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꿈의 미로를 여행하는 관객을 위한 안내서
2007-10-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꿈의 미로 혹은 기억의 서커스, <M>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선을 보였다. <형사 Duelist>에 이은 영화와 사랑에 대한 이명세식 꿈꾸기다. 전작보다 더 현란한 시청각적 요소의 실험이 넘실대고 있어 때로 이 꿈과 기억의 한복판에서 관객은 망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꿈에도 구조가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럼 우리에게도 <M>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해몽도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 제작과정에서 두드러진 다섯 가지 항목으로 <M>을 풀이해본다.

1. 스토리 또는 플롯

<M>의 이야기 작법은 미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야기가 복잡한 게 아니라 단순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현란하다. 남녀의 애달픈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선형적인 단계로 설명하길 거부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감정을 열어놓고 보아야” 하는 영화다. 한권의 인기 소설을 발표한 젊은 작가 한민우(강동원)는 누군가가 자신을 항상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병원에도 가보지만 의사는 단지 망상으로 치부한다. 과연 그럴까. 민우는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의 주인이 첫사랑, 그러나 지금은 유령이 되어 있는 미미(이연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잘 설명되지 않지만 이제 민우는 꿈인지 생시인지 혹은 그가 지금 쓰려고 고민하는 소설의 구상인지 알 수 없는 그 어디서 자꾸 미미를 마주친다. 현실 속 민우의 약혼녀 은혜(공효진)는 민우가 이상해져 있다는 걸 느끼지만 경계의 무너짐은 현실에서도 곧 일어난다.

꿈과 기억에 빠진 인물이 주인공이다 보니 그의 혼동을 보고 있는 우리 역시 지금 어디쯤 머무르고 있는 건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건 영화가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대신 몇 가지 장면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자신이 기억의 환영에 빠져 있다는 걸 느끼는 민우는 영화에서 미미를 만나 처음 대화했던 루팡 바를 거듭 다시 찾게 되는데 이 장면은 영화 내내 똑같은 숏으로 거듭 반복되고 있다. 혹은 약혼녀 은혜가 민우에게 커피를 갖다주는 장면에서 시간의 정황은 어지럽게 뒤죽박죽되며 현실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민우와 그의 다음 소설 집필을 종용하는 편집장의 술자리에서 오고간 대사와 행동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도 주시할 것.

2. 연기 또는 캐릭터

단순한 스토리에 복잡한 플롯이라는 결정 안에서 배우들은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 걸까. 강동원의 팬들은 <M>을 어떤 영화라고 생각할까. <형사…>처럼 그의 미모가 신비함으로만 싸여 있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고, 강동원이 변칙적인 연기를 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이라면 기뻐할지 모른다. 감독은 주인공 강동원을 신비의 보자기로 싸는 대신 정신분열에 가까운 대사와 몸짓을 하며 돌아다니도록 만든다. 민우는 분위기있는 미남일 뿐 아니라 희극적이면서도 괴팍한 몸동작을 지닌 광대가 되곤 한다. 마치 <남자는 괴로워>의 남자들이 모두 한민우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같이 그는 다중적이다. 반면 미미는? 혹은 미미를 연기하는 이연희는 어때야 했을까. 미미 혹은 이연희는 너무나 지고지순한 나머지 도리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이명세 동네의 첫사랑의 타입을 반복하고 있다. 의상도 영화 내내 한벌이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이연희는 저승사자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서 혼자 버둥거리던 장면을 꼽기도 한다. 말하자면, 김혜수, 최진실이 각각 <첫사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보여줬던, 아름답고 착하지만 덜렁거리고 푼수끼마저 있는 첫사랑의 순결한 바로 그 여인상이다. 혹은 <형사…>의 남순(하지원)과 제대로 겹친다.

공효진이 맡은 은혜가 가장 정상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분열의 강을 건너다니고 있을 때 혼자 정상인의 리듬을 지켜야 하는 게 쉽기만 했을까. 은혜 역은 공효진의 선천적인 연기력 덕에 민우와 미미라는 강한 역할 사이에서도 고풍스럽게 살아남고 있다.

3. 이미지 또는 사운드 또는 음악

“이건 유령의 이야기다. 또 도시적인 어둠과 빛이 있어야 했다. 안개도 있어야 했고. 도시를 정면으로 보여주지 않고 부분적인 여러 각도로 보여줘 완성하고자 했다. 색감으로는 그린톤과 블루톤의 느낌을 많이 썼지만 같은 블루라도 다르게 느껴지도록 했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말이다. 유령과의 사랑 이야기이므로 전체적으로 기이한 느낌이 필요했고 도시의 차가운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미스터리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말로 들린다. <M>의 전체적인 비주얼 이미지는 강렬한 색감과 명암의 대비가 뒤섞이면서 영화 속 도시를 음울하고 기이하게 혹은 근미래이거나 이 세상에는 없는 곳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런데 <M>에서 <형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실험되고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건 사운드다. “특히 초반부는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러니까 컷 변화나 신 변화가 효과음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앞장면에서 뒷장면으로 매미 소리가 선행된다거나 자동차 경적이 선행되는 식으로 말이다 미미와의 추억은 매미 소리, 도로는 경적음, 이런 식이었다.” 박준오 사운드 디자이너의 말이다. 파편적으로 흐르는 장면의 연결에 사운드가 때때로 통일성을 심어준 셈이다. 한숏 안에서도 소리의 변화가 여러 차례 일어나고, 5.1서라운드 채널로 눈앞에서 뒤통수를 돌아 다시 앞까지 들려오기도 한다. 특히 일식집에서 만난 출판사 편집장이 에어컨 바람이 싫다며 선풍기를 틀어놓고 수다를 떨어대는 장면에서 그의 목소리는 선풍기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들리게 된다. 어릴 적 장난 삼아 선풍기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할 때 나던 바로 그런 소리로 대사가 들리는 것이다. 박준오 사운드 디자이너는 “선풍기 앞에서 직접 해보기도 했는데 결국 사운드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했다. 이 영화가 100프로 후시녹음이었기에 아마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시해야 할 또 하나가 음악이다. 조성우 음악감독은 “<형사…>에서는 에피소드별로 다른 느낌의 음악들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건 하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 하나의 꿈을 꾼 것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후반부 “과거에 미미가 죽는 장면에 나오는 그 음악이 결과적으로 가장 감정을 상승시키는 지점”이라며 음악의 정점을 일러주기도 한다.

