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진, 독립영화 관계자분들 연락주세요^^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김민진(29)이 연기를 맛본 것은 군복무 중 방공포 근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출연을 자처했던 ‘구타근절단막극’이 시작이었다.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것은 엄마 손을 잡고 찾아갔던 점쟁이였다. 방송국 작가였던 아는 누나만 믿고 상경한 그가 “내 남편이 너보다 더 잘생겼다. 연기를 전공했냐, 잘생기기를 했냐,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도 방송국 문턱을 기웃거린 것은 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5년여 뒤. <자본당 선언>(곡사) 등의 독립영화 주연, 드라마 보조출연과 단역을 거쳐 매주 TV에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비추게 된 이야기는 마치 그가 출연하는 재연프로그램 속 사연 같다. 1회 출연에 그칠 줄 알았던 드라마에서 주연급 캐릭터의 직장 조수로 캐스팅되어 끝까지 ‘연결’된 행운도(아침드라마 <용서>), 난생처음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에서 출연분량이 편집된 아쉬움도(<생활의 발견>), 유명한 감독과 안면을 틀까 싶어 주연배우의 경상도 사투리를 지도할 때의 기대도(<포도밭 그 사나이>) 이제는 지난 일이다. 연기를 전공했거나 외모가 받쳐주는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서 간간이 출연하던” 간판급 재연프로그램에서 “주로 사기꾼이나 비열한 악당 혹은 불쌍한 코믹 간지를 내세우는 역할”로 영역을 구축한 덕에 1주일에 평균 세번씩 TV에서 그를 볼 수 있게 됐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PD는 “이제 너도 좀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던졌고, 돈이 입금됐음을 알려주는 휴대폰 신호음은 끊이지 않는다. 현란한 가무 실력과 성실성으로 장인에게서 점수를 딴 덕에 올해 초 신혼살림까지 차린 이 남자. 세상없는 낙천주의자지만, 연기에선 아쉬움도 많고 욕심도 많다. 여전히 자신없는 건 “닭살 멘트를 날려야 하는 멜로 연기”,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장애인 역할”, 왠지 자신있는 건 “이문식 선배처럼 캐릭터를 내세우는 코믹 연기”…. “독립영화에도 계속 프로필을 돌리는데 캐스팅이 안 돼요. 방송에 출연한다고 출연료를 꼬박꼬박 챙길 것 같아서 그런가. 그런 거 상관없거든요. 어울리는 역할 있으면 연락주세요.” 그의 마지막 전언이다.
글: 오정연
박재현, 솔로몬의 ‘선택’
10대 초반부터 고향 경주의 지방극단 연극무대에 올랐고, 고등학교 때부터 <감성세대> <사랑이 꽃피는 계절> <스타트> <정 때문에> 등의 드라마에 주·조연으로 출연했고, 방송활동 때문에 중퇴를 했으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이었던 박재현(30)은 이른바, 방송가의 기대주였다. 군입대 등의 공백기 이후 아는 후배에게서 <솔로몬의 선택> 출연을 부탁받았을 때, 만감이 교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들이 속해 있던 소속사의 횡포에 맞서면서 회의를 느낀 탓에 다른 길을 가겠다 마음먹은 그를 돌려세운 것은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변의 권유와 ‘보조출연을 하다가도 정식 배우가 되기도 한다’는 조언이었다. 눈길을 끄는 선굵은 외모에 어느 정도의 경력까지 겸비한 그는 결국, 연기를 재개한 지 3년 만에 웬만한 재연프로그램 속 베테랑 주연으로 자리잡았다. 유난히 커다란 눈망울을 지녔으면서 태권도 선수 경험까지 지닌 까닭에 눈물연기가 주를 이루거나 부유층 혹은 전문직 청년이 주인공이거나 암울한 환경에서 태어난 반항아로 액션신이 필요할 땐 그의 진가가 더욱 돋보였다. 한겨울에 바다에 빠져죽는 연기를 하느라 고생스러웠지만 덕분에 모든 스탭들이 극중 이름 ‘우식’이로 불러준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일찍이 경험한 유명세 때문인지 ‘재연’배우라는 꼬리표에 대한 섭섭함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 뒤 재연프로그램으로 연기를 시작하면서 “대기실에서 선배 배우들에 대한 인사를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때와 달리 모든 스탭과 동료 배우들과 친해지는 등 주위를 돌아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깨달음”이라는 그가 ‘배우’라는 사실 역시 누가 뭐래도 여전하다. 웬만한 신인급 연기자보다 널리 얼굴이 알려졌고, 웬만한 연예인만큼 활발한 팬카페를 거느린 그가 가장 해보고 싶은 역은 “어둡고 독한 캐릭터”. 예상치 못했던 길을 통해 배우 인생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박재현은 요즘 들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었다. 물론 그 양상은 3년 전과 사뭇 다르다. 직업인 혹은 생활인 배우로서 감수해야 할 것임을 본인이 알기에, 그것은 한결 행복한 고민인 셈이다.
글: 오정연
변신호, 재연 프로그램의 변천사 그 자체
“며느리 좀 그만 괴롭혀!” 낯선 사람들의 뜬금없는 훈계는 변신호에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재연 프로그램 속에서 주로 할머니 역으로 등장해온 그는 유독 독한 얼굴로 각인됐다. “착한 할머니, 궁상맞은 할머니, 여러 가지를 다 했는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항상 악랄한 역이더라고요. (웃음)” <경찰청 사람들> <이야기 속으로>부터 <솔로몬의 선택> <꼭 한번 만나고 싶다>까지, 10년 넘게 방송가에 뿌리를 내린 그의 출연작들은 우리나라 재연 프로그램의 변천사 그 자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여인극장’, ‘가교’ 등의 극단을 거치며 연극 무대에 오르던 변신호가 TV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96년 <베스트극장>에 출연하면서부터. 당시 그의 나이, 40대 중반이었다. 아들뻘 되는 스탭들이 “아줌마 저리 비켜요!” 소리를 지르는 것도 속상했지만, 방송에 맞는 연기를 익히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연극에서는 일상적인 연기가 방송에서는 ‘오버’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처음엔 내가 왜 이렇게 연기가 안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대기 시간에는 잡담도 일체 삼간 채 다음 촬영분에 집중했고, 몸이 끊어질 것 같아도 들어오는 출연 요청은 예외없이 받아들였다. <대장금> <왕꽃선녀님> 등의 드라마부터 <너는 내 운명> <구미호 가족> 등 영화까지 온갖 현장을 누비며 연기를 몸에 붙여나가는 사이 10여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내일모레면 예순이에요”라며 소박하게 웃는 그이지만, 가슴속 열정만큼은 청춘의 뜨거움 그대로다. “이 대사 한마디 하려고 내가 여기 왔나, 하는 식의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역할이 작건 크건 상관없이 연기가 그 자체로 너무나 좋아요.” 8일간 연거푸 촬영을 하고, 사흘 동안 밤을 꼴딱 새워도 현장에서는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행복한” 연기자다. “사실 그렇잖아요. 내 나이에 좋아하는 일 하면서 손자에게 간식 사다줄 수 있는 할머니가 몇명이나 되겠어요? (웃음)”
글: 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