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우아함을 깨버린 도전, 김남주
2007-01-26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햇수로 6년 만의 연기 복귀작이다.
=그동안 연기를 안 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좀더 잘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다보니 시간이 길어졌고, 겁이 많아졌다. 한편으로는 많은 분들이 오래 쉬었다고 해주는 게 고마울 때도 있었다. 아직도 배우 김남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더라. (웃음)

-그동안 김남주의 캐릭터는 트렌디 드라마의 도시여성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하다못해 <왕초>의 민재도 신여성이다.
=그런 이미지가 없는 게 아니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또 다른 내 모습도 분명히 있다. 어떤 드라마나 CF에서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으면 좋겠다고 계획한 적은 없다. 오히려 처음에는 털털하고 보이시한 이미지로 출발했다. 하지만 CF 이미지가 오랜 시간 강조되다 보니까 나를 우아하고 완벽한 이미지로 평가하더라. 실제로는 전혀 럭셔리하지 않다. 커피도 다방커피만 좋아한다. (웃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땠나.
=저항능력이 없는 아이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시나리오 끝부분에 범인 몽타주가 나오는데 소리까지 질러대면서 시나리오를 집어던져버릴 정도였다.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이건 꼭 내가 해야겠다 싶더라.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보다도 좋은 일에 동참한다는 기분이었다.

-남편인 김승우씨와도 영화 속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안 했다. 하지만 김승우씨는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했다. 시나리오를 가져와서는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는 안 하고 ‘그냥 한번 편하게 읽어봐’ 그랬다. 결정한 뒤에 얘기를 들어보니 꼭 했으면 좋겠는데, 자기 의견이 오히려 방해가 될까봐 말을 아꼈다더라. 연기에 대해서도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영화를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관객 중 한명이다.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매우 보고 싶어한다. 예전에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는 서로 관심이 없을 때라 기억나는 게 없다더라. (웃음)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박진표 감독은 뭐라고 하던가.
=배우는 실제 부모여야 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실제 부모라면 마음가짐이든 표현하는 것이든 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감독님을 만나면서 훌륭한 감독은 남다른 눈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김남주의 모습에서 전혀 다른 걸 보고 믿어준 것이 놀라웠다. 나도 우리 어머니를 닮아서 자식한테 전전긍긍하는 편인데, 그런 모습을 본 것 같다. 어쩌면 고급 아파트 CF 속의 여인이라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쉬운 점이 있었을 것도 같고.

-촬영하면서 박진표 감독이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마음대로 해라. 난 엄마가 아니라서 모르니까 아이디어를 달라’는 게 주문이었다. 연기를 하면서 감정을 이렇게 해달라거나 거기 조명이 안 좋으니까 여기서 해줘라는 식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항상 2%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했었는데, 한번은 나도 모르게 ‘내 새끼…’라는 대사를 신음하듯이 한 적이 있었다. 부족한 2%가 그거였던 것 같다 그러더라. 항상 칭찬하고 격려해줘서 마음이 편했다.

-혹시 그런 믿음이 부담되지는 않았는지.
=성격상 그런 걸 되게 좋아한다. (웃음)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으면 부담이 됐겠지. 하지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엄마니까 잘할 수 있을 거란 내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내가 좀 어린애 같아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더 잘해야지’ 이런다. 오히려 제한하려 하면 힘이 빠지는 스타일이다. 그런 점은 감독님과 내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오지선은 가족 중에서 ‘끝까지 폼나게 아님 말고’란 가훈을 가장 잘 지키는 인물이다. 시나리오를 보면 유괴 뒤에 수사팀이 집으로 들이닥쳤을 때도 하얀색 접시에 과일을 정갈하게 담아내놓을 정도다. 아이 엄마로서 그 장면에 대한 생각은 어땠는지.
=정말 공감이 가질 않았다. 다행히 감독은 원칙과 기준은 있되, 틀에 박힌 건 없었다. 그 장면도 내 감정이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하지 말자고 하더라. 이후에도 오지선을 연기하면서 연구하거나 노력한 건 없다. 단지 그 인물의 감정과 공감하려고 했다.

-실제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감정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영화 속 상황을 내 딸 라희와 결부시킨 적은 없다. 오히려 라희를 보면 난 바로 인간 김남주로 변해서 즐거워졌다. 하지만 김남주에서 오지선을 만드는 건 너무 힘들었다. 촬영장으로 가는 길부터 배에 힘이 빠지곤 했다. 그런데도 한번은 집에서 아이를 업고 한강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라희야 엄마가 미안해. 같이 많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러면서 아이를 위해 기도하다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사실 울 일은 아닌데, 미처 오지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 때문에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상태였던 것 같다.

-드라마를 하던 때와는 환경에서 차이가 많았을 텐데.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왜 이 연기를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경험이 신선했다. 한신도 ‘꽁’으로 먹는 게 없었다. 항상 뱃속의 모든 걸 끌어내야만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냥 좀 묻어가면 좋겠다 싶을 때면 감독은 절대 오케이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한테는 많이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 개구리 같은 눈, 터진 입술이 보이길 원했다.

-예전과는 다른 캐릭터라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많았겠다.
=오지선이 뒷모습만 보여주면서 소주 마시는 장면이 있다. 보통 어머니들도 집안일이 너무 힘드니까 싱크대에 김빠진 소주 한병씩 숨겨놓고는 가끔 한두잔씩 드시지 않나. 진짜 소주를 마셨는데, 넘어가는 소리가 정말 한 맺힌 듯했다. 진짜 모진 이 목숨 끊어서라도 아이를 찾고 싶다는 목넘김이었다. 스탭들까지 울었던 걸 보면 그 장면의 감정이 다들 좋았던 것 같다.

-<그놈 목소리>가 배우 김남주의 인생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도 같다.
=그동안 CF 이미지에 국한되어 있는 게 답답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작품은 영화든, 드라마든 <그놈 목소리>와도 다르고 또 내 이전 작품과도 다른 걸 만나고 싶다. 우선 지금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들 “의외다. 어떻게 김남주가?” 이런 말들을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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