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이란 걸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시나리오가 재미있다, 없다 그런 건 생각할 여유가 없고 임상수 감독님이 찍는 영화라는 것 때문에 사실 한 거죠. 임상수 감독님이 멜로를 찍는다, 벗는 거 없다. 임상수 감독님이랑 너무 일해보고 싶은데 벗는 게 없다. (웃음) 그런 게 제일 컸죠. 그리고 원작이 정말 유명한 소설이란 걸 알게 됐고. 다른 건 더 재볼 게 없었어요.” 염정아가 <오래된 정원>을 택했던 까닭은 이렇게 명쾌하다. 그 시원시원한 믿음에 답하듯, <오래된 정원>에서의 염정아는 씩씩하고 밝은 여인 한윤희로서 정말 곱다. 오현우(지진희)의 기억 속에 남은 ‘오래된 정원’의 볕 좋은 안뜰, 가장 아름다운 풍경. “제가 원래 기다리는 거에 굉장히 예민해요. 그래서 메이크업이랑 헤어할 때도 동시에 같이 하게 하거든요. 안 그러면 두배로 기다려야 하니까. 근데 이번 영화 현장에서 그 기다림을 참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조명에 너무 신경을 써주시니까. (웃음) 역시나, (고개 끄덕이며 짐짓 뿌듯) 너무 예쁘게 잘 찍어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종종 묽고 평범한 인상의 배우가 다양한 역할에 어울리기 유리하다고 믿지만, 염정아는 예외다. 굵은 펜선으로 그린 것 같은 또렷한 생김과 인상은 외려 그녀를 갖가지로 장르화한다. <장화, 홍련>의 신경증적인 여자, <범죄의 재구성>의 요염한 팜므파탈, <여선생 vs 여제자>의 심통 많은 푼수 노처녀, <소년, 천국에 가다>의 곱단하고 새침한 미혼모. 매번 염정아의 얼굴은 해당 장르의 타입 캐릭터만을 위한 외모인 양 천연덕스럽게 연기에 일조한다. 그 얼굴이 <오래된 정원>에서는 현실적이면서도 시대로부터 정화된 첫사랑의 기억으로 화했다. 한윤희로 인해 염정아의 얼굴은 캐릭터 하나를 더 얻었다. 성숙함. “멜로가 하고 싶었어요. 사랑을 느끼고 아파하고, 그런 걸 너무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쯤 한번 더 해주는 게 나이가 좀더 들어서 할 때랑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기도 했고.”
염정아는 무겁게 침잠할 듯한 인상과 달리 틈만 나면 실없는 유머와 경쾌한 재치를 흘린다. 메이크업과 헤어에 들이는 긴 시간을 못 참아하는 성격에, 단순명쾌한 생각과 말투를 가졌다. 그녀의 캐릭터들이 가진 명료함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그의 확실한 생김새와 잘 맞아떨어진다. 염정아는 그렇게 뚜렷한 원색들로 여배우로서의 한면 한면을 깎아나가고 있다.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가 더해준 현명함과 열정까지, 염정아는 이제 여자로서 가져야 할 패를 거의 모두 손에 쥐었다.
지진희가 말하는 염정아
“염정아씨가 인상이 좀 날카롭고 예민해 보이지 않나.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감히 친해질 수 없었을 거다. (웃음) <H> 찍으면서 한 6, 7개월 붙어 있었더니 서로에 대해서 웬만한 건 다 아는 사이다. <오래된 정원> 할 때도 너무 즐겁고 편하게 웃으면서 촬영했는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정아씨가 정말 계획적으로 철저하게 연기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신 놀라웠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특히 현우를 떠나보내면서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할 때의 대사 톤이 착 달라붙는 듯 완벽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염정아씨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건강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다는 거. 염정아씨를 만났을 때 나한테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주저하지 않고 나랑 결혼하자고 했을 거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