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슈퍼 히어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초영웅들
2007-04-24
글 : 이다혜
슈퍼히어로물이 재미있는 이유, 그리고 각 슈퍼히어로의 특징

CG의 발달은 많은 것을 가능케 했다. 트로이의 신화, 스파르타의 전쟁, 알렉산더의 전설이 스크린으로 되살아났다. 그와 동시에, 슈퍼히어로들이, 오로지 만화적 상상력으로 지면에서나 전지전능할 수 있을 것 같던 슈퍼히어로들이 스크린에서 되살아났다. 게다가 실존했던 전설 속 인물, 즉 유한한 생명 때문에 그 신화적 비약이 강조되었던 실존인물들과 달리, 애초에 코믹스의 주인공이었고 애초에 수십권의 시리즈 주인공이었던 슈퍼히어로들은 불멸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존재했던 시리즈라고 해도 다시 시작하고(<배트맨 비긴즈>), 다시 지구로 데려오는(<수퍼맨 리턴즈>) 과정을 통해 잃었던 시리즈의 생명력을 되살릴 수 있었다. 코믹스 히어로의 춘추전국시대라는 표현은 이미 얼마간 한물간 표현이 될 정도로, 이미 슈퍼히어로 시리즈는 몇편에 걸쳐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슈퍼히어로들의 인간적 사연

<배트맨 비긴즈>

하지만 슈퍼히어로물이 다 같을 수는 없다. 초인적인 능력에도 종류가 있고, 이유가 있으며, 사연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연’이라는 게 인간적일수록 슈퍼히어로가 매력적이 된다는 점이다. 그 고뇌는 인류를 바라보는 능력자의 고민이기도 하고, 점점 강력해지는 악당과 대결해야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살인면허를 가지고 전세계를 돌며 여자놀이에 정신없는 007 같은 인간과 달리 금욕적인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이성문제에서는 수줍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건물을 뿌리째 뽑아 던질 수 있는 남자가 연정을 품은 대상 앞에서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는 일은 의외로 즐겁다. <다빈치 코드>가 개막작으로 상영된 칸영화제에서 “네 조상은 예수다”라는 말을 듣고 터져나온 웃음을 생각할 때, “사실 내가 슈퍼맨이야” 하는 고백이 얼마나 허황하게 들리겠는가. 잔뜩 부풀어오른 근육을 드러내고 유독 근엄하게 고민에 빠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슈퍼맨들의 실생활을 조각해놓은 것처럼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결국 우리는 슈퍼히어로의 강함에 중독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약함에 인간적 매력을 느끼고(초영웅에게 인간적 매력이라니!), 한발 더 나아가 악당과 함께 그의 아킬레스건을 추적하며 스릴을 만끽한다.

슈퍼히어로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공식을 끌고 다니기 때문에 시리즈물로 기획되는 일은 언뜻 쓸모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시리즈물이 몇번이고 나올 수 있기도 하다. 슈퍼히어로 시리즈는 마치 격투게임과 같아서, 단계가 높아질수록 강한 적이 등장한다. 슈퍼히어로는 007처럼 신무기가 계속 나오지 않기 때문에, 속편으로 갈수록 슈퍼히어로가 궁지에 몰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같고도 다른 슈퍼히어로들

<매트릭스>의 레오는 그야말로 인간이 슈퍼히어로가 되는 이야기다. 성경을 비롯한 여러 신화적 텍스트를 인용할 만한, 인간의 아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레오는 사실상 불사의 존재. 게다가 죽은 자를 살리는 힘도 가지고 있다. 완결성을 갖는 세편의 이야기가 시리즈를 이루며, 이 세편에서 레오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단계적으로 강해진다. 슈퍼히어로라기보다는 신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지는 그는, 인간이 아닌 모습을 빌리지도 않고 가면조차 쓰지 않으므로 연애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다. 레오가 인간이나 슈퍼히어로보다 신에 가까운 존재라면, <배트맨> 시리즈의 배트맨은 그냥 인간이다. 그의 능력은 그의 자본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비밀이 가능한 것 역시 그의 자본력 덕분이다. 그의 인간적 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로, 부모님의 죽음을 겪으며 트라우마가 생긴 한 인간이 자본의 힘을 빌려 밤의 초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무엇보다 시행착오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배트맨 비긴즈>는 이미 대대적으로 실패한 <배트맨>의 시퀄(속편)이 아니라 프리퀄(전편)으로 승부를 건 셈이다. 배트맨에게 인간 이상의 전지전능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상대하는 악당 역시 초인적이지는 않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 생활을 갓 시작하는 브루스 웨인이 실수하는 대목은 이 시리즈가 부활에 성공한 까닭 중 하나일 것이다.

