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연기하고 싶었어요
2007-07-18
글 : 김민경
사진 : 오계옥
의 주인공 미원(美元)

<M>은 여성에게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은 영화다. 하지만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다른 작품처럼, <M>도 남성의 성적 환상으로 왜곡된 영화라 치부할 수 없는 영화다. 평범한 주부 사토코는 외로움 때문에 성매매에 나선다. 야쿠자는 그녀를 길들이기 위해 수치스런 자세로 외설 사진을 찍게 하고, 사토코를 어머니처럼 생각하던 이웃의 배달부 청년은 그런 그녀에게 분노해 칼끝을 들이댄다. 그런 주인공 사토코의 참혹한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연기한 것은 미스 유니버스 일본 대표 출신의 20대 신인 배우 미원(美元, Miwon)이다. 한국 혼혈로서의 정체성과 <M>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차근차근 풀어내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스 재팬과 패션모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왜 영화를 하고 싶었나요.
=25살이 됐을 때, 패션이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내가 만난 게 누구였는지 어느 쇼에 섰는지도 기억에 남지 않더군요. 아버지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무언가가 남는 것도 아니고요. 그게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M>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사토코 역을 찾지 못해 오디션이 1년째 진행 중이었어요.

-첫 영화가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모델 소속사에서도 반대가 커서 결국 소속사를 나와야 했어요. 하지만 아무 영화나 찍고 싶진 않았어요. 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감독님의 전작을 다 찾아봤고, 이분의 영화에서 알몸은 성적 흥분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을 드러내는 장치란 걸 느꼈어요.

-사토코가 목을 졸리고 칼로 위협당하는 순간 성욕을 느꼈다는 장면이 있는데요, 배우로서도 쉽게 몰입하긴 힘든 장면일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려웠죠, 그 장면은…. 나도 대본을 읽었을때 “어째서?”라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마 사토코는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100% 집중해 있는 상태를 원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몰라요. 극도로 격앙된 상태여서 몸이 공포와 성적 흥분을 혼동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연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슬펐습니다. 전 어머니가 없어서 어머니는 무조건 강한 사람이라는 동경이 있었거든요. ‘왜? 이 사람은 어머닌데,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약할까?’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어머니도 약하고 어린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감독님은 많이 도와주셨나요.
=감독님은 굉장히 심플한 분이셔서. (웃음) 잘 모르겠다고 여쭤보면 “대본에 다 써 있잖아?” 그게 다였어요. (한숨) 그러고보니 생각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울고, 돌이켜보니 정말 힘들었네요…. 그래야만 완성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감독님의 여성 캐릭터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폭력을 당하면서 쾌감을 느낀다든지요.
=(한동안 숙고) 저도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합니다. 그건 대전제예요. 그렇지만… 그래도 속박당하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만약 관계에 사랑이 있다면 폭력과 속박이 있어도 그 속에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감독님은 종종 여자를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세요. 감독님이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건 여성은 이렇다고 주장하고 싶은 게 아니라, 여성을 알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미원’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한 건 어떤 이유인가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일본인일 줄 알았는데, 모델 일을 하다 자각했어요. 모델 중엔 어머니는 이탈리아, 아버지는 프랑스인데 본인은 중국서 태어난 중국 국적자다, 이런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말을 듣는 게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이 100% 일본인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사실 선조가 한국인일 수도 몽골인일 수도 있는 거죠. 저도 정체성을 인정하기 위해 2002년부터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미원’은 일본에선 아무도 쓰지 않는 이름이라서, 다들 어디 사람이냐고 묻곤 해요.

-일본사회에서 그런 질문이 부담스럽지 않나요.
=제 어머니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서 많이 힘드셨다고 해요. 하지만 전 한국인과 일본인 양쪽 모두가 될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해요. 제 하루머니(할머니)가 대구 사람이신데, 내가 키가 170cm가 넘고, 피부가 좋고, 낯선 사람과 금방 친해지는 게 다 한국인인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거예요. 이 이름 덕분에 한국 사람들이 “저도 한국인이에요”라고 말을 걸어줘서, 한국 친구가 많이 생겨 행복해요.

-다음 작품은 결정되었나요.
=TV드라마와 프랑스영화 한편을 검토 중입니다. 아, 궁금한 게 있어요. 한국 여자인 기자님은 <M>을 어떻게 보셨나요.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불쾌하지는 않았다고 답하자) 아, 정말 다행이네요. 열심히 해서 <씨네21> 잡지에도 실릴 수 있는 배우가 되어 다시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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