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올드미스 다이어리_ 극장판>의 김석윤 감독 인터뷰
2006-12-2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이혜정
“영화를 잘 몰라서 오히려 과감할 수 있었다”

-영화 초반부터 과감하게 판타지를 사용한 점이 독특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여서 톤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판타지 부분들은 누구나 하는 생각이어서 발상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예를 들면 미자가 현우와 결혼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포장마차 장면은 유치해야 했다. 그런데 미자가 유치한 상상을 하는 것처럼 보여야지, 연출을 유치하게 한 것처럼 보이면 안 되는 거다. 결국 주눅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극장판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했다고는 해도 영화 연출이 공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2% 부족한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모르기 때문에 과감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시트콤을 영화로 만들면서 캐릭터를 많이 축소했다. 미자의 친구인 윤아와 지영보다 할머니들의 비중이 높아졌는데 반대하는 의견은 없었는지.
=<마파도>가 성공해서 그런지 몰라도(웃음) 제작사인 청년필름이 그쪽으로는 오픈돼 있었다. 미자의 친구들 이야기를 덜어낸 것이 가장 아쉬웠고, 미자와 현우의 로맨스도 지금보다 코미디를 많이 살릴 수 있었겠지만, <올드미스 다이어리>답게 가려면 미자의 가족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노인문제를 다루겠다는 사명감까지는 아니어도 할머니들 이야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 시트콤을 찍을 때 우리 어머니가 칠순이셨다. 나에게 어머니는 40, 50대 시절과 그리 변하지 않았는데 남들은 어머니를 할머니 취급할 거고, 나도 밖에서 칠순 노인을 보면 마찬가지일 거다. 할머니들은 참 억울하겠구나 싶었다. 익살스럽고 유쾌한 면이 많은데 남들이 보아주질 않고,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은 늙어가고.

-로맨틱코미디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미자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결말보다는 예의없는 세상에 치이고 억울해하는 미자의 모습이 더 인상적인 영화였다.
=사실 미자가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 장면에선 나도 울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이야기라고 할까, 다들 한번씩 목소리를 내면서 꿈틀하지 않나. 그건 미자의 세상에 대한 투쟁이다. 물론 미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영계를 낚고(웃음) 행복해하지만 영화가 끝난 다음날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일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이 남아 있을 거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1순위라고 해서 남자친구가 인생의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시트콤 시절 언제나 언니에게 기죽어 살던 둘째 할머니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었던 건가.
=할머니들 부분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노인으로서 정체성 같은 주제는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그들도 예뻐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한영숙 선생이 연기할 때부터 둘째 할머니는 우리가 보는 할머니와 가장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이 치고 나가고 영옥과 혜옥 자매가 주변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스토리로 구성했다. 한영숙 선생은 워낙 멋쟁이여서 시트콤 속 모습에 많이 서운해했는데 그런 일이 생겨서…(한영숙씨는 2006년 6월 별세했다). 만약 서승현 선생이 영화를 고사한다면 시나리오를 바꿀 생각까지도 있었다. 다행히 웃으면서 승낙해주셔서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미자와 할머니들 이야기가 일상적인 데 비해 삼촌이 은행강도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부분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 스토리 라인은 내가 봐도 어색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튀기는 해도 별로 무리는 없다는 의견이 많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은행강도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장르적인 코미디의 느낌으로 갔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코미디처럼 보여도 주제가 가볍지만은 않고, 그렇다고 리얼하게만 가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걸 잡아주는 게 감독의 몫이었을 거다. 나는 예능국 PD를 하면서 코미디로는 갈 데까지 가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에서 수위를 조정해 멈출 것인지가 가장 어려웠다. 그런데 감독이라는 직업이 의논할 사람이 없고 모든 결정을 내리고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험도 없는데. 그게 참 답답했다.

-촬영이 끝나고 곧바로 작업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트콤을 연출하다가 짧아도 몇달씩 걸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답답할 때도 많았을 것 같다.
=방송은 촬영장에서 보는 모니터가 그대로 결과물이 된다. 그런데 영화는 그렇지가 못해서 템포와 리듬이 너무 다르니까 정말 답답했다. 방송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배수진을 치고 살아서, 참을성있게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생각하는 그런 작업이, 묘하다고 할까, 그랬다. 성격 탓도 있었다. 나는 참을성이 없는 편이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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