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가 된 책 [1]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소설
2007-02-19
글 : 씨네21 취재팀

한니발 렉터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창해 펴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는 잭 더 리퍼도 에드 게인도 존 웨인 게이시도 아닌,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 한니발 렉터다. 한니발은 해리스가 발표한 3편의 소설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그가 잔혹한 살인을 행하고 인육을 먹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기꺼이 한니발의 포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뛰어난 화술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전문적인 지식, 치밀한 심리 분석을 통해 상대방의 내면을 읽어내는 한니발의 마력은 인간을 초월하는 데 있었다. 그런 그가 <한니발>에서부터 변화를 꾀하더니, 이번 작품에서는 완전한 한명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한니발 라이징>은 한니발의 성장 과정과 함께 왜 그가 잔혹한 연쇄살인범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주력한다. 한니발의 과거사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복수의 길을 걷는 한니발의 모습은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자아낸다. 하나 그에 따른 역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한니발에 매료된 것은 그에 관한 대부분 것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두 까발려졌을 때의 반응은 두 가지다. 한니발에 대한 동정 혹은 실망이다. 영화 <한니발 라이징>의 포인트는 앤서니 홉킨스의 부재다. <맨헌터>를 제외한 그 아닌 한니발을 얼마나 많은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김종철/ B급영화 애호가

밀로스 포먼이 쓴 역사 팩션

<고야의 유령> 밀로스 포먼, 장 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펴냄

도무지 영화화할 만한 소설이 없다고? 해결책이 여기에 있다. 감독 자신이 직접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다. <고야의 유령>은 밀로스 포먼 감독이 시나리오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니콜 키드먼의 탄생>)와 함께 쓴 소설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온 유럽이 새로운 변혁의 대지진으로 앓던 시절의 스페인. 젊은 신부 로렌조는 종교재판소의 권위를 부활시키기 위해 이단 처단을 부르짖는 종교주의자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소에 끌려와 고문당하는 부유한 상인의 딸 이네스를 만나면서 흔들리고 만다. 결국 로렌조는 이네스와 사랑에 빠진 죄로 해외로 추방되고, 20여년 뒤 나폴레옹 정권의 핵심 인물로 변신해 스페인으로 귀환한다. <고야의 유령>은 이른바 역사적 팩션. 혁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가톨릭 군주제의 스페인으로 뛰어든 포먼과 카리에르는 화가 고야의 눈을 통해 가상의 인물 로렌조와 이네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한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까닭에 인물의 내밀한 내적 갈등보다는 서사에 좀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책장이 영화보듯 술술 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내털리 포트먼이 각각 로렌조와 이네스로 분한 동명의 영화는 이미 완성되어 2007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도훈

이토록 불완전한 세상

<블랙 달리아> 제임스 엘로이 지음/ 황금가지 펴냄

현대 하드보일드 소설 걸작 중 하나. 절판된 뒤 입소문으로만 알려져 있다가 최근 황금가지에서 다시 나왔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놓을 수 없는,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열살 때 어머니가 강간 살해를 당한 뒤 알코올중독으로 살아가던 작가 자신의 깊은 어둠이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블랙 달리아 사건을 재구성해 소설화하면서 완성된 작품이다. 제임스 엘로이는 이미 영화화되어 비평적 성공을 거둔 <LA 컨피덴셜>의 원작자이며, <블랙 달리아> 영화화는 데이비드 핀처가 이미 시도했다가 포기했고, 지난해 브라이언 드 팔마에 의해 결실을 맺었다. 한 여인의 시체가 할리우드 시내의 빈터에서 발견된다. 사지가 절단되고 극도로 훼손된, 한때 꿈이 있었으나 도시의 밑바닥을 전전하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은 이 여인은 블랙 달리아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대서특필되고, 이 사건을 두 형사가 맡게 된다. 도시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사들, 또 다른 의혹으로 이어질 뿐인 많은 단서들, 그 어떤 상상보다 끔찍한 현실. 더럽혀진 거울로 가득한 방에 서 있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추악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죽음은 섹스로, 새로운 생명의 잉태로 이어진다. 영화화가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불완전하고 사악한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낸 책이다.

이다혜

연애에 관한 뜨거운 수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 에단 호크 지음/ media 2.0 펴냄

그는 젊었고, 사랑도 젊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배우로서의 그와 자연인으로서의 그가 혼재되어 부글거리는 듯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윌리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는 술집에서 만난 사라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윌리엄은 사라와 사귀지만, 그녀에 관한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고, 그녀에게 지나친 이상을 불어넣는다. 그는 사라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여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녀와 자고 싶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면서도 그녀가 유지하려고 하는 거리를 충실하게 지켜주며, 그녀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들을 수락한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연애소설이다. 남자의 시점으로 회상한. 그 사람이 없이는 자신의 존재가 의미를 잃을 것 같던 순간을 지나, 그 순간으로부터 멀찍이 물러나서 돌이키는 사랑의 추억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도 이상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닉 혼비처럼 능숙하거나 매끄럽지는 않으나, 에단 호크는 서투르지만 열정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똑똑한 여자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 그리고 오럴을 싫어하는 여자의 차이점에 대한 수다처럼, 결국 결론이 나지 않는 그토록 뜨거운 추억에 관한 이야기.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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