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8 기대작] 김태식 감독의 <빌어먹을 바캉스>
2007-09-13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애인의 아내의 집에서 3박4일을

“나는 상업영화라고 만들었는데 다들 예술영화라고 한다. 물론 영진위 예술영화 지원을 받긴 했지만.” 문제의 데뷔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 대한 김태식 감독의 이야기 중 절반 이상을 일종의 ‘너스레’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에 담긴 진심까지 외면하기는 힘들다. 그 안에는 갖은 어려움을 온몸으로 돌파하며 만든 자신의 영화를 냉담하게 받아들인 관객에 대한 섭섭함도 포함됐겠지만, 궁극에는 충무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주류 영화시장을 간파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면서 착수한 <빌어먹을 바캉스>를 MK픽처스와 공동제작하게 된 것도 좀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김태식 감독의 소망 때문이다.

<빌어먹을 바캉스>의 주인공은 희래라는 여성. 서른이라는 나이를 밟고 있는 그녀에게는 오래된 애인이 있다. 그녀는 애인과 함께 떠나기로 한 바캉스 생각에 들떠 있는 상태. 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그건 애인에게 오래된 아내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애인은 가족과 여행을 떠나고, 외톨이가 된 희래는 남자와 그 가족이 떠난 빈집에 들어가게 된다. <빌어먹을 바캉스>는 그녀가 그 집에서 보내게 되는 3박4일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이 영화를 구상한 것은 10년 전. 박철수 감독의 <가족시네마>에서 부감독으로 일하던 시절, 그는 한국, 홍콩, 일본 세 나라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탈에 관한 이야기를 데뷔작으로 구상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비슷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보니 많은 이들이 그 속에서 일탈을 희망하는데, 이런 주제로 세 나라에서 세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엮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이와이 순지 감독이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10년 만에 이 구상을 다시 집어든 김태식 감독은 당시 한국편으로 설정했던 이야기를 확장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특성이 다른 2명의 시나리오작가에게 동시에 작업을 맡기고 있어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 아직은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나는 돌려 말하는 게 서툴고 솔직한 게 오히려 편하다. 스트레이트한 쪽이 가장 쉽고 뜻을 오해없이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 같다”는 김태식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춰줄 것이라는 점이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바람 피운 아내를 둔 소시민 남성의 내면(뿐 아니라 겉모습까지)을 훤하게 드러냈다면, 이번엔 모호한 욕망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여성의 속내를 숨김없이 보여줄 듯하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물론,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심재명 MK픽처스 이사의 손길은 그 ‘노출’의 수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희래의 일탈은 통쾌하게 성공할까. “10년 전 일탈을 다루고자 할 때는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면 뭔가 새로운 게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별 새로울 게 없더라”는 감독의 말은 중요한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Key Point: 블랙코미디, 그리고 리듬

<빌어먹을 바캉스>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와 마찬가지로 블랙코미디에 속하는 영화다. 하지만 인간사의 부조리함에 기반하는 블랙코미디는 한국 영화계가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장벽이기도 하다. “외국 영화제의 관객은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보면서 잘 웃어주던데, 한국에서 상영할 때는 객석이 심각한 분위기였다”는 김태식 감독은 한국 관객의 특성을 뼈저리게 경험해놓고서도 왜 다시 같은 장르로 도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사람 사는 게 코미디 아닌가. 내게는 이런 쪽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서늘하면서 어두운 웃음에 익숙지 않은 한국 관객을 이미 접해본 경험은 그의 블랙코미디를 좀더 발전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때 관객은 내가 예상치 않았던 장면에 웃기도 했고 그 정반대도 있었는데, 그동안의 고민을 통해 이번에는 한국의 블랙코미디가 무엇인지 밝혀보고 싶다.” 또 하나 그가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리듬이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독특한 편집리듬과 계속 반복되는 집시풍 음악으로 영화에 묘한 리듬감을 부여했던 그는 <빌어먹을 바캉스>에서도 절묘한 호흡을 부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김태식 감독은 “얼마 전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들었다”는 가느다란 실마리를 던져준다.

제작 필름라인, MK픽처스
촬영예정 2008년 7월
개봉예정 2008년 중
예상제작비 20억원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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