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깃털의 새> The Bird with Crystal Plumage/1970년/ 98분
올해 다리오 아르젠토 회고전에서 단 한편의 영화를 보아야 한다면, 그 영화는 당연히 <수정 깃털의 새>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아르젠토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지만 가장 완벽한 아르젠토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너무 잘 만들어서 오히려 덜 아르젠토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르젠토 영화는 적당히 어색하고 지루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수정 깃털의 새>는 날렵하고 잘 짜여졌으며 학살장면 사이의 이야기들도 꽤 재미있는 편이다. 게다가 그는 가장 훌륭한 서스펜스 장면 하나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멋지게 해치우는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당시 평론가들이 아르젠토를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해가 된다. 줄거리는 이미 위에서 다 설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탈리아인 여자친구랑 같이 사는 미국인 작가가 우연히 살인미수 현장을 목격하고 그 뒤로 젊은 여자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했는데도 <딥 레드>의 추리물은 지겨운데, <수정 깃털의 새>는 그렇지 않은가? 답은 이탈리아 호러 영화계에서 진정한 스타일리스트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스토리텔링 따위는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시절의 아르젠토는 스토리의 재미를 그처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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