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포일러 100%, 반전 해부하기 2. <아이덴티티>
2007-04-06
글 : 이다혜

아무도 믿지 말 것, 당신 자신조차도

<아이덴티티>를 다 보고 난 뒤 영화 제목과 영화 포스터만 봐도 많은 단서가 사전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이덴티티’는 정체성을 뜻하는 단어로, <아이덴티티>가 다중인격을 소재로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중인격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한 사람 안에 여러 사람의 인격이 숨어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결국 허구의 인물들이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싸이코>에서, 존재하는 것 같던 누군가가 결국 죽었음이 밝혀지는 것처럼. 마치 손목의 끝에 손가락이 다섯개 달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가락이 다섯개라 해도 그 손가락은 한 사람의 것이니까. <아이덴티티>의 포스터가 뜻하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의심할 수 있는 수상쩍은 단서는 영화 초반에 노출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아들이 비오는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고장나자 도로에 차를 세우고 수리를 시작한다. 차 뒷좌석에 탄 소년과 차 밖의 소년의 어머니는 서로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장난을 치고 있다. 이때 소년이 뒤로 물러나자 어머니도 뒤로 물러서는데, 차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으므로 어머니는 차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음으로써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는다. 이때 소년이 어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만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은, 어린아이의 선량함을 믿는 관객의 고정관념대로 굳어지고, 이후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범인목록에서 소년을 제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형을 앞둔 살인마 말콤 안에는 11명의 인격이 숨어 있다. 말콤의 심리학자는 착한 인격을 뺀 나머지 10개의 인격을 죽이면 그가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며 착한 인격 에드를 불러내 대화를 한다. 에드는 악한 인격을 죽이면서 자신까지 죽음을 맞게 되고, 마지막에 말콤에게는 선량한 인격만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자가 티모시의 인격을 그대로 놔둔 이유는, 말콤이 4년 전에 마지막 살인을 저지른 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티모시가 말콤의 머리 안에서 등장할 일이 없었고, 그래서 그는 티모시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심리학자는 말콤의 인격을 표시하면서 10과 숫자 2, 10과 숫자 3 하는 식으로 전체 인격 수에서 해당하는 인격을 표시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 숫자만으로도 이미 그가 말콤의 인격을 10개까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방 번호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릴 적 말콤이 살인인격이 되는 원흉을 제시한, 그가 가장 증오했던 인물이 바로 어머니의 인격(창녀) 파리스다. 방 번호는 죽이고 싶은 순서이며, 그래서 파리스가 마지막에 발견하는 방 번호가 1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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