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걸 잃어본 적 있어?” <백야>의 남자 주인공은 혼잣말을 하듯 옆에 있던 이에게 묻는다. 야니크 요한센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은 모두 소중한 걸 지키지 못해, 혹은 소유하지 못해 방황한다. 단편 <오프 트랙>에서 여자는 짝사랑하는 경찰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장편 <암흑>에서 남자는 여동생을 지켜줄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녀의 죽음을 밝혀내려 한다. 이는 요한센 감독 개인의 과거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여동생의 자살을 계기로 가족이 흩어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 토마스 옌센이 <백야>의 스크립트를 보여주었을 때, 요한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백야>는 용서를 비는 일과 용서하는 일,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직 모든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내며 아픈 마음을 달랠 뿐이다.
라르스 브리그만은 그런 그의 페르소나다. 1997년작 <조용한 죽음>부터 브리그만은 야니크 요한센의 모든 영화를 함께 해왔다. 근 10년 동안 한 감독의 작품에 참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감독님이 나에게 <백야>의 시나리오를 건넸을 때,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했었죠. 그런데도 감독님은 절 1년 반 동안 기다렸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영화 속 덴마크의 어둠과 브리그만이 그토록 잘 어울렸던 건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페르소나'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감독은 “브리그만은 내가 아는 덴마크 배우 중 가장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화답했다. 실제로 브리그만은 덴마크의 <폴리스 1>이라는 인기 TV시리즈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다. 작품이 좋으면 연극무대에 서기도 한다고. “어쨌든, 우리는 작품을 함께 만들며 같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전보다 더 좋은 배우가 됐고, 감독님은 더 멋진 감독이 됐지요.” 이들의 다음 합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