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기담>의 프로덕션 과정
2007-05-24
글 : 정재혁

시대에 공포가 있다. 1940년대 경성을 무대로 사랑과 죽음의 공포를 그린 영화 <기담>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시대의 구현에 기댄다. 영화의 우선순위 중 “첫째가 고증”이었다고 밝히는 정가 형제 감독의 말처럼 <기담>은 그만큼 시대를 주요한 무대로 설정한다. 특히 극중에 등장하는 안생병원은 영화의 공포를 위해 필히 재현되어야 할 공간. <범죄의 재구성> <그때 그 사람들>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이민복 미술감독은 <기담>에서 프로덕션디자이너로 분해 총 7개의 세트를 디자인했다. 양수리 1세트장에 마련된 안생병원 세트와 2세트장의 인영과 동원의 집, 일본 병원의 수술실과 박 교수의 집이 구현된 덕소 세트, 청태산의 피막 오픈세트와 부천의 드라마 촬영세트를 개조한 화신백화점 세트 등. 특히 한달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2억5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제작한 안생병원 세트는 영화의 핵심공간이다.

세트_Y로 모이는 병원 구조

<기담> 병원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응급실, 시체실, 해부실 등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부 입원실과 자투리 공간이 별도로 제작된 점을 제외하면 한채의 병원이 하나의 세트로 구현됐다. 이는 극중에서 두 공간 이상이 겹쳐서 카메라에 담기는 신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지하 해부실로 이어지는 둥근 계단은 지하와 복도의 공간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구도이며, &#44790;여서 들어간 카메라는 더욱 풍성한 느낌의 세트를 보여준다. 또 Y자로 설계된 복도는 극중 세쌍의 인물군이 후반부에 하나로 만나는 이야기 전개를 암시하는 구조다.

기본 컬러_다크브라운의 공포

목조 양식과 붉고 검은 벽돌. 다크브라운을 세트의 기본 컬러로 잡은 <기담>은 ENR 현상을 거칠 예정이다. <혈의 누>가 이미 시도한 적 있는 이 현상방법은 화면을 좀더 지글지글하고 어둡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기담> 세트 내의 모든 색상들은 현상 결과를 감안해 더욱 밝게 채색됐다. 어둡다고 느껴지는 바닥과 벽의 나무도 스크린에서는 더 낮은 채도로 칠해질 것이다. 이민복 프로덕션디자이너는 “모든 가상의 결과를 테스트한 뒤 목재의 마감재, 의상과 소품 등의 색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고증_역사성 살린 영화적 고증

고증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미 70여년이 지난 과거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기란 힘들다. 특히 비정치적인 40년대, 그간 등장 횟수가 잦지 않았던 병원은 더욱 그렇다. 이에 이민복 PD, 김유정 미술감독 이하 제작진은 당시 상황에 대한 자료를 참조하고, 세세하거나 입증되지 않은 부분은 보편적인 시대의 이미지로 커버했다. 의료기구는 큰 모양새는 지금과 다르지 않으나 세부적인 디자인과 느낌은 상이한 부분이 많다. 사방이 목재로 둘러싸인 엑스레이 전등이랄지, 요즘에는 동물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세 손가락 주사기 등. 이는 당시 병원의 상황을 보여주는 디테일이지만 구할 수 없는 희귀품이다. 따라서 <기담>에 등장하는 모든 의료기구들은 새로 제작됐다. 가구도 16개의 병실 침대는 목재로 직접 만든 것이며, 클로즈업으로 자주 등장하는 문 손잡이도 직접 제작한 소품이다. 정남의 수납장이나 책상 등은 50만원에서 100만원에 구입한 제품들이다.

컨셉_영화보다 앞서지 않는 것이 컨셉

시대의 흐름에 순응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기담>의 세트는 많은 컨셉을 품은 미술은 아니다. “영화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 게 이번에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민복 PD는 <기담>은 시대가 중요한 무대이기 때문에 그 시대를 영화적으로 살려줄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한다. 대신 <기담>은 복잡한 컨셉을 잡는 대신 정확한 공정을 따랐다. 스케치와 미니어처 작업, 3D 시뮬레이션을 통한 세트 제작은 만들어놓고도 쓰지 않는 낭비를 최대한 줄였고, 모형 목작업을 보고 콘티를 짜는 방식은 미술이 영화제작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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