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시트콤에서 스크린으로, <올미다_극장판>은 어떻게 변화했나
2006-12-2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최미자씨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최부록씨와 할머니 김영옥 여사의 가슴을 싸하게 만들며 지현우 PD와 결혼해 떠나갔던 그녀가 어찌하여 다시 처음부터 연애를 시작해야만 하는 걸까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에 출연하느라고 그랬답니다. 지 PD는 라디오에서 TV쪽으로 자리를 옮긴 듯하고, 윤아와 지영은 자기 생활에 바쁜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요. 하지만 우리 미자씨는 여전히 어리버리하고 변변치 못한 성우입니다. 이런, 둘째 할머니는 연애를 시작하려나봐요! 첫째 할머니 기운 넘치시는 거하며, 셋째 할머니 건망증하며, 외삼촌 억울하게 생기신 것도 예전하고 똑같은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이 어떨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재밌더라는 소문만 듣고 바빠서 보지 못하신 분들, 미자가 떠나는 길에 즈려밟을 꽃잎을 뿌리신 분들, 지 PD를 못내 그리워하신 누님들, 모두 모이세요.

몇년 전에 사주를 보러갔더니 “팔자에 남자도 없고 돈도 없다”는 점괘가 나왔다. 남자도 없고 돈도 없다면 도대체 뭐가 있기는 하다는 걸까. 그 무렵엔 그런 사주를 타고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궁금했지만 1만5천원짜리 점괘는 용하기도 하여 남자도 돈도 없는 서른한살이 되었다. 그리고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을 보며 애인도 없는 서른두살 백수 노처녀가 남루한 삶에서 탈출하기란 2만 피트 상공에서 추락한 비행기에서 기어나와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기보다 어렵다는 독백에 주먹까지 쥐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남자가 술마시자고 하면 이 남자가 나에게 마음이 있구나라고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해고통보인가 걱정을 먼저 하는 서른두살, 제목대로라면 올드미스인 미자를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우울한 영화가 아니다. 추리닝 무릎처럼 늘어진 삶에서도 꽃무늬를 발견하고, 불가능이라 믿었던 해피엔드로 끝맺으면서도 배신감을 주지 않는다. 시트콤과 극장판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김석윤 감독은 “일상은 행복이나 불행의 정점에서 멈추어 서지 않는다. 그저 비정하게 흘러간다”고 말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그의 말처럼 남자도 없고 돈도 없는 삶은 그저 비정하게 흘러가지만 그렇다고 텅 비어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것도 웃기게.

지렁이도 꿈틀하면 속은 시원하다

일일 시트콤으로는 드물게 미자 또래 미혼 여성들의 지지를 얻었던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캐릭터가 방대한 편이었다. 미자와 친구 2명, 그들과 엉키는 남자 3명, 미자의 할머니와 이모할머니 2명, 미자의 아버지와 외삼촌. 이런 구성과 일상적인 소재 때문에 싸이더스FNH로부터 영화화 제의를 받고 처음엔 간절하게 말렸다는 김석윤 감독은 시트콤이 가뿐하게 보듬었던 30대에서 70대에 걸친 11명의 캐릭터 중에서 누군가를 골라내야만 했고, 그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만을 주어야 했다. 그 때문에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30대 올드미스와 60대 과부가 들뜬 마음을 안고 나풀거리는 로맨스와 코미디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다. 단역이지만 모처럼 고정배역을 얻은 성우 미자는 연하의 PD 지현우가 은근히 마음을 주는 듯하여 때이른 결혼행진곡의 환청을 듣고, 기골이 장대한 표구사 영감님과 사귀고 싶은 둘째 할머니 승현은 자매들의 코치를 받으며 난생처음 연애를 걸고, 잔돈을 모아 상장형 펀드에 투자했다가 본전마저 날린 가엾은 외삼촌 우현은 스스로 본전을 되찾기 위해 은행강도를 해볼까 결심한다. 1회 분량 시트콤처럼 세 가지 스토리를 모아놓은 셈이다. 그러나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인물과 소재를 세심하게 매만져서 감독의 소원대로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도록 만들었다. 돈이든 남자든 미래든, 없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미자가 시트콤보다도 불쌍해진 까닭은 그 때문이다.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지하철 의자에 다리를 포개고 앉은 남자가 자꾸 발끝으로 건드리는 데 화가 난 미자가 도끼로 그를 난도질하는 환상을 보여주지만, 실제로 미자는 그 남자의 다리를 풀어놓고 다른 칸으로 도망을 간다. 그녀는 능력있고 잘생긴 바람둥이 박 PD에게 놀림에 가까운 농락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먼저 들이댔다고 오해를 받곤 한다. 그러던 미자가 확성기를 들고 현우를 찾아가 “마음에 없으면 단둘이서 술마셔 주지도 말고, 미안했다, 담에 보자 이런 말도 하지 말고…”라며 소리를 지를 때 그것은 단지 연애로 착각하고 삽질했다는 억울한 한탄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남한테 심한 소리해본 적 없는 미자를 동네북처럼 두들겨 패는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성토에 가깝다. 지렁이가 꿈틀한다고 하여 누구도 눈여겨봐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잠깐 동안 지렁이는 속이 시원할 것이다.

