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펴냄
“우리 모두가 누군가와 누군가의 촉매이며 세상은 다양한 화학반응으로 넘친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재회에 대한 다짐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다. 쓰레기 산에서 만나 유년을 함께했던 사토시와 유지, 카린은 즐거운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로부터 15년 뒤, 아쿠아숍을 경영하는 스물아홉살의 사토시 앞에 다짜고짜 아르바이트 자리와 숙식을 요구하는 전직 모델 출신의 여자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 숨겨진 또 다른 인연들이 꼬리를 물며 등장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연애사진> 등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강력한 힘은 과거의 인연뿐만 아니라 현재의 인연에도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킨다. <그때는 그에게…>는 최근 일본 청춘소설과 영화에 등장해 호감을 얻은 요소를 모조리 채워넣었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 그(혹은 그녀)와의 재회, 조그만 동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인물들. 무엇보다 인연의 뒤편에 가려진 비밀이 있다. TV드라마 <백야행>을 연출한 히라카와 유이치로 감독이 나가사와 마사미, 야마다 다카유키, 쓰카모토 다키시 등의 청춘배우와 함께 동명영화로 촬영 중이다.
강병진
아무도 앉지 않는 4인용 식탁
<행복한 식탁> 세오 마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아침식사는 꼭 함께 모여서 해야 하는 가족이 있다. 학교 교사인 아빠와 가정주부 엄마, 고등학생인 오빠와 여중생 사와코. 식사자리가 아니면 함께 모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아침식사는 일종의 규칙이다. 하지만 이는 종종 ‘충격 고백’의 장으로 변한다. 엄마의 가출과 아빠의 사직, 농부가 되겠다는 오빠의 고백이 모두 아침식사 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 <4인용 식탁> <노리코의 식탁>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식탁>에서의 식탁은 가족의 양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동전이다. 가족의 화목은 일면 함께 모여 앉은 식탁에서 나오는 것 같지만, 식탁의 빈 의자는 결국 함께 모일 수 없는 가족의 비극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저자인 세오 마이코는 ‘가족의 붕괴’라는 테마를 좀더 섬세하고 무덤덤한 필치로 그려낸다. 자살, 죽음, 가정불화 등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가볍게 치고 나가는 빠른 문장 전개가 남다르다.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고마쓰 다카시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어, 1월27일 개봉했다. 오빠 역으로는 <스윙걸즈> <나나> 등에 출연해 국내에서도 익숙한 히라오카 유타가 맡았다.
정재혁
엄마가 있던 풍경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이 책의 부제는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엄니와 나, 때때로 아부지.’ <도쿄타워>는 태어난 땅에 등을 돌리고, 그것처럼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도쿄로 나가고, 결국 떨어져나와 고향으로 돌아왔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도쿄에 나왔다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주인공, 그리고 단 한번도 그런 환상을 품은 일이 없는데도 도쿄까지 따라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도쿄타워 중턱에 영면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조그만 이야기다. 일본에서 이미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곧 오다기리 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질 이 책은 일본에서 2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작가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릴리 프랭키는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에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 외할머니와 명랑한 이모들, 그리고 주인공의 괴상한 친구들과 다정한 이웃 사람 등 그의 나날을 함께해온 사람들에 관한 따뜻한 회고담을 완성해냈다. 책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유머와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이별을 마주한 슬픔이 저자의 내면적 성장과 맞물려 있다. 몸으로 직접 경험한 일 특유의 진실함이 빛난다. 이 책은 2006년 일본 전국 서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투표하는 ‘책방 대상’을 수상했다.
이다혜
상처입은 당신, 하룻밤 쉬어가세요
<프리즌 호텔> 아사다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우리문학사 펴냄
소설가 아사다 지로는 영화화되어 큰 성공을 거둔 동명의 소설 <철도원>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사실 시대적 배경이 강조되는 이야기나 코믹한 이야기, 공포스런 이야기까지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작가다. <프리즌 호텔>은 주인공 기토 나가조가 야쿠자인 나카조 삼촌이 경영하는 온천거리의 한갓진 호텔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소설로, 경쾌한 문체와 유머러스한 이야기, 그리고 감동의 한방 등이 고루 갖추어진 대중소설이다. 무대가 되는 오쿠유모토 수국 호텔은 조잡하고 포악하고 비상식적이어서,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상한 부(負)의 에너지가 가득 고여 있는 곳이다. 주인공 기토 역시 마찬가지다. 기토는 사람이 좋다 못해 바보 같은 계모 도미에를 무시하고, 야쿠자인 삼촌을 모델로 한 소설을 써서 나름 팔리는 작가로 먹고살고, 다섯살 난 딸애를 데리고 사는 다무라 기요코를 한달에 20만엔을 주고 ‘산’ 뒤 마음내킬 때 오라 가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책의 그 누구도 가식으로 젠체하는 일은 없다. 패배자들만 모여드는 것 같던 호텔은 어느새 치유의 장소가 되고, 이 시리즈는 계절별로 속편이 계속 이어졌다.
이다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