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스폿 인터뷰] “어른이 되는 건 비밀이 많아지는 것”
2007-07-30
글 : 정재혁
사진 : 이혜정
<영원한 여름> <가족상속괴담>의 레스티 챙 감독

어떤 우연인지, 올 여름 대만 감독 레스티 챙의 영화 두편이 동시에 국내 극장가를 찾아왔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좋은 평을 받았던 <영원한 여름>과 장편 데뷔작 <가족상속괴담>이 그 주인공. 퀴어적인 요소를 포함한 성장 이야기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에 관한 이야기가 한 감독의 작품처럼 보이진 않지만,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분위기가 어딘가 닮아 있다. 게다가 두 작품 모두 대만에서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7월19일 <영원한 여름>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레스티 챙 감독을 만났다. 자신만의 리듬을 버리지 않고 대만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1981년생 젊은 감독이 말하는 영화란 무엇일까.

-<영원한 여름>은 원작이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영화로 구상하게 됐나.
=영화와 함께 소설이 나왔다. 영화의 각본을 쓴 쳉핑휴와 이야기를 함께 구상했고 나는 영화를, 쳉핑휴는 소설을 만들었다. 서로의 작업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은 영화와 꽤 많이 다르다. 나는 전작인 <가족상속괴담>에서도 그랬지만 등장인물이 남자 둘, 여자 하나인 경우가 많다.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의 구도보다 이야기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 만으로 26살이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의 배경은 어디인가? 주인공들이 학교 수업을 빼먹고 타이베이에 놀러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대만 동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학교는 지금 폐교가 됐는데, 운동장을 넘으면 바다가 바로 보인다. 그게 좋아서 그곳에서 촬영을 했다. 타이베이는 영화에서 동경의 공간이다. 주인공들은 도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어릴 때 타이베이에 가는 것과 어른이 된 뒤 타이베이에 가는 것은 다르다.

-주인공들의 성장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나.
=인간의 삶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어린 시절이다. 어린 시절엔 자기의 마음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않나. 좋아하면 좋아한다, 싫어하면 싫어한다고. 하지만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숨기기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하고. 친구도 어릴 때 사귀는 친구는 단순한 호감에서 시작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복잡한 목적이 개입한다. 그 중간의 시간을 담아보고 싶었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을, 그들의 시간을 섣불리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위샤우헝과 두훼이지아가 키스하려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농구 코트의 공을 보여준다.
=내 경험에 의하면 누구를 좋아했고, 누구와 키스를 하고 싶었는지는 그 결과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기억들은 그냥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다. 사람의 일은 결국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나.

-같은 맥락에서 질문하면, 카메라는 인물들을 공간을 매개해서 담는다. 축구 골대에 걸린 두훼이지아나 도서관 책장 사이의 강정싱처럼. 그 의도는 뭔가.
=영화의 1/3은 비밀이다. 내가 가장 그리고 싶었던 시절이 17살에서 19살까지였는데, 그 시간에 주인공들은 성인이 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비밀을 만든다. 그래서 인물을 정확히 바라보는 것보다 공간을 통해 담아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1981년생이라 깜짝 놀랐다. 21살 때부터 영화를 찍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전공은 영화와 전혀 관련없는 상업설계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 1학년 때 갖고 있었던 카메라와 컴퓨터를 통해서였다. 그냥 단지 영화가 좋았고, 어떻게 하다보니 지금까지 왔다. (웃음)

-<가족상속괴담>이나 <영원한 여름> 모두 대만에서 크게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영화는 보통의 대중영화와 달리 리듬에 큰 폭이 없다. 대만 관객의 정서가 궁금해지더라.
=일단 그때 나는 상업영화를 찍겠다, 예술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무엇이 상업영화고, 무엇이 예술영화인지도 몰랐다. 다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지금의 대만 관객은 할리우드영화밖에 안 본다. 그래서 흥행을 노린다면 할리우드 스타일로 찍어야 할지 모른다. 두편의 흥행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냥 더 잘할 수 있었다고 후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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