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현대는 또 다른 중세 <무지의 시대>
2007-10-06
글 : 문석

무지의 시대 The Age Of Ignorance
드니 아르캉 | 2006 | 115분 | 35mm | 캐나다

줄곧 냉소적이고 신랄한 태도로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해온 캐나다의 드니 아르캉 감독은 <무지의 시대>를 통해 “현대는 또 다른 중세”라고 일컫는다. 현대세계 곳곳에 퍼진 ‘중세의 암흑’을 특유의 블랙 코미디로 폭로하는 <무지의 시대>는 괴바이러스에 시달리고 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퀘벡 주 정부의 공무원 장 마르크 르블랑은 비대하고 관료적인 주 정부에서 시민들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실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복잡하고 권위적인 법 조항은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전혀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그의 자리는 없다. 잘 나가는 부동산업자인 부인은 그를 무시하기 일쑤며, 아이팟과 휴대폰을 끼고 사는 두 딸은 그를 아예 투명인간 취급한다. 그때마다 그는 쭉쭉빵빵 미녀들과 사랑을 나누는 백일몽을 꾸면서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탈출한다. 꿈 속에서 그는 특급 작가도 되고, 연출가도 되며, 사무라이가 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는 대단한 미모의 여성들의 육탄공세를 받는다. 물론 잠깐의 꿈이 깨고나면 다시 팍팍한 현실이 그의 숨통을 조인다. 그러던 그는 한 여인에 이끌려 중세 풍의 기사 대결을 하는 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삶 또한 큰 파동을 타게 된다.

올해 칸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한 <무지의 시대>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한 웃음 또한 잊지 않는다. 특히 장 마르크의 ‘환상의 여인’들이 동시에 등장해 티격태격 다투다가 다이앤 크루거가 “왜 나는 이런 루저들의 판타지에만 등장하는 거야?”라며 푸념하는 장면은 그중에도 압권이다. <무지의 시대>는 영화 안과 밖을 허무는 유머에 폭소를 터뜨리게 하면서도 삶의 진한 슬픔을 전하는 성숙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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