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경쾌하고 슬픈 후일담 영화 <페더젠 동지>
2007-05-0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페더젠 동지> Comrade Pedersen
한스 페터 몰란드/노르웨이/2006년/123분/영화궁전

장 뤽 고다르의 혈기왕성한 누벨바그 깃발 중 하나인 <중국여인>에도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서구의 혈기왕성한 지식인들이 일제히 중국을 철의 스승으로 모신 적이 있다. 서구의 68혁명 전후 마오이즘은 속세의 정의를 속세에서 이루려는 이들의 정신적 총알이었다. 한적한 북구 노르웨이의 도시 라빅도 예외는 아니었고, 20대 중반부터 삶의 안정과 안락에 몰두하려 했던 역사 교사 페더젠까지 그 자장 안에 끌어들였다. 페더젠을 ‘의식화’한 건 그의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다. 높은 자리에서 학생을 내려다보며 주입식으로 강의한다고 양질의 교육이 이뤄지겠냐는 야무진 학생의 ‘권유’로 페더젠의 수업은 졸지에 책상을 걷어치우고 둘러앉아 혁명가요와 토론을 나누는 터전이 되고 만다. 스폰지같은 성정을 가진 페더젠은 시대의 사상을 물처럼 빨아들이는 데 이를 휘발성강한 기름으로 승화시키는 계기를 만난다. 이미 유부남이었던 그는 혁명조직의 지도자적 동지 니나와 연애에 빠져들면서 그야말로 혁명과 혼연일체가 돼 음양의 실천을 거듭하게 된다.

<페더젠 동지>는 경쾌하고 슬픈 후일담 영화다. 90년대 들어 이념의 시대를 반성적으로 혹은 자조적으로 되돌아보던 한국의 많은 문학을 빼닮았다. 해방의 도구가 거꾸로 굴레의 도구로 역전되는 풍경을 세밀하게 들춰내는 디테일까지.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마오저뚱이 사망하며, 니나가 조직에서 자신의 연애를 자아비판하는 순간들이 서글픈 변곡점을 만들어간다. 그건 역사적 사실인 동시에 테마에 봉사하는 극적 허구이기도 하다. 남는 건 어떻게 버텨내느냐다. 예상가능하게도 그건 실연의 수렁에 빠진 페더젠뿐이다. 불같은 연애의 환희와 지옥같은 실연의 시련이 그에게 탈선하는 시대의 충격을 흡수하는 또 하나의 스폰지가 되어준다. 페더젠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지만 그 뒤로 후퇴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있는 박제를 선택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