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개봉하고서 갑자기 <색, 계>에 홀렸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각각 애니 프루와 장아이링,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두 여류작가의 원작 소설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욕망을 뜻하는 색(色)과 신중을 뜻하는 계(戒)가 연결된 <색, 계>라는 제목은 표면적으로는 사랑과 섹스를 뜻한다. 그렇게 <색, 계>는 계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침울한 공기 속에서 색에 탐닉했던 두 주인공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홍콩으로 간 왕치아즈(탕웨이)는 대학교 연극부에 가입한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급진파 광위민(왕리홍)을 흠모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가 주도하는 항일단체에 몸담게 된다. 그들은 친일파의 핵심인물인 이(양조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왕치아즈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그에게 접근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상대를 신중하게 경계했던 두 사람은 곧장 사랑의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든다. 왕치아즈는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고, 언제나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이는 왕치아즈 또한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라 의심하면서도 그 매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마치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랑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질 것을 알지만 상대를 향한 손길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2차대전의 항일운동 시기, 홍콩과 상하이를 잇는 이야기 속에서 그가 <와호장룡>(2000) 이후 다시 중국어영화로 돌아온 것 같지만 리안 감독은 욕망을 둘러싼 보편적 감성을 이야기한다. 157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대의 서사에 눌리지 않고 그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리안 감독의 솜씨는 역시 놀랍다.
처음으로 관능에 취한 리안 감독
<색, 계>를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영화는 바로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다. 시대와 배경이 조금은 다르지만(<화양연화>는 1960년대의 홍콩) 양조위라는 공통된 주인공에다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인물들의 모습이 꽉 막힌 시대의 공기와 더불어 묘한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색, 계>가 인물들의 관능과 격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반면 왕가위는 양조위와 장만옥의 정사신을 실제로 촬영했음에도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모두 덜어냈다는 점이다. 왕가위는 그저 택시 안에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둘이 밤을 함께 보낼 것이란 암시 정도만 남겼다. 당시 왕가위는 인터뷰를 통해 “어느 순간 갑자기 둘이 정사를 나누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은근한 시대였던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며 “막상 촬영을 끝내고 보니 굳이 그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양연화>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숨기는가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색, 계>는 바로 그 반대 지점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화양연화>의 주 선생(양조위)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로 가서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듯 영원히 봉인하고자 했다면, <색, 계>의 이 선생은 매번 왕치아즈와의 만남이 마치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격정적인 기분으로 색에 취한다. 리안 감독은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걸 넘어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지켜본다. 그러니까 리안 감독의 영화들 중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이기도 한 <색, 계>는 감정을 어떻게 극도로 표현할 것인가에 관한 영화다. 그래서 무엇보다 <색, 계>는 미국에서 NC-17등급, 중국에서 30분가량 삭제되어야만 개봉될 수 있었던 정사신의 수위에 가장 큰 관심이 모아졌다. 11일 동안 촬영된 이 정사장면은 리안 감독과 배우들, 촬영, 조명, 음향감독 등 소수의 인원들만이 참여하여 진행됐으며 감독과 두 배우는 동작들 하나하나에 담긴 동기와 의미, 감정 등을 새겨갔다.
그런데 그 감정의 묘사는 연극성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묘한 흐름을 만든다. 거기에는 리안 감독의 자전적인 체험이 녹아 있다. 과거 1970년대 대만 타이베이의 예술아카데미를 다니던 그는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자신의 몸을 떠나지 않던 어떤 격렬한 에너지에 전율한 적이 있다. 삶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연기, 혹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연기와 어떻게 철저히 구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장아이링의 원작도 왕치아즈가 무대 위에서 공연한 직후의 감정을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폭풍과도 같은 격렬함’이라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색, 계>는 그 폭풍과도 같은 격렬함을 체험한 아마추어 연기자 왕치아즈가 그보다 더 큰 무대, 그리고 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을 만나 자신의 연기를 꽃피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색, 계>는 단지 항일운동가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적과의 동침에 빠진 여자의 고뇌를 그리는 데서 더 나아간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연기일 뿐’이라는 연기자로서의 자존심, 그러니까 자신의 연기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이성이 어느덧 서로의 영혼까지 탐하려는 듯한 색의 본능으로 화하게 된 것이다.