4. CG 또는 세트

<M>의 세트 비율은 알려진 대로 90%가 넘는다. 연출자의 머릿속에 있는 공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혹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따로 프로덕션디자이너를 두지 않고 연출자 본인이 직접 미술과 세트에 대한 부분을 지휘했다. 민우의 아파트, 도심 거리, 루팡 바 등 독특하게 설계된 어느 한곳이라도 세트에서 태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세트 촬영은 이 영화의 성격에 부합하는 점이 많았다.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이점을 활용하여 공간감을 확장하거나 연장할 수 있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일식집 장면의 경우 “거의 원신 원컷을 기본으로 해서 촬영하되 편집에서 약간 자른 것이다. 배우의 액팅과 동선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그 장면은 컷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알 텐데, 이 공간을 묘하게 만들고 싶어서 카메라는 가만히 놔두고 벽을 움직임으로써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부분이 있다.”(홍경표 촬영감독) 세트의 인공 벽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어떤 공간과 느낌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M>의 경우, 세트 촬영이 많다는 건 그만큼 빈 곳이 늘어나고 그걸 채워야 할 CG의 역할이 많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M>은 CG의 중요도가 높은 영화다. CG를 맡은 모팩의 장성호 대표는 “전체 컷이 아마 800∼900컷 정도 될 텐데, 그중에서 3분의 2 이상인 517컷에 CG가 사용됐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작비 절감용 CG”인 경우도 많았다. 루팡 바 골목 어귀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들, 파이프,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몇개의 합판과 두어개의 에어컨 실외기만 놓여 있던 세트장을 CG로 채워 분위기를 살린 작은 예에 불과하다. 어려웠던 건 거리장면들이었는데, “세트가 부분적인데다 카메라 워킹도 많아, 심도나 공간감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민우와 미미가 만나는 도심 골목길 등을 꼽는다. 특히 가장 애를 먹은 건 민우와 미미가 첫사랑의 추억으로 돌아가는 그 옛날 미용실 앞 골목길. “이 장면은 극히 일부만 세트였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처럼 그림 같은 풍경이면 된다고 했던 건데, 리얼한 톤으로 계속 수정을 요구하니까 어려워지더라. (웃음)” 민우와 미미의 첫사랑이 바로 그 골목에서 피어난다.

5. 레퍼런스 또는 콜라주

“누가 그러더라. 이명세 감독은 성냥갑에 콘티를 그려놓고 자기 혼자 몰래 본다고. 진짜 그러나 싶었다.” 촬영현장에서 공효진은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외골수적인 예술가 타입으로 누군가가 이명세 감독을 묘사한 것이 그런 재미있는 풍문으로 번진 것이리라. 하지만 <M>에 쓰인 인용과 참조의 경우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폐쇄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상호적이다. <M>은 많은 참조물 위에서 태어난 영화다. 감독은 촬영 전이나 촬영 중에는 그 이유에 대해 단지 영감을 얻는 정도라고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좀더 구체적으로 쓰였다. 말하자면, <M>은 참조물들의 콜라주이기도 하다. 그걸 다 알수는 없겠지만, 우선 감독이 강조한 “빛나는 어둠”이라는 표현은 클림트의 회화를 보며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정말 히치콕에게서 어떤 계시를 받은 것인지, 히치콕 영화의 장면에서 종종 화면 구성을 가져온다. 중요한 두 장면, 미미가 사고로 생명을 잃는 부분에서는 <싸이코>의 욕실장면처럼, 민우가 모든 꿈을 깨고 눈을 뜨는 부분에서는 <오명>의 한 장면처럼 잡았다. 안과 밖, 나와 너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일식집의 데자뷰 장면은 우선 마그리트가 생각나게 할 뿐 아니라 더 직접적으로는 듀안 마이클의 연속 사진 <사물의 기이함>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여기에 전체적으로는 이명세 감독 본인의 몇몇 과거 영화의 실루엣까지 겹쳐 있으니, 아마도 이 영화가 종합적이 되기를 바랐다는 감독의 표현은 이런 점들을 포괄하여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그건 성냥갑 콘티에서 온 게 아니라 그 어느 미술과 영화와 사진과의 교감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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