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과 타일로 이루어진 방에서 누군가가 젊은 남자를 다그치고 있다. “임무에 헌신할 준비가 돼 있는가? 임무에 헌신할 준비가 돼 있는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드는 남자는 불완전한 기억만을 간직한 전직 스파이 제이슨 본이다. 살인기계로 훈련받았지만, 그저 내버려두었다면, 다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남자. 그러나 그를 없애고자 하는 이들에게 연인을 잃은 제이슨 본은 자신이 지나가는 곳마다 남는 죽음의 흔적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근원을 찾아 고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의 어둠을 엿보고자 유럽과 인도와 북아프리카를 헤매야만 했던 3년의 세월. 그리고 마침내 제이슨 본은 어딘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영화 <본 얼티메이텀>은 기나긴 복도를 지나 굳게 닫힌 금속 손잡이를 열고 선량했던 청년이 제이슨 본으로 태어나던 순간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2002년 <본 아이덴티티>부터 남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를 전송하며, 그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추억해본다.
더이상 제이슨 본을 연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맷 데이먼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이슨 본 시리즈는 선과 악의 싸움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자 하는 제이슨 본이 그 자신과 싸우는 영화였다. 이제 그 적이 사라졌으므로 또 다른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맷 데이먼은 스스로 <굿 윌 헌팅> 다음으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시리즈를 영리한 시점에 포기한 것이다. 토막토막 끊어지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손상된 비디오테이프 같은 과거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제이슨 본은 그저 완벽하게 훈련받은 킬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질문만으로 영화 세편을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여기에 도덕이라는 문제를 더했다. “제이슨 본이 고뇌하는 까닭은 단지 기억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킬러인지, 혹은 킬러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공격의 기미를 감지하는 순간 뛰쳐나오는 살인의 본능. 제이슨 본은 무의식적으로 치명적인 급소를 짚어내고 정확하게 총구를 겨누는 자신의 육체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살인을 즐긴 것일까, 살인을 지시하는 명령에 복종한 것뿐일까. 제이슨 본이 정체성을 찾는 순간까지 그 답은 유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제이슨 본 시리즈는 기억 잃은 킬러가 등장하는 <롱키스 굿나잇> 같은 영화와는 다른, 좀더 모호하고 복잡한 긴장감을 획득한다. 제이슨 본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반드시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답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혐오하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스파이
이름이 비슷한 탓인지 제이슨 본은 코드네임 007로 활동하는 영국 스파이 제임스 본드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폴 그린그래스는 완벽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그들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제임스 본드는 첨단 테크놀로지에 의지하지만 제이슨 본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활용한다. 제이슨 본은 현실 세계의 인물인 것이다.” 말하자면 제이슨 본은 적수공권 스파이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제이슨 본은 여러 국가 화폐로 이루어진 돈다발과 여권 다섯개를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에서 찾아왔지만, 첨단장치로 무장한 자동차도 없고, 누르기만 하면 10초 뒤에 폭발하는 볼펜처럼 신기한 무기도 없다. 무엇보다 그에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본드걸이 없다.
그 때문에 제이슨 본은 언제나 재빠른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뛰어가면서도 무슨 물건이든 챙겨넣는다. 모스크바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슈퍼마켓 판매대에서 보드카와 지도를 챙겨온 것이 그런 경우다. 보드카로는 총상을 소독하고 지도로는 갈 길을 찾는다. 이동수단도 주로 되는 대로 도로에서 훔친 스쿠터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편. 제이슨 본 팬사이트 중 하나는 이 영리하고 알뜰한 스파이를 위해 ‘제이슨 본의 즉석무기 베스트3’를 뽑기도 했다. 1위는 토스터와 잡지. 전원을 연결한 토스터에 잡지를 꽂고 가스 밸브를 열어두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날릴 수 있다. 2위는 본인의 에너지 손실을 줄이면서도 적에 대한 타격을 최대화했던 하드커버 책이고, 3위는 뜻밖에도 다소 단순한 전기코드였다. 제이슨 본은 이 전기코드로 상대의 목을 감아 살해한다.