양조위라는 불균질의 눈빛
이미지로만 보자면 <색, 계>의 등장인물들은 누가 봐도 지나치게 전형적인 인물들투성이다. 왕리홍은 마치 순정만화의 꽃미남처럼 생겨 대학 신입생이 동경할 법한 남자 선배의 전형이고, 왕치아즈의 첫 경험 상대가 되는 다른 남자 동료는 누가 봐도 함께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게 생겼고(아마도 <색, 계>가 전형적인 역사물이었다면 십중팔구 그 남자 같은 인물이 이 선생을 연기할 것이다), 언제나 둘러앉아 마작을 하는 귀부인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역사물의 구조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인물이 바로 이 선생을 연기하는 양조위다. 리안 감독이 장아이링의 원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바로 애국주의와 섹슈얼리티를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양조위를 캐스팅하는 것만으로도 이 문제를 자연스레 해결했다. 양조위는 누가 봐도 악인의 이미지가 아닐뿐더러 악인이더라도 남모를 사연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이다.
양조위가 언제나 선한 역할만을 맡았던 것은 아니지만, 표정만으로 악한 이미지를 드러낼 수 없는 배우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양조위가 악역 혹은 그 비슷한 느낌으로 등장할 때면 늘 첫 장면부터 강한 인상을 심어주곤 했다. 유위강의 <무간도3: 종극무간>(2003)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채 싸움을 벌이다 상대방의 머리를 병으로 내려치는 양조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당시 ‘양조위의 최대 변신’이라 불렸던 유달지의 <암화>(1998)에서 그는 부패경찰을 연기했는데 여기서도 그는 상대방의 머리를 병으로 내려쳤다. 다른 배우에게는 꽤 흔한 장면이 그에게만은 굉장히 생소하다. 그들 감독이 양조위라는 마스크에 악마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그것은 <색, 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가 왕치아즈와 첫 관계를 가질 때 그는 허리띠를 풀어 몸을 후려치고, 거의 내동댕이치면서까지 가학적으로 왕치아즈의 몸을 탐한다. <색, 계>에서 양조위는 처음으로 광둥어가 아닌 베이징어로 연기했다. 그것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그 자신의 의지였다. 그래서 분장은 종종 무섭게 보이거나 심지어 더욱 나이 들어 보이는 주름까지 만들었고, 베이징어를 쓴다는 것을 넘어 목소리 톤까지 바꾸려 애썼다. 또한 냉혈한의 모습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둥근 판에 크리스마스 전구를 여러 개 달아 반사판을 만들고, 그를 이용해 양조위의 섬뜩한 모습을 부각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양조위 그 자신의 아우라는 <색, 계>의 정서를 지배하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색, 계>에서 양조위는 공공의 적이라는 선명한 육체 위에 불균질한 눈빛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변함없는 눈빛은 <색, 계>에서 양조위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가 누군가를 고문하고 나와서 손에 묻은 피를 닦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안심시키는 그 어떤 것이다. 양조위는 언제나 영화 속에서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며, 마치 주변의 공기마저 함께 정지시키는 것 같은 침묵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관금붕과 오우삼, 허우샤오시엔과 트란 안 훙, 그리고 이제 리안에 이르는 아시아의 영화작가들이 그를 통해 상처와 연민, 그리고 무한의 슬픔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는 마치 형언할 수 없는 우울과 슬픔을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게 양조위는 영화가 색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된다. 바야흐로 그는 위트, 체구, 성적 매력 등 남자배우를 향해 규정된 그 어떤 기준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가 된 것이다.
