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파이더 맨 vs 잭 스패로우] 당신의 불완전함을 사랑해요
2007-05-22
글 : 신민경 (자유기고가)

21편의 007 시리즈를 낳은 것은 제임스 본드라는 저력의 캐릭터였다. 4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유쾌한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에서 비롯됐고, 테러 막느라 늘 바쁜 형사 존 맥클레인은 <다이하드> 시리즈를 4편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올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두 핵이 될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뒤에는 스파이더 맨과 잭 스패로우라는 별난 남자들이 버티고 있다. 시리즈가 거듭돼도 여전히 철모르고 불완전한 이들은 어떻게 흥행의 열쇠가 됐을까?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그 불완전함의 매력을 따라가본다.

토비 맥과이어 Tobey Maguire

거부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

피터 파커가 슈퍼히어로의 능력을 처음으로 감지한 날, 카메라는 피터의 단단해진 근육을 비춘다. 소년의 얼굴과 남자의 근육. 이 묘한 대비는 토비 맥과이어 고유의 소년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그는 마크 월버그, 맷 데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동세대 배우지만 틴에이저 역할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년성을 유지하고 있다. 미성숙한 이미지는 배우에게 분명 덫이 될 수 있겠지만, 신사답고 성숙한 스파이더 맨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스파이더 맨은 3편에 이르러서도 아직 완전한 남자가 되지 않았으니까. 뉴욕시 전체의 슈퍼스타가 됐지만 피터 파커는 여전히 문도 잘 열리지 않는 초라한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가 비록 자만심에 빠져 여자친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스파이더 맨을 규정짓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토비 맥과이어가 이제껏 쌓아온 비주류의 이미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년(<아이스 스톰>), 흑백의 세상에서 고뇌하는 소년(<플레전트 빌>), 불안한 내면의 천재 문학도(<원더 보이즈>) 등 토비 맥과이어가 구축해온 아웃사이더의 초상은 슈퍼히어로 스파이더 맨이라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뉴욕시 전체가 열광하는 영웅이건만, 쉽게 상처받을 것 같은 그의 표정은 단순한 슈퍼히어로를 뛰어넘어 복합적인 캐릭터로 업그레이드했다. 흥행 돌풍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메이저 세계에서 살짝 물러선 듯한 이 남자. 토비 맥과이어는 샘 레이미의 장르적 상상력과 우디 앨런(<해리 파괴하기>)의 냉철한 수다, 스티븐 소더버그(<굿 저먼>)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유유히 헤엄칠 줄 아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조니 뎁 Johnny Depp

미워할 수 없는 무정부주의자

“잭 스패로우는 수프 안에 든 마늘 한 조각과 같은 존재다. 그를 상대하려면 7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잭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의 진가는 그가 없는 곳에서 발휘된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이 표현은, 잭 스패로우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캐릭터임을 설명해준다. 명색이 한 배를 책임지는 선장인데, 1편에서부터 그는 배도 없고 선원도 없이 달랑 혼자 남은 상태다. 거기다 침몰해가는 배 돛대 위에 애처롭게 매달린 것을 보면,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지금의 잭 스패로우가 태어나게 된 데는, 물론 조니 뎁의 아이디어가 상당수 반영됐다. 그는 버트 랭커스터처럼 반듯한 해적 이미지를 원하던 디즈니의 어르신들 앞에서, “게이도 아닌 것이, 술 취한 것도 아닌 것이” 괴상망측한 해적의 몰골로 나타났다. 자신의 우상이던 키스 리처드를 모델로 삼아, 18세기의 록스타 같은 모습으로. 당시만 해도 조니 뎁은 <캐리비안의 해적>이 이처럼 거대한 프로젝트가 될 줄 몰랐다. 그저 자신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축제를 즐기는 마음으로 임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잭 스패로우 캐릭터는 조니 뎁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해줬지만, 그는 흥행이나 명성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잭 스패로우가 부조리한 세력에 반항하기보다 차라리 무시했듯, 조니 뎁은 보헤미안이요, 무정부주의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웨스 크레이븐(<나이트메어)>을 통해 B급 세계의 유희에 입문했고, 팀 버튼을 통해 발견되고 다져진 조니 뎁. 마치 21세기의 버스터 키튼을 연상시키는 그는, 자유를 찾아 세상 끝까지 떠난 잭 스패로우처럼, 아직도 즐거운 것들을 탐색하며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 잭 스패로우와 조니 뎁은 동의어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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