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워터스의 밤? ‘불면의 밤’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영화적인 경이로움이나 혀끝에 감도는 감동 덕분이 아니다. 관객의 ‘연약한 비위’를 마구잡이로 건드리며 휘젖는 발칙한 이미지의 덕이다. 전주 ‘불면의 밤’ 섹션에 당당하게 들어선 세편의 영화 <디바인 대소동>(74) <막가는 인생>(77) <폴리에스터>(81)는 익히 잘 알려진 존 워터스식 역겨움의 정수들이다. 관객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뉠게다. 토악질나는 이미지를 보며 킬킬거리거나, 혹은 불쾌함에 몸서리를 치거나.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반응은 존 워터스에 대한 결례나 마찬가지다.
존 워터스는 쓸쓸한 공업도시 볼티모어의 중산층 자제로 태어났다. 잘 자라든 못 자라든 다자랄 잎은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 어린 시절의 워터스는 동물의 사체나 자동차 사고 등등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괴상한 아이였고, 섹스가 법적으로 허가되는 나이가 되자마자 8mm 카메라를 손에 들고 페티쉬 포르노에 가까운 홈무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극영화 <몬도 트라쇼>(69)의 시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외설죄로 체포되는 소동을 겪으며 언더그라운드 영화계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70년대 내내 싸구려 괴작들을 잉태했고, 저예산으로 만든 흉측한 괴작들은 70년대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통해 컬트의 재단에 올랐다.
‘존 워터스의 밤’에 상영되는 세 편은 워터스의 발칙한 상상력이 절정에 올랐던 시기의 작품들이다. 특히 워터스의 최고 걸작(여기서 걸작이란, 전통적인 의미는 아니다)인 <핑크 플라멩고>의 속편 <디바인 대소동>은 눈을 감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장면이 꽤 있다. 워터스의 페르소나인 155kg의 드랙퀸 디바인은 크리스마스에 하이힐을 선물받지 못하자 가출한다. 이어서 기겁할 강간과 살인의 행각이 이어지고, 디바인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딸 ‘밍크 스톨’을 낳은 뒤 전기의자에서 종말을 맞이한다. 정신나간 이야기야 둘째 치고라도 악랄한 농담과 조악한 편집이 어우러진 시각적 배설에 입을 다물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괴이한 16mm 아방가르드 포르노를 관람한 파리와 뉴욕의 아방가르드 지식인들은 ‘시적인 유머 감각’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기립 박수를 쳤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지금도 같은 표현을 구사하며 <디바인 대소동>을 찬양하리란 보장은 없으나, 이 기묘한 영화가 가장 워터스 다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핑크 플라멩고>, <디바인 대소동>과 함께 일종의 삼부작을 이루는 <막가는 인생>은 성기를 맛나게 요리하는 장면을 참을 수 있는 관객을 위한 페티시즘 성전. 식인과 구토와 배설물이 넘실대는 장면으로 주류 사회를 엿먹이는 유머 감각은 <디바인 대소동>이나 <핑크 플라멩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교외 도시에 사는 중산층 여인 페기는 정신이상에 시달리다 남편을 죽이고는 뚱뚱한 거구의 간호사 그리질다와 집을 탈출한다. 두 사람은 페티쉬 복장을 한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모트빌(Mortville)’이라는 동네로 숨어들게 되는데, 그곳은 뚱뚱한 여왕 카를로타가 남자들을 섹스 노리개로 삼고 주민들을 지배하는 파시즘적 세계다. 엽기적인 주인공들의 행각을 무질서하게 따르던 영화는 모트빌 주민들이 독재자 카를로타를 노릇하게 구워서 즐겁게 나눠먹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를 독재에 대한 저항과 중산층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한 전복적인 걸작이라고 일컫는 것도 온당하겠지만, 그저 존 워터스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몽롱한 기분으로 즐기는 게 더 나은 관람법일 수 있다.
앞의 두 작품을 견뎌낸 관객이라면 <폴리에스터>야 느글느글한 햄버거를 씹으면서 느긋하게 관람하더라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워터스의 페르소나 디바인이 비교적 정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더글라스 서커의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 대한 존 워터스식의 대답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디바인을 둘러싼 중산층 콩가루 집안. 포르노 극장 사장인 남편은 외도를 일삼고, 페티시즘에 빠진 아들은 여자들의 발을 밟고 다니는 것으로 성적인 욕망을 해결하고, 딸은 누군지도 모를 자식의 아이를 임신중이며, 엄마 디바인은 끔찍한 집안의 방종을 견디다 못해 알콜중독자가 되고 만다.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끌고 들어와 중산층의 가치를 마음껏 조롱하는 재미는 여전하나 전작들과 비교해 본다면 여러모로 안전하고, 심지어는 일종의 ‘웰메이드 영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존 워터스는 지난 1981년 <폴리에스터>의 개봉 당시 긁으면 향기가 나는 카드를 관객들에게 배포했다. 카드를 긁으면 물씬한 겨드랑이 암내가 오솔오솔 올라와 관객의 후각을 어지럽혔다고 한다. 전주영화제가 겨드랑이 암내 카드를 준비하는 센스를 발휘했더라면 ‘존 워터스의 밤’은 진정한 ‘불면의 밤’으로 남았을테지만, 그토록 과격한 선전법을 점잖은 주최측에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굳이 1981년도의 미국 관객들과 똑같은 감흥을 느껴보고 싶다면야 방법은 있다. 관람 직전에 영화제를 돌아다니느라 찌든 신발이나 옆 사람의 겨드랑이에 코를 가져다 대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존 워터스의 밤’은 땀에 절은 신발과 겨드랑이 암내를 은근히 즐길 줄 아는 관객의 영화적 최음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