철저한 현장 위주의 촬영
제이슨 본이 한국에서 사주를 보았다면 역마살이 끼었다는 점괘를 얻었을 것이다. <본 아이덴티티>가 시작하자마자 이틀 사이에 마르세유→취리히→파리 여정을 소화했던 그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1편과 2편을 더한 것보다 많은 거리를 이동했다.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차와 철도를 공중에서 촬영한 장면은 거의 매번 등장해 기시감을 불러일으킬 정도. 실제 촬영지는 베를린이었던 모스크바와 파리, 마드리드, 모로코, 뉴욕 등이 <본 얼티메이텀>에 등장한다.
눈에 띄는 도시는 이국적인 모로코의 탕헤르다. 맷 데이먼은 좁고 구불구불한 탕헤르 골목 지붕을 뛰어가는 추격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시속 100마일은 되는 속도로 지붕을 달리는 일은 정말 제이슨 본다운 행동이었다. 그 장면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진짜 장소에서 찍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멋지지 않은가. 영화 스탭과 배우들이 떼로 모여서 ‘여기서 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한 짓은 뭘까?’라고 의논하는 것 말이다.” 영화에서 니키가 CIA 저격수를 기다리는 카페는 국외 추방당한 학자들이 모이는 것으로 유명한 ‘카페 드 패리스’다.
로케이션을 애용하고 구태여 군중을 통제하지 않는 것은 제이슨 본의 습성이자 폴 그린그래스의 장기이기도 하다. <블러디 선데이> <본 슈프리머시>에서 능란하게 대규모 군중신을 연출했던 그린그래스는 이번에도 파리 북역과 런던 워털루역처럼 북적대는 장소에서 과감한 촬영을 시도했다. 워털루역은 하루 유동 인구가 38만명에 달하는 장소. 그린그래스는 이곳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지 않은 채 20, 30명의 스탭들과 역사 구석구석을 누비며 촬영을 진행했다. 그 때문에 <본 얼티메이텀>을 유심히 지켜보면 카메라를 흘깃거리는 행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현실 묘사
제이슨 본은 로버트 러들럼이 1980년 출간한 소설 <본 아이덴티티>의 주인공이다. TV시리즈로 각색돼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방영됐던 <본 아이덴티티> 원작은 냉전시대가 배경인 스릴러 소설. 이 소설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몸에는 마이크로 필름이 이식된 채로 깨어난 제이슨 본은 자칼이라는 테러리스트에게 쫓기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자 험난한 길을 걸어간다. 이 시리즈는 90년까지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영화로 만들어진 제이슨 본 시리즈는 기억을 잃은 스파이라는 캐릭터와 마리를 비롯한 인물의 이름, 제목 말고는 원작과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원작자의 의도와 통하는 점이기도 하다. 로버트 러들럼은 2001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보지 못했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 에이전트였던 헨리 모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냉전은 러들럼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다국적 기업과 정부가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 쓰여진 제이슨 본 시리즈는 냉전은 끝났지만 평화는 멀기만 한 현대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제이슨 본은 미국 정부에 거센 항의를 표하는 제3세계 정치지도자 암살을 지시받고,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부패한 러시아 사업가와 CIA 간부의 결탁을 폭로한다. <본 얼티메이텀>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CIA의 음모를 ‘블랙 브라이어’라는 총체로 만들어 내보인다. CIA는 그동안 타국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암살과 테러, 고문, 조작을 행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제이슨 본 영화가 개봉됐던 당대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재판도 없이 살해된 미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를 향해 어떤 몸짓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맷 데이먼의 설명이다.
인정 앞에 흔들리는 킬러
모스크바에서 킬러를 만난 제이슨 본은 연인 마리를 살해한 그를 차마 죽이지 못한다. “그녀가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살인을 멈추고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폭력만을 행사하고자 한다. 폴 그린그래스가 말한 것처럼 제이슨 본은 “진실한 마음과 도덕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를 위기에 몰아넣는 요인 또한 도덕성이다. 그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암살 대상자를 죽이지 못해 총상을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들고, 우연히 암살 대상자와 같이 있었기에 죽여야만 했던 여인에게, 기억을 잃은 다음에조차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제이슨 본의 매력이다. 그린그래스는 “제이슨 본은 마리를 만나고 시리즈를 거듭해가며 변화한다. 그가, 다시 말해 맷 데이먼이 온유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7년에 걸쳐 제이슨 본을 연기해온 맷 데이먼도 마찬가지다. “나는 제이슨 본의 지성과 사려깊음을 좋아한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점은 그가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첩혈쌍웅> <리플레이스먼트 킬러>가 그랬듯이 인정 앞에 흔들리는 킬러란 너무도 매력적인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