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The Cloud
그레고르 슈니츨러/ 독일/ 2006년/ 108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두세 가지 장르를 배배 꼬인 전선줄처럼 뒤섞어가는 장르 혼합은 다반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장르의 흐름이 이야기의 맥락을 타며 급변하거나 리듬을 타면서 경계를 그어가는 그 자체가 재미를 주는 작품은 많지 않다. 마치 세 토막의 장르를 무처럼 동강내 시미치 뚝 떼고 딱딱 이어붙인 듯한 <클라우드>는 언뜻 매끈한 할리우드영화 같다. 거침없이 장르적인 연출이지만 툭툭 떨어지는 언어와 중세 같은 현대적 건축물, 그 속을 나긋하게 누비는 사람들이 명백한 독일산이다.
처음은 밝고 명랑한 십대 학원물이다. 한나는 등교보다 늦잠 자는 게 좋고, 여자친구와의 수다도 좋지만 핸섬한 남자에게 눈이 돌아가는 평범한 소녀다. 부유한 집의 외아들 엘마와 가벼운 사랑의 암초를 헤치고 눈을 맞춘다. 그걸 키스로 확인하는 순간 ‘뜬금없이’ 요란한 사이렌이 울린다. 두 번째 장르, 암울한 재난영화의 시작이다. 프랑크푸르트 근교 핵발전소에 사고가 나 핵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풍요와 여유가 흘렀던 거리가 빠르게 패닉 상태로 빠진다. 가족단위 피난길에 한나는 엄마 대신 동생을 데리고 나서는데 지옥행렬이 따로 없다.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비극이 동생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정점을 이루는 듯한데, 이 재난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침내 재난의 회오리에 무릎 꿇은 한나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쓰러진다. 문제는 그게 산성비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 번째 장르, 슬픈 로맨스는 한나가 정신을 차리면서 시작된다. 방사능 오염으로 머리칼이 온통 빠져버린 한나의 병원으로 엘마가 찾아오고, 두 사람의 사랑은 어렵게 다시 꽃피는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