리안은 머물 곳을 찾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으로 보건대 <색, 계>가 떠올리게 하는 과거 홍콩영화들의 리스트는 꽤 많다. 엄호 감독의 <홍진>(1991)이나 구정평 감독의 <하일군재래>(1991) 같은 영화들 역시 <색, 계>처럼 시대의 상흔을 아로새긴 멜로 서사시다.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1954년생인 리안 감독이 어릴 적 즐겨 봤다는 1950∼60년대의 캐세이, 쇼브러더스 스튜디오의 멜로영화들이 더해진다. 1970년대 무협영화가 대세를 이루기 전까지 당시 홍콩과 대만 극장가는 멜로영화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이전, 이후와 달리 베이징어로 멜로영화와 뮤지컬이 만들어지던 때였다. <색, 계>가 번거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굳이 양조위에게 처음 베이징어 연기를 시킨 것은 바로 리안 감독의 그 노스탤지어 때문일 것이다. 탕웨이는 바로 당시 인기있었던,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하나같이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살았던 당대의 여자 멜로스타 방염분, 백연, 이려하의 현재적 변형이나 다름없다(완령옥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배우다). 또한 일본 군인, 관료들로 가득한 일식집에서 왕치아즈가 이를 위해 중국 전통음악을 율동과 함께 부르는 것은 당시 유행했던 황매조(黃梅調) 영화를 연상시킨다. 황매조 영화란 경극을 응용한 형태로 우리 판소리 가락과도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중국 전통성악곡이 몇곡 삽입된 뮤지컬 형태의 영화를 말한다. 일제강점기, 일식집의 다다미방 위에서 펼쳐지는 불륜의 황매조 가락이 당시에 등장했다면 꽤나 혁명적인 신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와호장룡>에 호금전의 <방랑의 결투>(1966)의 주인공 정패패를 캐스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리안 자신이 <색, 계>를 통해 홍콩영화의 위대한 전통에 바치는 사적인 오마주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색, 계>는 <와호장룡> 이후 리안 감독의 새로운 중국어영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좀더 복합적인 층위를 갖고 있다. 알다시피 그는 이민 2, 3세대가 아닌 아시아 출신 감독으로서 할리우드 내에서 타자라는 자의식이 없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와호장룡>을 만든 해 리안은 이례적으로 <타임>이 뽑은 미국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됐고 당시 그를 묘사하는 대목은 이렇다. “리안은 어느 문화에나 편안하게 다가가면서도 신랄한 시선을 잃지 않는, 코스모폴리탄이자 카멜레온.” 그렇게 <색, 계>는 홍콩 멜로영화의 전통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마찬가지로 히치콕의 스릴러드라마, 험프리 보가트가 출연했던 일련의 필름누아르영화들, 그리고 그 자신이 직접 언급한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같은 성정치학의 요소를 엿보게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색, 계>와 가장 흥미롭게 비교해볼 만한 영화가 롭 마셜 감독의 <게이샤의 추억>(2005)일지도 모른다. 일본에 대한 서구인의 원작을 가지고서,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LA에 일본의 거리를 만들고, 온통 중국인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게이샤로 만든 <게이샤의 추억>은 그 자체로 전에 없던 시도였다.
<색, 계> 역시 마찬가지다. 촬영을 맡은 멕시코 출신의 로드리고 프리에토, 음악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물론 홍콩의 양조위, 대만의 왕리홍, 중국의 탕웨이, 그리고 미국 이민자인 조안 첸에 이르기까지 <색, 계>도 <와호장룡>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통에 기대면서도 전혀 얽매이지 않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리안 감독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게 리안은 여전히 머물 곳을 찾지 않는 사람이다. <색, 계>가 보여준 거대한 변화만큼 그는 또다시 우리를 새로운 무대로 이끌 것이다.
원작자 장아이링과 <색, 계>
장아이링은 1940년대 상하이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베스트셀러 작가로, 루쉰과 함께 중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1921년 상하이에서 청나라 말기 명문가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은 행복하지 못한 편이었다. 가세가 기울어져가는 가운데 그녀의 아버지는 아편, 마작에 빠져들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떠나 홀로 영국으로 유학을 갔으며 결국 아버지와 이혼했다. 이후 <색, 계>의 왕치아즈처럼 그녀도 홍콩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으며 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나눴다. 1942년 대학 졸업 뒤 상하이로 돌아와 잡지 연재를 시작으로 <금쇄기> <심경> 등 차례차례 소설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녀의 소설은 주로 1930∼4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갖가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성적인 문체와 섬세하고 복잡한 심리묘사가 특징이었다. 특히 상하이 상류층의 풍속을 정교하고 현실감 넘치게 묘사하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몰락해가는 인물들의 허무함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 시기 <색, 계>와 비교해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상하이에서 짧은 결혼생활을 했던 호난성이 바로 매국투항이론을 펼친 왕정위 정권에 봉사한 친일파였다는 점이다. 상하이가 중국 공산당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뒤 1952년 홍콩으로 이주해 계속 소설을 발표했으며, 1960년에는 미국으로 이주해 서른살 연상인 작가 페르디난드 메이어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이후 꾸준히 저술활동을 펼치다 1995년 향년 7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장아이링의 소설들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됐는데 허안화 감독의 <경성지련>(1984)과 <반생연>(1997), 관금붕의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199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