 맞는 순간의 피는 잘 안 보일 텐데요.”(EON의 이전형 실장) “내가 상상했던 건 곳곳에 빨간 점이 박혀 있는 느낌이야. 다시 보자. 음~, 탄착 효과가 더 안 될까? 나무도 부러지고, 저 돌은 좀 튀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
두 번째, 무서운 사이보그로 변신하는 임수정이다. 턱이 열리고 손가락 끝이 툭 열리며 총구로 바뀐다.
“귀여운데.”(박찬욱)
“에이, 우리니까 귀엽지, 관객은 살벌해하지 않을까요?”(정정훈 촬영감독)
상상력이 과감히 동원된 장면들이 좀더 흘러나왔다. 가면 쓰고 걸어오던 정지훈이 스르륵 난쟁이처럼 작아지거나, 임수정을 가둔 독방의 침대가 벌레만큼 작아져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알프스의 한복판에 있는 듯 하늘을 회화적으로 만들거나…. 그리고 노출 자제를 요청해오던 엔딩 장면까지. CG장면들을 보고 나니 ‘유쾌한 멜로’라는 정정훈 촬영감독의 표현이 머리에 다시 새겨졌다.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명랑하고, 가장 희망적이며, 천진난만한 장난기로 가득찬 영화로 기록될 것 같다는 강력한 ‘포스’가 느껴졌다. 이날, 여기까지 완성된 CG를 넣은 본편으로 등급 심의를 넣었다고 했다. 과연 (목표로 한다는 12세는 관두고라도) 숙원의 15세 관람가가 가능할까. 총격신만 빼놓으면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정신병원이 혹독하게 그려지지도 않았고, 총격신도 사실은 OO장면인데다 그렇게 잔인하지 않은데….
11.05 14:00 신사동 HFR(할리우드 필름 레코더) 스튜디오
HFR은 디지털을 통한 색보정으로 필름 전체의 색감을 새롭게 연출하는 DI(digital intermediate)의 선두 주자다. 청, 명, 한 가을 하늘이 유난히 예쁜 일요일 오후, CG 때처럼 주요 스탭이 모여들었고, 배달시킨 중국요리를 놓고 왁자지껄 늦은 점심부터 때운다. 초조하게 스튜디오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DI 현장을 처음 들여다보는 설렘도 있지만, 영화를 처음부터 주욱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마침내 스튜디오가 캄캄해지고 한쪽 벽면 가득히 영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허걱, 이건 배반이야 배반! 사운드를 완전히 죽여놓은 게 아닌가. 순전히 그림만 흘러나온다.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으니 입만 벙긋대는 스크린을 쳐다보는 건 영어자막 없는 프랑스영화를 보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청각 장애우의 고통이 이런 걸까.
예기치 못했던 소득이 그나마 즐거움이다. 특이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는 환자 오달수를 이날 처음 봤는데, 역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의 연기나 동선에는 마치 전성기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코믹함이 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모순덩어리 목사로 나왔던 김병옥이 판사로 등장해 큰 눈을 부라리며 뭐라뭐라 하는데 도통 알 수가 없다. 박찬욱 감독이 15세 관람가를 받는 데 두 가지 장애물이 총격신과 판사장면이 아닐까 싶다고 했는데, 김병옥의 대사에 엄청난 ‘거시기’가 실려 있지 않고서야 미성년자가 봐선 안 되는 장면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 또 6권으로 나뉜 전체 분량 중에 마지막 권은 필름으로 찍은 분량도 많고, CG도 많아서 다음번에 확인하자며 5권에서 상영을 그치니 임수정과 정지훈의 이 뽀사시한 로맨스가 막판에 어떻게 펼쳐지는지 결국 보지 못했다.
더불어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속사포 같은 대화는 전문용어가 뒤섞여 지금 저 화면의 어디를 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이다. “이거하고 첫컷하고 측면이 안 맞는 거 아니야?” “스킨 중심으로 쳐주세요.” “눌러놓은 게 이 정도라고?” “나는 더 눌렀으면 하는데. 낮인데 밤처럼 보이게.” “DLP로 틀 때는 샤프니스 안 줬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이렇게 그라데이션을 주는 건 어때?” “여기서 쓴 블랙프로미스트는….” “이 신에서 애니메이션을 치자고….”
DI의 묘미는 한컷 안의 특정 부위 색감이나 콘트라스트를 조절하거나, 시작점과 끝점을 주면 한 프레임씩 관객이 의식하지 못하게 색감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컬러가 뒤로 갈수록 흑백으로 바뀌는 버전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날, 즉석에서 한컷 안의 콘트라스트나 색감을 조절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이 흥미진진이다. 일단 스톱모션으로 화면을 정지시켜놓은 뒤 순식간에 컬러를 완전히 빼고 이런저런 미세한 디지털링 작업을 하는데, 정면의 화면이 아름다운 흑백의 수묵화처럼 됐다가 목판화가 됐다가, 가을이 됐다가 봄이 됐다가 하는 순간의 변화가 다채롭다.
