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액션영화 명장면] 액션 패러다임의 전환점
2007-10-25
글 : 오정연
<매트릭스>

세기말. 액션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온갖 철학과 신화를 끌어들여 사이버스페이스를 설명하는 1999년작 <매트릭스>의 액션은 그 화법보다 장황하고 강렬했다. 근 십년 안에 이처럼 강력한 변화를 몰고 온 액션영화는 짐작건대 <매트릭스> 외에 전무할 것이다. 규모와 발상,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달랐던 <매트릭스>와 그로부터 설명할 수 있는 할리우드 액션물의 어떤 변화에 대해 살펴본다.

홍콩 액션

리안보다도 타란티노보다도 워쇼스키 형제가 먼저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 쿵후영화의 오랜 팬이었다는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원화평을 불러들였다. 스턴트와 대역에 익숙한 벽안의 배우들은 자그마한 고수에게 속성 코스로 무술을 사사받았고, 원화평 역시 와이어 액션과 관련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미국 내에서는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던 쿵후가 시리즈 전체의 액션을 아울렀다. 주로 즉흥적으로 액션을 안무하고 액션신의 연출은 무술감독에게 일임하는 홍콩식 시스템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한 워쇼스키 형제의 역량도 중요했다. 감독들이 생각하는 액션을 설명하면 원화평이 이를 시연해 보이고, 그렇게 결정된 액션을 원화평이 다시 설계하면 그에 맞는 콘티를 감독들이 확정하는 식이다. 키아누 리브스와 휴고 위빙이 선보이는 쿵후 동작이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영화의 그것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단지 신체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앵글과 사이즈, 편집, 무엇보다도 사운드의 활용 방식 등을 모두 변형하여 <매트릭스>의 세계에 맞도록 조율한 워쇼스키 형제는 그대로 흉내내는(듯 보이는) 쾌감에 열중한 타란티노의 그것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불릿 타임

<매트릭스> 시리즈가 세상에 내놓은 단 하나의 발명품을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불릿 타임이 아닐까. 시시콜콜한 국내 CF 화면에도 일상적으로 등장한 끝에 이제는 오히려 사용을 꺼리게 된, 쉽게 말하면 슬로모션으로 보여지는 액션의 주변을 360도 회전하듯 촬영된 그 이미지 말이다. 많은 영화가 그에 매혹됐고, <스워드피쉬>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의 오프닝. 경찰차가 뒤집어지고, 반경 몇 미터 안 건물의 모든 유리창이 산산조각나고,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360도 훑으면서 보여진다. 그러나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는 거창한 모방은 싱거운 해프닝으로 끝나게 마련. 시간과 공간을 디지털로 분절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매트릭스> 자신의 철학이 있었기에 이 새로운 기술은 유의미했다는 얘기다. 또한 워쇼스키 형제는 준비단계에서 항상 그림을 그려서 개별 스탭에게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고, 끝내 이를 촬영할 수 있는 방안을 오랜 기간 함께 고민했다고. 이후 촬영감독 빌 포프는 <스파이더 맨2> 현장에서 월스트리트 빌딩 옥상에 설치된 크레인에 카메라를 매다는 등의 시도를 거쳐 한결 매력적인 고공 활강을 완성한다.

역주행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매트릭스2>의 광고문구에 가장 어울리는 액션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키메이커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고속도로 카체이싱 아니었을까. 1.5마일 거리에 16피트 높이의 담이 둘러쳐진 고속도로를 직접 제작한 뒤 몇달에 걸쳐서 촬영했다는 14분에 달하는 긴 액션이 기어를 바꾸는 순간은 트리니티가 키메이커를 오토바이 뒤에 태운 채 역주행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그 이전에 그러한 역주행 체이싱이 전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모든 사람들은 역주행에 관한 한 <매트릭스2>를 이야기했다. 나의 속도와 마주오는 속도가 더해진 스릴은 최고치에 달했고, 질주하는 트럭 밑까지 넘나드는 카메라의 움직임 등 명백히 CG임이 분명한 장면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시지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달리고 전복되는 자동차의 모습 정도는 되도록 아날로그로 완성하려 했다면, 일상적인 화면조차 CG로 그려낼 수 있는 숱한 SF 속 체이싱은 경쟁적으로 속도를 올려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다 건너 한국의 액션영화(<썸> <야수> 등)에서도 간간이 역주행 체이싱이 등장하는 수준이다. 물론 CG는 최소화한 채 몸으로 때우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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