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에게는 친구가 없다. 여자친구가 없거나,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도 좀처럼 대시를 못하거나, 심지어 여자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있다.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의 여자주인공은 슈퍼히어로이건만, 실연에 몸부림치다가 도시가 파괴될 지경에 이른다. 부모님이나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의지하던 인물이 비참한 죽음을 맞는 일도 다반사이며, <데어데블>처럼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있거나 <스파이더맨>처럼 다른 생명체와 섞인 존재인 경우도 있다. 이들은 왜 이리도 기구한 팔자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런 그들을 좋아하는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힘을 지닌 그는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세계를 지키거나 아예 바꿀 수도 있다. 악당들은 언제나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지구인은 그 덕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 그는,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야 할 존재가 바로 슈퍼히어로일 것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그렇지 않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렇다. 슈퍼히어로들이 연애에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간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증명된 바 있으니 새로울 게 없다 할지 모르지만, 그의 최초의 적이 친구의 아버지였다는 설정은 두고두고 그의 발걸음을 잡아챈다. 게다가 그의 능력은 운명적 장난, 즉 거미와의 기이한 이종합일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때로 늑대인간이나 심지어 프랑켄슈타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제 시리즈 3편으로 귀환을 준비 중인 그는 온몸이 모래로 만들어져 자유자재로 변형과 조종이 가능한 샌드맨, 그린 고블린의 뒤를 이어 신형 고블린 글라이더로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된 뉴 고블린, 그리고 스파이더맨 시리즈 사상 가장 강력하고 사악한 적인 베놈과 결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이번 편에는 무엇보다 스파이더맨이 그 안에 있는 악과 마주하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3편의 시작은 이제 언론과 대중의 인정과 사랑을 모두 받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다. 여자친구와도 잘 풀린다. 하지만 한 고비 넘기면 더 큰 고비가 그의 앞에 들이닥친다. 이제 스파이더맨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동시에 자기 내부의 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외계에서 온 수수께끼의 유기체 때문에 스파이더맨 스스로가 악당이 되지 않기 위해 투쟁한다. 포스터에서부터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는 블랙 슈트는, 날렵한 인상을 주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이전 스파이더맨 슈트와 달리 그의 내면의 어둠을 형상화한다. 블랙 슈트의 스파이더맨은 이전보다 강하지만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게다가 블랙 슈트로의 변신에 일조한 외계의 물질은 악당에게도 같은 능력을 선사한다.
이번 이야기에 들어간 총예산은 2억5천만달러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 거미줄을 뽑으며 날아다니는 슈퍼히어로를 위해 샘 레이미 감독은 이전보다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관객이 마치 하늘 높은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 적의 힘과 인원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을 연기하는 토비 맥과이어는 이전 편에서보다 4배나 많은 액션을 소화해야 했다. 맨 얼굴로 싸울 때에는 직접 액션을 소화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피터와 해리가 맨 얼굴로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등에 문제가 생겨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던 점을 생각하면, 척추치료사를 현장에 항시 대기시키고 촬영해야 했던 그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3편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이른 생각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시리즈의 4편을 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샘 레이미 연출-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공식이 허물어진다면 제작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 기대치는 월등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치솟는 제작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토비 맥과이어의 출연료는 편당 약 1천만달러가 뛴다고 알려져 있으니 더더욱. 하지만 점점 능숙하게 하늘을 나는 스파이더맨에게, 하늘인들 한계선을 누가 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