박찬욱 감독의 말중에 알아듣게 귀에 쏙 들어온 건 이 두 가지였다. “이 방(정신병원의 독방) 색깔 잘 안 나오면 류성희(미술감독)가 가만 안 있을 거야.” “저 파란 셔츠 봐. 저것도 그냥 저렇게 계속 나오면 조상경(의상팀장)도 가만 안 있을 거야.”
정정훈 촬영감독의 잠깐 특강
*샤프니스(sharpness, 선예도)
HD인 바이퍼카메라는 그럴 염려가 없는데 보통 필름을 스캔받으면서 또 레코딩을 하면서 샤프니스에 손상을 주니까 강제적으로 샤프니스를 준다. DLP(디지털 광학 기술) 상영 방식에 샤프니스를 주면 안 좋겠다는 건 그러면 디지털의 느낌이 너무 강해져서다.*블랙프로미스트(black promist)
필터의 한 종류다. 이번에는 어두운 쪽을 스모키하게 올렸는데 콘스라스트를 아주 진하게 블랙으로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쪽을 약간 소프트하게 올리기 위해서 블랙프로미스트를 썼다.*애니메이션을 치다
밝기는 한 장면에서 조리개를 바꾸지 않은 한 변화가 없다. 그런데 시작점과 끝점을 주고 서서히 밝기 변화나 색깔 변화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한 프레임씩 관객이 의식하지 않게 조금씩 변동을 주는 것이다.*그라데이션(gradation)을 준다
말 그대로 계조다. 한컷 안에서 특정 부위의 노출을 죽이고 싶을 때 그라데이션을 준다고 한다.
11.05 21:00 대학로 모호필름 회의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조영욱 음악감독과 함께 홍유진, 홍대성 작곡가에 앞서 도착했다. 조영욱 감독이 애플 노트북을 꺼내 TV모니터와 연결하며 미디(Music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로 만들어온 음악을 편집화면과 맞춰볼 준비에 들어갔다. 음악컨셉에 대해 묻자 두 사람이 한참 답을 주고받는다.
“언제나 그렇듯 계속 바뀌죠. 처음에는 일렉트로닉을 중심으로 익살맞은 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촬영 끝나고 편집하면서 티저 예고편을 만들 때 렉타임피아노를 썼는데 잘 맞는 거예요. (조 감독을 보며) 지금 음악이 언제 바뀌었지?”(박찬욱)
“화면 보기 전에는 일렉트로닉과 오케스트레이션을 섞어 <오스틴 파워>처럼 경쾌하고 재밌게 해보려고 했다가 예고편 하는 분이 렉타임을 써보면서 방향을 확 틀었지.”(조영욱)
“그래. 그리고 비브라폰이 대표 악기가 됐어요. 조영욱씨가 음악가들과 시험적으로 만들어본 곡 중에 스윙감이 강한 게 화면하고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정리하자면 넓게 봐서 재즈예요. 하드밥이나 모던 재즈가 아니고 스윙이 강한 경쾌하고 밝은 재즈.”(박찬욱)
조영욱 감독이 먼저 맞춰보자며 오프닝 시퀀스에 맞춰 준비한 음악을 틀었다.
“(지난번과 비교해) 많이 약해졌지? 대니 앨프먼적인 느낌을 지우려고 애쓴 것 같아.”(조영욱)
“너무 스릴러적일 필요는 없는데. 그런데 팀파니하고 퍼커션을 너무 쓴 거 같은데. 어? 이건 못 들어본 건데. 웬 아라비아 멜로디?”(박찬욱)
“그러게. 이 대목은 대성이 오면 다시 보자.”(조영욱)
“너무 딴 거를 만들어왔다. 그치?”(박찬욱)
작곡가들이 도착하자 오프닝 시퀀스에 대한 설왕설래가 길게 이어졌다.
“그러니까 긴장감 높이는 건 필요없고, 주제가 여러 개면 혼란스러울 것 같아. 원래 정했던 것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박찬욱)
“처음 것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게 좋겠어.”(조영욱)
“템포가 잘 살아나지 않는 것 같아서 리듬을 바꿔보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대니 앨프먼 같지 않아요? 그걸 좀 빼려고 했어요.”(작곡가)
“그러잖아도 그 얘기를 하던데 표절이 아니니까 괜찮아. 괜히 이도 저도 아니게 하지는 말자고.”(박찬욱)
그동안 보아온 박찬욱의 ‘연출 카리스마’는 권위적이라거나 위압적인 것과는 어울리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나 단호함이 깃든 것이었다. 스탭들의 의견을 무시하지도 떠받들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기둥 삼아 곁가지를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모양새랄까. 이건 서사 구조뿐 아니라 CG, 음악, 색감 등 영화의 각 요소에 대한 전문성이 전제돼야 가능할 것이다. 이날 밤, 박찬욱의 연출 카리스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꿈틀거렸다. 구체적인 악기 편성, 테마의 변주는 물론이고 화면 속 인물의 동선 하나하나를 염두에 둔 정확한 타이밍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새로운 걸 주문했다. 과제물 받듯 적어나가는 작곡가의 메모지가 빼곡히 넘쳐갔다.
