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는 영화의 학교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신데렐라>의 봉만대 감독이 일본 핑크영화의 거장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을 만났다. 300만엔이 넘지 않는 예산으로 3~4일 만에 영화를 만들어냈던 80년대 일본 핑크영화의 현장을 관통해온 다카하시 감독은 1972년 <부녀폭행탈주범>으로 감독 데뷔, 현재까지 연출한 영화가 80편이 넘는다. 핑크영화의 걸작 중 한편인 <당한 여자>가 나온 1981년에는 연출한 작품이 무려 17편. 1984년엔 이시이 소고 감독의 <역분사 가족>을 프로듀서했으며, 1982년 <타투 아리>부터는 핑크가 아닌 일반 영화도 만들고 있다. <도쿄 섹스피아> <모모> 등 에로영화를 시작으로 충무로에 들어와 작업하고 있는 봉만대 감독의 이력이 다카하시 감독의 여정과 겹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실험을 추구해온 다카하시 감독과 베드신 사이의 스토리를 고민해온 봉만대 감독. 핑크영화제 자리에서 이뤄진 두 감독의 대담을 전한다.
봉만대: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다카하시 반메이: 한국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예전에 부산에서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면 기획의 폭이 넓달까. 물론 군사정부 시대에는 상황이 어려웠던 걸로 알지만 일본은 지금도 제약이 심하다. 한국이 더 자유로워 보인다. 예를 들면 <올드보이> 같은 영화는 일본에서 만들기 힘든 작품이다.
봉만대: 이번에 핑크영화제에서 1981년작인 <당한 여자>가 상영되는데 소감은 어떤가.
다카하시 반메이: 이번 상영이 한국에서는 2년 만이다. 예전에 일·한 영화제 교류 행사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때 이 작품이 한국에서 꽤 마이너하게 수용됐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번엔 여성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니 창피해서 관객이 올까 걱정됐다. 물론 오늘 극장에 와보니 관객이 많고, 역시 한국의 영화 사정이 진전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진보한다는 건 용기가 있다는 거고, 용기가 있다는 건 지금까지와 다른 것을 시도한다는 거다. 또 자신을 바꾸는 의미기도 하고. 한국 영화인, 영화팬들에게 이런 걸 느낀다.
봉만대: <당한 여자>를 보고 감독님은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다카하시 반메이: 어떤 부분이 실험적이라 생각했나.
봉만대: 한 장면을 예로 들면 영화 중간 부분에 여자가 절정을 느끼는 장면을 3단계 이동 컷으로 분리한다. 풀숏, 바스트숏, 클로즈업숏.
다카하시 반메이: 그건 현장에서 생각한 거다. 여자가 절정을 느끼는 부분이 내가 보기엔 별다른 임팩트가 없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봉만대: 나는 그게 최고의 장면이라 생각한다. 분절되어 있지만 한 트랙으로 피사체의 감정을 연결한다. 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건 영화에서 여자가 남자와 관계를 가질 때 여자 밑에 등을 대고 깔려 있는 다른 남자가 있다. 감독님은 이 남자를 어떻게 설정한 건가.
다카하시 반메이: 그 남자는 내가 보기에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가장 굴욕적인 자세가 무엇일지 생각했고, 그걸 그 남자에게 대입했다.
봉만대: 그것도 현장에서 떠올린 건가.
다카하시 반메이: 기본적인 시추에이션은 있었지만 그런 형태는 현장에서 떠올렸다.
봉만대: 또 영화에는 신발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사진 찍을 때 여자가 가슴에 안고 있고, 나중엔 개똥이 묻은 신발을 닦아낸다.
다카하시 반메이: 여자가 신발을 안고 있는 건 이제 여기에서 떠난다는 의미로 설정했다. 신발은 캐릭터에 있어 매우 중요한데 성격, 일, 경제적인 상황 등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봉만대: 소품을 잘 활용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카하시 반메이: 조감독 시절에 소품을 갖고 생각할 기회가 많았고 그게 좋았다.
봉만대: 아까 이야기한 세 단계의 트랙 이동을 오마주하고 싶은데 괜찮을지.
다카하시 반메이: (웃음) 기꺼이.
봉만대: 다음에 만날 때 꼭 보여드리고 싶다. (웃음) <당한 여자>가 만들어진 1981년은 한국에서 군사정권이 시작된 무렵이다. 전두환 정권은 3S정책을 추진했는데 섹스, 스포츠, 스캔들로 국민정서를 정치와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당시 일본의 시대적 배경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다카하시 반메이: 버블 경제가 시작된 때다. 당시엔 그 버블 파도에 순응하는 사람과 역행하는 사람의 차이가 매우 컸다. 하지만 핑크영화는 그런 흐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분야고, 실제로 그랬다고 생각한다. 핑크영화를 보고, 만드는 사람의 수가 줄기도 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핑크영화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감독으로 있던 친구들에게 모두 각본을 써서 연출을 하게 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그들은 지금도 활약하고 있고, 그중 한명이 수오 마사유키다.