<스파이더맨 3>

스파이더맨은 앞선 두 종류의 초영웅과는 또 다르다. 그는 인간이며 곤충이다. <플라이>에서 보여준 비극적 결과와 달리, 스파이더맨은 거미의 능력과 인간의 모습을 모두 유지할 수 있으며, 그 두 가지를 조절할 수 있다. 그야말로 비인간적이며 탈인류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덕분에 스파이더맨은 그야말로 게임 캐릭터처럼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한 악당과 마주한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대결구도가 영화를 거듭할수록 강렬해질 뿐 아니라 ‘성장하는’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내적 고민에도 상당한 무게추를 둔다. 뭐든 할 수 있는데도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숨 돌리려고 보면 원점에 돌아가 있다. 그가 죽인 악당은 친구의 아버지였고, 친구는 아버지의 원수인 그를 쫓으며, 그 친구와 그는 연적 사이다. 세상은 넓고 악당은 많아서 해치워도 해치워도 악당은 자꾸 등장한다. 그런 스파이더맨과 달리 슈퍼맨은 완전히 외계의 존재다. 외계에서 왔을 뿐 아니라 애초에 다른 스케일의 능력자다. 그야말로 우주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치명적 약점 역시 우주적인 것이다. 놀랍게도 지구인과 종족 번식이 가능한 것으로 그려지는 이 인물은, <엑스맨> 시리즈로 슈퍼히어로물의 지존급 감독이 된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로 돌아와 앞으로 새로운 활약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불멸의 존재를 그린 <하이랜더> 시리즈는 영생의 고독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슈퍼히어로물일수록 인간적 고민을 해야 인기가 있다. 성장통을 겪고, 연애로 고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자문한다. 소멸하는 인간들을 돕고 그들을 사랑하는 초영웅으로 살아가는 일의 외로움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인간에게 일말의 위안이 되어준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슈퍼히어로들 최악의 적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는 잊을 수 없는 악당이 등장한다. 죽은 진 그레이가 사악한 존재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선한 돌연변이들의 구심점이자 남자주인공들의 애정을 한몸에 받았던 그녀가 사악한 포스를 뿜으며 부활한다. 그녀는 어떤 돌연변이보다 강렬하며 파괴적이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는 일에 누구 하나 선뜻 나설 수 없다. 같은 편, 그것도 모두의 사랑을 받던 존재가 악의 축(보다 강렬한 최고 권력)으로 재등장한다는 설정은 <엑스맨> 코믹스 시리즈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반전이라고. 반면 <슈퍼맨> 시리즈의 렉스 루터는 가장 유머러스한 적이다. 렉스 루터의 유머는 지나치게 심각하다는 데 있는데, 야심찬 그에 비해 그의 수하들은 졸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왜소한 역량을 가진 인물들인 경우가 많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렉스 루터를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는 악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한 부동산 개발업자 정도로 보인다. 운사나운 부동산 개발업자인 그를 보노라면 부동산값에 일희일비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될 정도다. <배트맨2>는 팀 버튼의 연출력이 더욱 개성을 강화한 펭귄맨과 캣우먼을 컬트적 인기의 악당으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연민마저 불러일으키는 펭귄맨과 마타하리 뺨치는 캣우먼의 요염함은 이후 시리즈에 계속 등장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낳을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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