“지금 목관이 좀 있나? 피콜로 같은 거.” “이 시퀀스에선 템포는 달라도 되는데 가능한 한 한곡의 느낌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같은 주제를 다른 악기로 쓰더라도 말이지.” “저 비브라폰 솔로는 플루트로 한번 바꿔볼까.” “스트링이 이렇게 나오면 안 돼. 너무 신파 같잖아. 게다가 여기에 ADR하면서 곡소리까지 넣었거든. 아이고~ 아이고~ 하고.”
박찬욱과 조영욱이 의견을 주고받는 호흡은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예컨대, 정지훈이 요들송을 부르는 장면부터 임수정이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처럼 캡슐 안에 누워 있는 장면.
“반주가 좀더 늦게 들어와도 되지 않을까.”(박찬욱)
“어디 다시 들어보자. ‘귀여운 목소리로’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조영욱)
“여기에 바순 어떨까? 뿜빠~뿜빠~.”
“그거 좋겠다. 금관악기 같은 거. (작곡가 돌아보며) 금관 잘 부는 친구들 있을까?”
“이건 데이비드 린치 같지 않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기도 하고.”
새벽 2시, 박찬욱, 조영욱 짝패의 집중도는 초반과 비교해도 떨어질 줄 모른다. 새벽 3시를 넘어서자 비로소 회의가 끝났다. “밤 꼬박 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라며 조영욱 감독이 씩 웃는다. 창문을 열자 겨울을 부르는 비가 조촐히 내리고 있었다.
EPILOGUE
11월9일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수백명의 기자가 모여든 가운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박찬욱 감독의 정장이 그의 표정, 그의 작품을 닮았다. 느슨하게 풀어 맨 넥타이와 그 안에 살짝 풀어헤친 흰 셔츠. 그 위에 포개진 말끔하고 세련된 짙은 슈트. “믿거나 말거나 제가 만든 영화인 것이 사실입니다. 젊은 배우 만나서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아역배우를 캐스팅했어요. 신선하고 과일향기 나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11월14일 오전 11시 홍익대 M&F(Music & Film Creation) 스튜디오에 선하게 생긴 외국 남자가 악기를 조립하느라 애쓴다. “연주자가 외국인이네?” “전에 얘기했잖아. 크리스 바가라고 동덕여대에서 강의하는 분이야. 원래 드러머인데 비브라폰도 같이 해.” 연주 녹음 첫날이다. 이날 박찬욱 감독은 뒷선에 물러나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한다. 오늘의 연출 주역은 작곡가 홍대성이다. “좀더 부드럽게, 음이 끊어지지 않게 다시 가볼게요.” “네, 좋아요. 이제 오른손 해볼게요. 45마디요.” 1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박찬욱 감독이 딱 한번 말문을 열었다. “좀더 활기있어도 되지 않을까?”
이제 그가 직접 손댈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공정의 마지막 여정인 믹싱이 남아 있지만 내일부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한다. 첫 시사가 예정보다 5일 늦어져 개봉 6일을 앞두고서야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무리하는 인사말 같은 질문이 마침 생겼다. “15세도 아니고 12세 관람가가 나왔네요.” “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요. 걱정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환상장면이라는 걸 감안해준 듯싶네요. 근데 명계남씨가 제작자에서 은퇴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러면 그게….” 갑자기 물어보고 답하는 위치가 바뀌었다.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역전되기 일쑤다. 영화계의 크고 작은 정보가 그에게 밀려드는 탓인데 늘 기자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이날도 OOO 감독의 <OOOO> 편집본을 OOO 감독이 봤는데 너무 재밌다고 난리다, 배우 000와 000의 연기가 <00>보다 좋다고 한다, <00>도 예상보다 잘 나왔다는데 등의 소식이 그의 입에서 쏟아진다. 끝내 술자리 취재를 하지 못했지만 크게 아쉽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두어번 술자리에 동석해봤지만 평상시의 대화에 비해 특별한 비경이 드러나진 않았기 때문이다. <친절한 금자씨> 촬영 초기에 자정 무렵부터 아침 7시까지 술을 마신 적이 있지만, 자고 일어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대화가 기억나지 않았다. 술자리 같은 사석이나, 후반작업 같은 작업장에서나, 제작발표회 같은 공석에서 한결같은 모습, 그게 이상하게도 자꾸 ‘귀엽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천진난만함이 물씬 배어 있을, 그의 유일무이한 12세 관람가의 완성품이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