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
판타지? 메르헨(Mrchen, 독일어로 동화라는 뜻)? 동화와 같은 전쟁영화로 이름 붙이면 될까? 2년 전쯤 개봉한 한국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전쟁의 비극성과 심각성을 정면에서 그려내어 힘있는 감동을 끌어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슬픈 전쟁의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풍자 섞인 웃음으로 비극성과 심각성을 호소하는데, 이 부분 또한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이 마을의 한 일원으로 약간 머리가 모자란,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순진무구한 소녀의 존재가 키워드가 되고 있는데, 병사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서 심각한 현실을 주장해도 소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왜 너희들은 사이좋게 지내지 않나” 하면서 예의 그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들에게 묻는다. 병사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소녀나 마을 사람들에게 점차 감화되어가고 결국엔 일치단결하여 마을을 위한 결사적인 작전에 임하게 된다.
유교정신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한반도이기 때문에 배려와 성실함 그리고 목가적인 가족애의 따뜻함이 전편에 넘쳐 흘러서 마치 꿈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깊은 설득력과 강렬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 관객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환상적이면서도 진지하고, 냉엄한 현실 속에 따뜻함을 담아 전쟁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훌륭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필자는 ‘현실의 전쟁 또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자문하면서 원작자의 발상의 풍부함에 적잖이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불발탄으로 생각하고 던진 수류탄이 식량 창고에서 폭발하고 그 안에 저장되어 있던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 눈처럼 흩날리는 환상적인 신이나, 전쟁의 프로라고 할 수 있는 병사들이 덫에 걸린 거대한 멧돼지를 엎어지고 뒹굴며 쫓아 돌다가 결국은 퇴치한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등 메르헨만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130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감독은 CM계 출신으로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 하는데 무서울 만한 재능을 느끼게 된다.
<너는 내 운명>
천사와 같이 순진무구한 남자와 매춘행위까지 한 과거가 있는 여자와의 사랑, 실화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만들어진 듯한 연애물로, 사실 보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작품이었지만, 이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작!! 이 정도까지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기도 전에 한국영화의 드라마 만들기의 정교함과 깊이있는 인간묘사에 압도되어 완전히 항복하고 말았다. 예를 들면, 일본 연애영화의 명작 <부운>(浮雲) 등을 떠오르게 하는 비통함과 투명성이 관통되어 있어 그 감탄할 만한 설득력과 리얼리티에 이유를 막론하고 감동받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이것이야말로 비련영화의 정통파, 본모습이다.
농촌에서 자란 서툴고 어눌한 총각이 첫사랑을 했다. 상대 여자는 결혼 경험도 있고 전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결사적인 용기를 가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그. 여자는 남자한테 지쳐 있어 그의 순수함을 완전히 믿지 못함과 동시에 순수한 그에게 자신과 같은 더럽혀진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부하면서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해(障害), 그녀가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 판명되고 점점 더 웅덩이는 깊어져 간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놀랍다. 이미 연애의 단계를 지나 망집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의 깊이. 주위의 걱정이나 조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 모습에는 광기조차 느껴져 나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지고 만다.
이러한 설득력과 감동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두 주연배우의 거침없고 한결같은 명연기의 결과이다. <달콤한 인생>의 악역, <여자, 정혜>에서 약간 어두운 느낌의 작가지망생에서 완전히 벗어나 단지 좋은 사람(이것이 가장 어렵다)을 철저하게 연기한 황정민의 힘있게 끌어안고 싶어지는 열연. 한편으로 여배우 전도현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비틀거리는 부인, <인어공주>의 천진난만한 섬 처녀, 그리고 <너는 내 운명>의 가련한 인어(!) 같은 창부 역까지, 작품마다 변신하는 그녀의 훌륭한 연기는 이 작품이 단지 울리면 된다는 의미없는 눈물을 강요하는 작품이 아님을 전신(全身)으로 증명해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