봉만대: 당시 한국은 안방 문화가 시작되던 때이기도 하다. 16mm필름으로 에로영화를 만들고, 그게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안방의 비디오를 통해 보여줬다. 한국에선 에로영화가 매우 음성적인 방식으로 발전한 셈이다. 반면 일본은 로망포르노, 핑크무비, 브이시네마, AV 등 무척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카하시 반메이: 또 일본에선 블루필름이라고 하드코어 성애물이 있다. 이는 감독이 있다기보다 야쿠자의 돈으로 음성적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저 감독은 에로영화 찍는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있다. 물론 나는 에로라는 말에 저항감이 없고, 나를 가리켜 에로영화 만드는 사람이라 말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에로건 핑크무비건 브이시네마건 말만 바꾼 것이지 결국 전부 사랑 이야기다. 다만 일본은 그걸 한국보다 산업화해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상품화한 거지.
봉만대: 감독님과 나는 20년 정도 나이 차가 있는 것 같다. 감독님 시대랑 지금 상황이랑 비교하면 어떤가. 어떤 사람들은 에로영화를 바퀴벌레에 비유한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에 나타난다고.
다카하시 반메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이런 영화를 찍는다는 것을 절대 감추고 싶지는 않다.
봉만대: 나는 한국에서 1999년 <테크니컬 파울>이란 영화로 데뷔했다. 다음해에는 <모모>라는 작품을 찍었다. 한·일합작이었는데 촬영하면서 배우의 자세가 무척 훌륭하다고 느꼈다. 서로의 문화도 다르고,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부분도 있었는데 그 배우는 감독의 입장을 배려하고 커버해줬다. 일본의 핑크무비 안에서 그런 배우의 자세가 보통인 건가.
다카하시 반메이: 분명 봉 감독이 만난 배우는 스스로 프라이드를 갖고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식도 높고, 탁월한 배우를 만난 거라 생각한다. (웃음)
봉만대: (웃음) 또 처음 작업할 때는 일본인들에게 무시당하는 느낌도 들었다. 감독이 디렉션을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물어보더라. 별로 큰 동작도 아니고, 복잡한 상황도 아닌데 납득이 될 때까지 물어본다. 처음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엔 이해가 됐다. 동시에 한국의 여배우들과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고. 감독님은 배우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궁금하다.
다카하시 반메이: 나는 촬영하기 전에 그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려 한다. 영화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관, 사고방식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걸 영화에 흡수시키려 한다. 그런 대화가 현장에 있어 분명히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리드하지는 않는다. 나에겐 리드하는 능력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공부할 뿐이고, 현장은 영원한 과제 같다.
봉만대: 최근 한국에선 에로비디오가 사라졌다.
다카하시 반메이: 그런가? 왜 그렇게 됐나.
봉만대: 80년대까지는 나름대로 상황이 괜찮았다. 콘텐츠도 다양했고, 실험성있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가 되면서 거품이 빠지고 돈이 없다보니 기존의 비디오 업자들은 구석에 몰리고 보따리장수들이 많이 들어왔다. 잠깐 돈 벌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물이 흐려졌다. 3일에 찍던 영화를 하루에 찍기도 하고, 제작사들도 감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벗기고, 보여주는 노골적인 성행위만을 앞세워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관객도 점점 없어지고 인터넷, 모바일이 활발해지면서 지금은 거의 공중분해됐다. 특히 한국에서는 섹스, 포르노그래피를 오락의 관점에서만 보는 게 아쉽다.
다카하시 반메이: 핑크영화도 90%는 스토리도, 어떤 관계도, 상황도 없이 단순히 섹스장면에만 초점을 둔 작품들이다. 그걸 즐기는 관객에게 맞춘 영화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몇 가지 룰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예술적인 시도를 하는 영화가 10%다. 이번 핑크영화제에 온 작품도 그 10%에 해당하는 거고.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최대치를 뽑아내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봉만대: 핑크영화가 감독님께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혹은 일본영화에서 핑크영화는 어떤 힘을 갖고 있다고 보나.
다카하시 반메이: 핑크는 영화의 학교가 됐다는 느낌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을 영화인으로 기르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일반영화라는 단어를 나는 싫어하는데 핑크영화는 일본영화 전체를 지탱하게 해준 존재다. 실제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의 반 이상은 핑크영화에서 현장을 배운 사람들이고. 나는 핑크에서 지혜를 배웠다.