둘째 할머니 승현은 또 다른 지렁이다. “이팔청춘 꽃다운 시절에도 미련 곰팅이 같아” 연애도 못했던 승현은 황천길을 눈앞에 두고서야 “색깔있는 빤쓰”를 입고 연애에 돌입하면서 진작 이렇게 살걸 그랬다고 서글프게 웃는다. 어찌나 기가 센지 저승사자도 물리치는 언니 영옥과 아직도 예쁜데다가 애교가 흘러넘치는 동생 혜옥 사이에 끼어 고장난 무릎과 살림살이를 끌어안고 궁상맞게 살았던 그녀가, 언니 발길에 얻어맞으면서도 할 말은 하고 만 것이다. 시트콤 시절부터 할머니들에게 유독 애정을 주었던 김석윤 감독은 “노인들이라고 하여 노인정에 모여 덩실덩실 춤이나 추고 싶겠는가. 그들도 사랑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100살이 넘은 노인이 죽더라도, 세상에 호상이란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굳이 사랑뿐일까. 여행이어도 좋고 성형수술이어도 좋고 새빨간 립스틱이어도 좋을 것이다. 육십년 넘게 눌러온 목소리와 욕망이 가슴속에서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맺혀버리기 전에 쏟아놓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랑일 것이고, 미자와 승현의 사연은 고스란히 겹치면서, TV시트콤을 영화로 만들 때 부딪치기 쉬운 산만함의 함정을 피해간다. 다만 우현이 강도짓을 하기 위해 은행을 드나들다가 직원들과 정이 든다는 설정은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을 삐걱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 스토리만이 따로 놀기 때문인데, 젊은 시절부터 매형 최부록에게 얹혀살면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가계부를 정리하는 우현에게 정든 시청자라면 크게 거슬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미자씨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이 좀더 살갑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처럼 미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1년 동안 230편이 넘는 에피소드로 찾아온 이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빨리 찍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숱하게 들었던 김석윤 감독은 “부족한 점도 있었겠지만, 제작진과 배우가 모두 1년 동안 몸에 익혀온 캐릭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조금 다른 경우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배우는 예지원이다. 김석윤 감독이 지금도 만나면 “지원씨”보다 “미자야”가 먼저 나온다는 예지원은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도 남들이 보지 않는다 싶으면 머리에 꽃을 꽂아주어도 손색이 없는 행각을 펼치는 미자를 정말 열심히 연기한다. 가만히만 있으면 우아하고 새침해 보이는 인상과 진짜 성우 같은 목소리가 거들기는 해도 예지원은 이미 시트콤을 보았던 이에게도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녀 혹은 미자와 함께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향수어린 선물이고 한해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발견한 새로운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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