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메멘토>의 퍼즐은 지극히 영화적이다. 만일 책으로 쓰였다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난삽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말로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시간과 공간을 접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영화적인 마법 속에서 이 영화의 시간을 올바로 나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주인공과 누군가가 통화하고 나면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데 통화 내용으로 보면 시간순이다. 이 두 가지 시간의 축이 혼재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가 누군가를 총으로 쏘아 죽인 뒤 그 시체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는다. 여기서 한 가지. 필름이 거꾸로 돈다. 그건 곧 무슨 뜻일까?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뜻이다. 어쨌건 레너드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4-3-2-1. 하지만 여기에 끼어드는 흑백 화면은 관찰자의 시점이다. 그리고 흑백 화면에서의 시간을 순차적으로 흐른다. a-b-c-d. 이 두 시간이 교차해 4-a-3-b-2-c-1-d와 같은 순서로 나열된다.
레너드는 아내가 강간살해된 뒤 복수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레너드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복수를 했다. 테디의 말이 있기도 했지만, 영화 끝부분 회상장면을 보면 레너드가 아내와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레너드의 몸에는 ‘난 해냈다’라는 문신이 크게 보인다. 문제는 왜 그 문신이 영화 초반에 보이지 않았는가 하는 점. 레너드 자신이 지웠기 때문이다. 레너드가 원하는 것은 복수라는 행위 자체다. 형사 테디를 믿지 말라는 메모 역시 자신의 복수를 멈추지 않으려는 레너드의 고의적 진술이다. 15분만 지나면 그 어떤 거짓도 레너드에게는 진실이 될 수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레너드의 아내를 죽인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레너드의 아내는 강간사건 당시 죽지 않았다. 샤워커튼 아래 그녀의 눈은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레너드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고, 그의 기억은 아내가 죽었다는 충격에서 멈추어 있는 것이다. 레너드가 설명하는 새미 젠키스 이야기는 사실 자기 얘기로, 아내를 죽인 뒤 새미의 얼굴이 순간 레너드의 얼굴로 변하는 게 그 증거다. 그렇다면 레너드의 아내는 어떻게 죽었는가. 레너드가 저지른 인슐린 과다 주입. 레너드의 회상 속에서 아내는 허벅지를 꼬집혀 따끔해하는 데 이는 사실 레너드에게서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너드는 15분 뒤면 다시 주사를 놓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전에 시작한다.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레너드는 15분마다 놀랐을 것이다. 레너드는 15분마다 죽었다 살아난 아내에 경악하고, 아내는 그런 레너드에게 설명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레너드가 원한 게, 아내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결국 레너드의 아내는 죽고, 레너드는 복수가 끝났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망각할 수 있으며, 그렇게 복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