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이 각종 장애물을 뛰어넘는 광경을 목도하는 쾌감은 상당하다. 액션영화는 그러한 진기명기를 이야기와 함께 관람하는 일종의 토대다. 홍콩 액션물의 두 갈래 중 한축을 담당한 이소룡과 성룡은 촬영기술과 스턴트의 눈속임으로는 불가능한 실연(實演)의 스펙터클을 선보였다. 이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각종 소란을 일으키며 복잡한 장애물 사이로 이어지는 추격전, 그리고 갖가지 합을 주고받는 격투. 가라테와 쿵후를 익힌 백인 액션배우의 계보를 통해 후자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전자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서구영화에 편입되는데, 그 중심은 뤽 베송이다. <택시>(1998) 이후 저렴한 액션영화 제작에 몰두했던 그는 맨몸으로 도심 속 장애물을 건너뛰며 질주하는 신종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프리러닝)를 소재로 <야마카시>의 시나리오를 쓴다. 빠르고 유연한 움직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액션의 사업적 가능성을 점친 그는 파쿠르의 창안자와 무술감독을 동시에 주연배우로 발탁한다. <13구역>(2004)은 성룡의 두 가지 장점을 분리한 두 사람이 각자의 장기를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시장통의 온갖 잡동사니를 활용한 성룡식 액션을 충실하게, 그러나 한결 파워풀하게 이어받은 <옹박>의 총제작자로 뤽 베송이 나선 지 1년 만이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의 시선을 독점하는 것은 범죄의 소굴에서 마약밀매단에 쫓기는 레이토(다비드 벨)의 질주다. 간신히 몸이 빠져나갈 만한 창문으로 뛰어들고, 까마득한 옥상에서 건너편 건물로 몸을 날리고, 빙빙 도는 계단을 몇 발자국에 내려가고, 손가락의 힘만으로 가는 기둥을 기어올라간다. 마주 달려오는 적의 공격도 튕겨져나가는 듯한 힘의 반동으로 훌쩍 뛰어넘는데, 먼 도약과 가까운 도약이 일정하게 반복·변주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리듬감과 속도에 흥이 절로 난다. 그러나 내내 그처럼 뛰어다닐 수야 없는 노릇이다. 날렵한 몸놀림의 역치가 최고조에 이를 무렵, 장면은 전환되고 두팔과 두 다리, 순발력으로 적들을 제압하는 열혈 경찰 다미엔(시릴 라파엘리)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그는 이소룡과 성룡과 이연걸처럼 몸을 눕혀 주먹을 피하고, 테이블 사이로 공중제비를 돌아 현란한 발차기를 날린다. 이들은 각자가 등장하는 시퀀스에 자신의 (무술) 동료들을 적수로 동원했다. 벨과 라파엘리가 어쩔 수 없는 한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이들은 러닝타임 내내 한편이 되어 거대한 적들을 응징한다. <13구역>의 줄거리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들의 액션은 한 페이지의 문장으로도 불여일견이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란, 이들의 묘기를 극대화할 만한 상황을 이어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별다른 연출력이 필요없는 영화로 데뷔전을 치른 촬영감독 출신의 감독은 두 사람의 빠른 액션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 위해 고속촬영을 상시화했다. 이들의 배경은 남다르고 경력은 화려하다. 가라테와 우슈에 능한 라파엘리는 스턴트맨이나 무술감독으로 <택시> <트랜스포터> <키스 오브 드래곤>의 액션을 직조하기 전 서커스 학교에서 몸을 단련한 바 있다. 프랑스군 소속 소방대의 숙련된 구조대원인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벨은 15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응급조치 국가자격증과 체조코치 자격증을 딴 뒤 소방대에 합류하지만 손목 부상으로 곧 그만둔다. 인도에서 쿵후 유단자가 된 그는 “물리학이 지배하는 세계의 자연법칙”을 전장 속 군인의 움직임에 적용한 조지 허버트 장군의 가르침을 계승한 무술 정신, 파쿠르를 전파한다. 그에 따르면 루소의 ‘고결한 야인’ 개념을 토대로 하는 파쿠르는 무술 그 자체라기보다는 무술 정신이라고 한다. 너무 장황한가? 말로 옮기면 허황되게 느껴지는 무술의 철학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벨에게서 파쿠르를 사사받은 라파엘리는 <다이하드4.0>에서 브루스 윌리스를 끝까지 괴롭히는 적수로 볼거리가 되어줬고, 파쿠르의 고수는 <007 카지노 로얄> 오프닝 속 인상적인 추격대상으로 발탁되어 신명나는 질주를 선보였다. 인간의 맨몸이 선보일 수 있는 극한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할리우드영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몸놀림에 러브콜을 보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